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Oct 04. 2019

갈곳이 없어 카페를 간다

나는 카공족이다. 지금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문화가 어느 정도는 봐주는 눈치지만(누군가는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지만) 이전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전에 비하면 꽤 너그러운 편이다. 여전히 주인의 눈치를 보고 그래서 대형 커피전문점을 주로 가지만 어쨌든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


내 경우 카페에서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 정도 있는다. 그사이에 음료를 2~3번 더 시키고 식사를 해결한다. 그렇다 해서 내가 하는 행동에 어떤 합리화를 붙이려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길 최소한의 양심으로 그렇게 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스스로 공부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비교되는 곳이 집인데, 집에서는 공부나 책을 읽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영상을 켜놓고 보는 건 그렇게 잘하는데 공부나 책을 보는 것은 잘 안 되는 스스로가 언제나 미스터리다). 그래서 카페라도 나가 앉아있으면 딴짓하기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 10분이라도 책을 펴게 된다.


최근 다른 카페를 많이 찾아다니고 있다. 보다 좋은 장소를 물색해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렇다. 가급적 대형 커피숍을 주로 찾고, 빠르면 6시쯤 도착한다(동네 커피숍은 빨라도 8시쯤 문을 연다). 집에서는 여전히 공부가 안되고, 카페를 찾는 스스로의 의지력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집이라는 공간은 나의 많은 것이 녹여있는 공간이다. 때문에 공부 외에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때론 지저분한 책상을 보면 청소도 해야 할 거 같고, 게임도 할 수 있고, 영상을 틀어놓을 수 있다. 많은 것이 가능한 공간은 그와 같은 이유로 집중과 몰입을 방해한다.


누군가는 카페 대신 도서관을 가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한다. 나 역시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도서관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노트북을 쓸 수 없다는 점이다.


타자를 치거나 마우스 클릭 시 나는 소리는 조용한 공간에선 매우 크게 들린다. 이게 누군가에겐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가 된다. 그래서 도서관은 대체로 노트북 타이핑 및 마우스 클릭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때 유료 독서실을 끊으려 했다가 이내 포기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것에 대한 안내문구가 없어 독서실 총무 쪽에 가서 물어봤지만 요즘은 사용금지라는 문구를 붙여놓은 덕분에 그런 수고를 덜한다.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거나 아예 없다. 따로 있다 하더라도 와이파이라든가 전원 콘센트가 없다. 최근에 스터디 카페도 알아봤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곳 역시 매우 정숙한 분위기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카페를 간다. 카페의 적당한 소음은 노트북 사용에 나오는 소음을 무마시키기 때문이다.


요즘 동네 카페를 가면 예전만큼 사람이 있지 않다. 책만 있으면 공부가 가능한 사람에겐 무인도서관이 생기면서 그쪽으로 이동한 듯하다. 단일 시간 사용료만으로 보면 카페와 이용요금이 별 다르지 않지만 굳이 음료를 시켜먹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나가도 남은 시간이 저장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 같은걸 따질 필요가 없다. 반대로 컴퓨터를 통해 작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카페를 찾는다. 대체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한마디로 어떤 큰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집 대신 있을만한 곳이 카페밖에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한다.


집만 아니면 되는데 갈 곳이 없어 카페를 간다. 그리고 대체로 공부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는 카페가 아니어도 된다. 그냥 그런 공간이 있으면 된다. 집만 아니면 된다. 하지만 갈 곳이 없어 카페를 간다.

작가의 이전글 신뢰는 로또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