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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트리 Sep 28. 2023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심리상담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이름만 들어도 눈이 매워지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상담을 끝내고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다.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에게 이 상담은 여러모로 실패였다. 진짜 이유인 상담 자체의 모니터와 자료조사는 고사하고 새로운 고민만 떠안게 됐다.


두 번째 상담. 이번에는 상담사에게 말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취하리라 생각했다.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저번 상담에 이어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했는데 뜬금없이 오늘의 기분을 물어왔다.

"별로 나쁘지 않아요."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내셨어요?"


사실 나는 지난 한 주를 과각성 상태로 지냈다. 잠을 이루기도 어려웠고 잠을 자도 일찍 깼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아니 뭐라도 했다. 옷장정리를 했고, 서재 정리를 했고 주방정리, 냉장고 정리, 베란다 청소, 거실 인테리어, 청소, 청소, 청소. 죽어라 청소를 했다.

건강상의 문제로 9월 한 달은 공식적으로 쉬기로 한 달이었지만 몸을 혹사해서 몸살이 걸렸고 입은 부르텄다. 그래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2회 차 상담을 마치고 브런치에 글도 썼다. 나는 브런치를 잘 모르고 읽어본 적도 별로 없는 데다가 해야 할 글작업들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다. 대나무 숲처럼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과각성상태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현재 나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상담사는 왜 그러는 것 같냐고 물었고 나는 간혹 이런 상태가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상담사는 엄마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좀 어떠셨어요?"

아. 내가 이렇게 된 이유가 그거 때문이구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혹사하면서 죄책감을 잊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여자 혼자 힘으로 다자녀를 힘들게 키워낸 엄마. 지금은 인지장애까지 앓고 있는 불쌍한 엄마에게 나는 못할 말을 한 것이다.  


"나는 왜 할머니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걸까요?"

나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와 한 방을 쓰며 악몽을 꾸시면 깨워드리고 좋아하는 과자와 사탕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과하다 싶을 만큼 사다 쟁였고, 할머니가 까치가 울었다고 내가 올 모양이라고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했고 나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래서 할머니께 까치가 오는 날은 내가 오는 날이 됐다. 임종 전 한 달 반 병원에서 곁을 지켰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 마음으로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담사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터트렸고 기어이 상담사와 함께 울었다. 할머니, 이름만 불러도 눈이 매워지는 사람이다.


"할머니처럼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상담사의 말에 다시 울었다. 한동안 울고 나니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과 자책, 죄의식들이 튀어나왔다. 고작 상담 2회 차 만에.


이제 나는 목표를 바꾼다. 자료조사는 개나 주라지.

나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최소한 나 하나라도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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