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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Jul 21. 2022

2022년 상반기 회고록

늘 그렇든 이벤트도, 변화도 많지만 이번만큼 큰 변화가 있었던 적이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로 컸다. 그 내용들을 여기 기록해 본다.



1. 이직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의 대표에게서 이직 제안이 왔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차례 왔음에도 불구하고 거절을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전 회사에서 좀 더 할 게 있을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요청이 왔을 때는 이제 더 이상 이전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딱히 신변에 변화가 있거나 불이익을 당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회사를 떠날 순간이 왔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성장과 방향성이다.


처음 이전 회사를 선택했을 당시 원했던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원하는 것은 연봉 같은 게 아니다. 내가 그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즈음 돌아보니 내가 목표로 했던 것에 약 75% 정도는 이뤄냈다. 나머지 25%는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거기에 적합한 또 하나의 팀이 필요한 상황인 건데, 팀이 생길 기회는 오지 않았고 그럴 권한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거란걸 알았다. 내 성장은 그때, 아니 조금 이전부터 서서히 멈춰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과 결이 맞지 않은 것은 방향성에서도 티가 난다. 그저 버티면 좋아질날이 올 거라는 생각, 기회가 올 거란 생각은 이미 1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던 나에겐 그리 와닿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그럼 없던 기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뛰어난 실력과 노력으로 어떤 특이점을 만들어 돌파해야 한다. 만약 내가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럴 땐 회사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중요도가 내가 생각한 것과 일치한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이것은 마치 내가 기가 막히게 짜장면을 잘 만드는데 감자탕 집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 물론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일치할 수 없다는 건 알았다. 그것을 알고 나니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온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전 회사에 사직서를 내밀었다.



2. 스타트업에서의 새로운 시작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한 회사이기에 그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직책으로 온 것이기에 좀 더 많은 것을 신경 써야만 한다. 간단하게는 회사의 기술적 발전과 미래 연결성부터 해서 직원들의 성장과 기여도, 팀워크 등 다양한 걸 고려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작 실무를 하는 시간보다 기타 일을 보는데 시간을 더 쏟기도 한다. 선배들이 했던 말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스타트업은 시니어가 거의 없다. 즉 대부분의 신입들을 데리고 나아가야 한다. 만약 그 분야가 나도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이면? 당연히 부담감도, 막막함도 몇 배로 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것. 대표와 내 생각이 가장 일치하는 것도 이 부분이기도 하다.


스타트업답게 성장하는 속도는 가히 빠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성장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빠르게 보이는 것인지 정말 빠른 것인지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처럼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는 곳은 한두 개 추가된다고 해서 뭔가 크게 변할 요소가 없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소소한 것 하나도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들이 열리고 사라지는데 그 속도가 빠르다. 그러다보니 이게 속도가 빠른건지, 체감이 빠른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울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결국 속도가 생명이라는, 중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3. 새로운 변화의 중심, 구글 클라우드 아카데미


시니어가 각 분야별로 있으면 각자가 경험한 것들,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구축해 나가는데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재도 자금도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그런 상황에 어느 날 대표님이 나에게 물었다. '구글 아카데미 공고가 떴네요'. 그 말에 나는 당장 신청하자고 했다. 그때 대표가 나에게 '정말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그 이유는 지금 하는 일에 일손도 부족한데 여기까지 신경 쓸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상황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밀어붙이는 게 중요하기도 한데 지금이 그런 상황인 거 같아요.'. 그렇게 신청을 하게 됐다. 사실 신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전 미팅(어찌 보면 면접 같은 것?)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다행히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메일로 앞으로의 일정을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약 12주간 진행된다는 말과 간략한 소개가 들은 메일을 보고 나서 머릿속에 바로 이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 의미 있는 수준으로 회사의 기술 레벨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서 대표님에게 말하고 기존에 연구팀이라 지칭되었던 곳을 2개로 나누었다. 그리고 첫 회의 때 그런 말을 했다. 이번 기간 동안 무조건 시스템 인프라 구축할 테니까 잘 따라들 오시라고. 도움을 받으려면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럼 나를 개조해서라도 되게 만들어야 한다. 구글과 같은 큰 기업이 우리가 원하는 타이밍에 해줄게요 하고 기다려줄리 없다. 큰 기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곳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 우리 내부 구조를 바꾸고 어떻게든 달라붙어 만들어야만 한다.


