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심리 상담 첫 번째 이야기.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된 진짜 이유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자료조사 차원이었다.
상담을 신청할 당시 나는 상담을 신청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머리를 짜내야 했다.
오래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다.
엄마는 경도인지장애를 겪고 계시며 그러시기 전에도 무척 고압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농담이나 재치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라고 해도 따뜻함이랄까, 포근함 같은 그런 다정함 역시 거리가 멀었다.
대신에 엄마는 전화 통화 1분 안쪽으로도 평온했던 사람을 팔짝 뛰게 만들 수 있는,
단 두 마디면 사람 속을 뒤집을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아무 일 없던 사람도 엄마 전화를 받으면 1분도 안돼 벌떡 일어나 머리를 쥐어뜯는 가족들을 상상하니
킹스맨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나오던 클라이맥스가 생각난다.
머리가 총 천연색으로 터지던 그 장면. 거의 우리도 비슷했다.
그러던 엄마가 인지장애를 얻은 후 본인도 원치 않았겠지만 내공은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가족 중 두 명이 공황장애 약을 먹게 됐다.
물론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 본인인 것은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안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기 손톱밑의 가시가 가장 아프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공황장애 약을 먹는 그 두 명 중 한 명이 나였기 때문에 상담의 목표를 엄마로 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번 상담의 목표는 상담 그 자체의 분위기와 내용, 전문성을 익히는 자료조사였다.
상담사가 한 달 전에 미리 테스트를 한 심리검사지를 바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떤 불편함 때문에 상담을 신청하셨나요?"
이 물음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상담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무척 죄송했다. 또 할 말도 별로 없었다.
나는 낯을 가리고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는 성격에 친한 친구에게도 속내를 잘 말하지 못하는
지극히 내성적인 중년의 여인인 데다가 무척 불순한 의지로 상담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찌 됐든 거짓말만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저의 원 가족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고.. 또.."
"원가족이라 함은 친정을 이야기하시는 거죠? 가족 중 누구를 가장 이해하고 싶으신가요?"
"음... 엄마요.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왜 내 엄마는 화가 날 때마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야 했는지,
왜 술을 마시고 애들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어야 했는지,
왜 내 엄마는 내 수술날 수술실에 들어가는 나를 두고 교회에 가 버린 건지,
왜...
전부 다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를 이해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으신 거죠?"
엄마를 이해하는 것으로 뭘 얻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저렇게 물으니 나의 의도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왜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을까, 생각하는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서로 모순된 감정들이 스쳐갔다.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를 사랑하고 싶어요. 지금 스쳐가는 이 아픈 감정들 없이
마음 편하게 엄마를 사랑하고 싶어요"
말을 뱉으면서 명치 쪽이 무겁게 막혀왔다.
내가 상담자에게 한 말은 누구에게도 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으니 나 역시 듣지 못한 말,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던 말.
그러나 뱉고 보니 나도 몰랐던 내 진심이었던 말.
상담자가 이야기했다.
"그렇게 힘들게 하신 분을 왜 그렇게 까지 애써서 사랑하고 싶으세요?"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저를 사랑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호랑이 같은 분이셨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업가셨고, 애들만 놓고 집을 나간 아빠 대신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대학에 유학까지 보내신 분이었다.
또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식들의 말을 믿어 줬으며, 자식들이 아무리 실패를 반복해도 믿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던 분이셨다. 나는 그 엄마의 절대적인 믿음 덕에 지금처럼 살 수 있었다. 그때도 엄마께 감사했고
지금도 그렇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는 정말 고민이 되는 순간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거대한 그루터기 같았다. 그랬던 엄마였기에 나는 엄마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었다.
상담자가 따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이번 상담의 목표는 그렇게 정하기로 하죠.
그런데 아까 내담자님이 그 이야기를 하실 때 저 좀 뭉클했어요.
'엄마를 편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말이요. 우리 함께 최선을 다 해봐요."
나는 상담을 마치고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엄마에 대해서 나쁘게 말한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좋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엄마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고해성사를 한 것이라고.
자료조사로 시작된 상담은 진짜 상담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이번 상담을 통해 나에 대해, 나의 엄마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 볼 작정이다.
엄마를 편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그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