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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Dec 16. 2019

바쁘면 안 되는 이유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제법 바쁘게 살아온 거 같다. 바쁘더라도 여가시간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배운 것도 있고 하다가 포기한 것도 있고 끝까지 해낸것도 있다. 각종 모임에도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를 시도한 것 같다. 특히 모임 참여의 경우 왕성하게 활동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겨우'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 다양한 사람을 보고 살아가는 방법과 관점을 배우고, 그 속에서 내가 살아오는 것을 비교해보면서 그렇게 보냈던 거 같다.


요즘은 모임이 많이 없다. 연말이니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올해 가장 바빴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꽤나 한가롭다. 여유가 생겼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불안감이었다. 가만히 있으니 뭔가 불편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켰다. 어떤 모임이 있나, 봐야 할 책이 있나 지켜보다가 묘한 기시감이 들어 인터넷을 껐다. 노트를 펼치고 볼펜을 들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방향성을 잡을 시간이 부족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바쁘게 살아본 결과 좋았던 것은 가시적인 아웃풋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점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성된 포스팅이 늘어났고, 사람들과의 접촉면이 다양해졌으며 좋은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 부가적인 것들은 할 수 없었다. 가령 내가 집중해야 하는 무언가, 예를 들면 지금 밥 먹고 살게 해 주는 보유 기술을 향상하는 것, 관련 공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소홀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자연스레 커버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웃풋을 쭉 나열해보니 전혀 그러지 못했다. 내가 정말 필요로 해서 하는 공부와, 마구잡이로 하는 공부 후에 오는 아웃풋은 엄연한 품질 차이가 있었다. 고만고만한 품질은 어필할 수가 없다. 나는 고만고만한 품질의 아웃풋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온 샘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 노력이 반드시 질적효과를 내지 않는다


다음 플랜을 짤 때도 이미 밀려있던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의 생각은 행동을 기반으로 결정되었기에 점점 협소해졌다. 뭐든 배워두면 도움이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 언제가 언제일지 도무지 알 수 없기에 지쳐갔고, 양질의 품질은 생겨도 질적 변화로 잘 전환되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직 충분한 양을 못 만들어서 그럴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양이 질적으로 변하려면 질적인 것을 생산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 점점 쉬운 일만 하고 싶어 했다


가장 나빴던 것은 바쁘다는 핑계로 진짜로 해야할 일을 미뤘던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스스로의 암시에 세뇌되어갔으며 바쁜 와중에 생기는 여유시간엔 오히려 그 시간을 다른 것을 하면서 허비했다. 해야 할 일을 방치했고, 계획한 일을 미뤘다. 그렇게 미루고 덜 중요한 것들에 집중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중요도보다는 감정이 우선되었다. 빠르고 쉽게 하는 것을 점점 선호했으며 복잡한 것은 멀리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시간 할당하는데 인색해져 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할 일이 늘어만 갔다.




프로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그 일을 끝맺어줄 거란 기대감이 있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때문에 프로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바빠서 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 프로를 신뢰받지 못한다. 나는 프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인생에서만큼은 나 자신이 프로다. 내 인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친구도, 부모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신없이 살아간다고 프로라고 말할 순 없을 거 같다. 오히려 정신없는 삶 속에서 방향을 점검하고 원하는 바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다.



그러니 너무 바쁘지 말자. 바쁘더라도 10분, 아니 5분만이라도 여유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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