다행히 구글 클라우드 아카데미 교육은 매우 좋았다. 그로 인해 팀원들 몇몇의 스펙은 놀랍게 향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모든 것이 거저 얻어진 건 아니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OKR이라는 걸 진행했는데 이때마다 멘토링 할 것, 교육받는 것, 일정 등 매번 챙겼다. 단순히 참여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질문 가장 많이 하기, 멘토링 적극 요청하기, 준 피드백 최우선 순위로 반영해 보기 등 관련된 것들을 가장 우선 목표로 삼았다. 그 기간 동안 유독 급한 회사 일정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우선순위는 회사일보다 교육을 뽑았다. 회사일은 회사가 존속하는 한 어떻게든 조율, 처리할 수 있지만 이 교육은 이번이 지나면 끝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멘토링과 교육 덕분에 우리의 시스템은 부쩍 개선 & 개발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직원들의 능력도 대폭 향상했다. 우리는 연말에나 시작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와 기술을 6개월 앞당길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구글 클라우드에 되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얼마나 차이 날까 생각하면 띵하다. 우리는 교육을 받기 이전과 이후 너무 크게 변화했고, 이젠 그 변화를 디딤돌로 다음 단계를 나아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만 대부분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보다 이전에 했던 것을 반복한다. 상황이 변하면 나를 개조해야 한다는 임용한 저자(전쟁사 관련 좋은 책을 많이 내주시는 분)의 말처럼 나를 개조하지 못하는 한 혁신은 없다.



4. 회복


많은 변화와 성과를 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학습하면서 성장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쫓기는 듯한 마음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종종 그거 때문에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약해졌구나'. 매일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강도로 일을 해가고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나는 마음 단련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딱 그 시점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계발을 소홀히 하고 있었을 때였다. 몸이 단련되듯 마음도 단련해야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사정을 말하면 '그래 너 평소 무리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 좀 쉬어'라고 말을 들을게 뻔했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답은 휴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더욱 단련하도록 마음먹었다. 버스를 타면 지하철보다 15분 이상 걸려 일부로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이젠 일부로 지하철을 탄다. 버스를 탈 때는 졸고 있지만 지하철을 타면 졸지 않고 그시간에 강의를 하나라도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근시간엔 인강을 보고 퇴근시간엔 책을 본다. 가끔 반대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만남을 가진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당연히 만나고 나면 웬만하면 내가 식사 비용을 댄다. 고마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하니까 금세 예전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이 많아 억눌리고 무게감이 들지만 이젠 악몽을 꾸거나 두통에 힘들지 않다. 다시 예전 페이스로 돌아간 듯하다.




벌써 올해 상반기가 끝났다. 하반기에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구글 스타트업 입주 공간에 지원해서 합격되었다. 여기가 좋은 점이 일단 출근 시 6:20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삼성역 위치). 지금 회사는 조금 돌아가서 같은 시간에 나와도 7시쯤 도착했는데, 여기는 6:20이면 회사 건물에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카페가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새벽부터 샌드위치를 팔기 위해 가게가 6시 오픈되어 있다. 그래서 사무실로 들어가기 좀 그럴 때는 카페에서 하다가 8시쯤에 사무실에 들어간다. 이런 요소들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게 자극이 된다.


나를 회복하려면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물론 어떤 것은 무조건 쉬어야지만 낫는 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몸보다는 정신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이런 자극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몸은 평소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매일 새벽 20분씩 운동하고 있다. 시간만 보면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덕분에 근육이 제법 붙어서 덜 지치기도 한다.


2022년 이제 하반기에 접어든다. 경제 위기 이야기와 함께 스타트업이 어려워질 거라는 이야기가 많은 곳에서 들린다. 우리도 거기서 피할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바뀌거나 달라지는 건 없다. 조금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음 회고 때까지 더 성장과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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