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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Oct 02. 2019

신뢰는 로또가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타인을 만난다. 그중에는 인연이 되어 긴 시간을 함께 할 수도 있고, 때론 결정적인 기회를 주는 이도 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머무는 게 아닌, 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를 동반한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습관적으로, 조건반사적으로 타인을 대하곤 한다.


타인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최근 신뢰에 관한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타인을 만나고 신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분명 셀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도 있겠지만 반대로 배신을 당했을 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렇기에 신뢰라는 것은 기대보다 큰 무게를 가지며, 대충 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 본 <여행의 이유>에서는 저자가 어느 현지인을 따라가 신비한 경험을 한 것을 적어놓았다. 그가 만약 그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신뢰하지 않았다면 내가 읽고 밑줄 쳐둔 그 구절은 적어도 그 책에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지인을 신뢰함으로써 그는 책에도 쓸 만큼 인상적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돈을 받고 나를 안내했지만, 그가 베푼 것도 일종의 환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의 가족을 만났고, 그가 믿는 신과 그 신이 사는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온전히 믿어야만 했다. 나의 신뢰는 그의 환대로 돌아왔다. - <여행의 이유>



그렇다면 따지지 않고 무조건 신뢰하는 것은 옳은 걸까? 그렇게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누군가를 나의 믿음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지인이기 때문에 나보다 아는 게 많겠지만, 아는 게 많다는 것이 신뢰와 연결되는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타지에서는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도 매우 제한적이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책에선 타인을 신뢰를 해야 한다고 한다. 발전이 신뢰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의 보살핌, 사회적 유대관계, 친족이 아닌 개체들과의 협동은 포유류의 특징이며, 특히 영장류의 진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류의 생존은 아기가 엄마를 믿고, 연인이 서로 믿으며, 구성원들이 동료를 믿는 능력에 달려 있다. - <신뢰의 법칙>


사회가 세분화되고 복잡할수록 사람은 타인과 더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잦은 교류 속에서 더 높은 목표를 실현할 계기가 되기도 하고, 더 나은 것을 향유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신뢰를 하느냐 마느냐는 사실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 신뢰하느냐다.


신뢰를 했는데 '운이 좋아' 잘 풀릴 수도 있다. 이게 신뢰를 했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라고 보기에는 조금 위험한 감이 있다. 운이 좋은 것은 운이 좋은 것일 뿐이지, 신뢰를 했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말한 기회가 성공으로 변하는 '운'은 나에겐 전혀 발휘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특히 금융권은 더 그런 거 같다. 투자상품을 보여주면서, 또는 '나만 아는 정보인데 너에게만 특별히 알려줄게'와 같은 사탕발림으로 피땀 흘려 번 돈을 투자하라고 부추긴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말을 '신뢰'하여 투자를 감행한다. 상대방의 추천이 운이 좋아 돈을 벌게 해 줄 땐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크게 손해 볼 경우 누군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투자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조건 걸러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 일이 벌어지면 걸러 듣지 못하게 되는 것 또한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때문에 신뢰할 수 있을 비교적 객관적 지표들을 살펴볼 머리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좋든 싫든 공부를 해야 한다. 누군가는 공부하지 않고서도 그런 것을 잘 피해 가고 큰돈을 벌기도 하지만 대체로 확률이 매우 낮다. 그 확률이 나에게도 일어나리라 믿는 것은 로또에 당첨돼 달라고 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수의 성공은 다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게 가능하다면 사회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고, 우리가 성공이란 키워드에 이토록 관심을 갖게 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홈런은 치지 못하더라도 안타만 치자. 홈런을 치려고 매번 크게 배트를 휘두를수록 아웃될 확률만 올라간다. 꾸준히 안타만 충분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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