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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레야맘 Jun 23. 2023

인플레이션과 고물가가 아이의 소비생활에 미친 영향

뭣이 중헌가

고등학교 1학년 생일선물로 바비 인형을 받았다. 바비 인형이 든 상자를 교실에 떡하니 두고 있자니 선생님들은 다 큰 애한테 무슨 인형이냐며 한 마디씩 하셨다. 하지만 사실 그 바비 인형은 친구들이 갖고 싶은 선물을 말해보라기에 내가 직접 고른 것이다. 장난스럽게 고르긴 했지만, 어린 시절 못 받은 선물을 그제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엄마는 내가 뭔가를 사달라고 떼쓰거나 조르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고 했다. 내 기억에도 내가 뭘 사달라고 한 적이 거의 없다. 친구들 집에 가면 다들 마론 인형이 몇 개, 어떤 친구는 열 개도 넘게 있었는데, 나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론 인형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그걸 부모님께 사달라는 말은 또 하지를 못했다. 그래도 산타 할아버지한테는 인형이 갖고 싶다고 편지를 썼는데, 그게 메시지 전달 오류로 산타 할아버지가 마론 인형이 아니라 강아지 봉제 인형을 주셔서 대실망을 했다는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귀여운 에피소드도 있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내가 갖고 싶은 걸 사달라는 말을 못 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알뜰했던 엄마가 물건을 살 때 물건값을 살피는 모습이나 가계부 쓰는 모습에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됐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난 내 아이를 어린 시절 나처럼 눈치 보면서 갖고 싶은 걸 사달라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당당하게 갖고 싶은 걸 말하고, 가격을 확인하고, 그 돈을 어떻게 모을지 계획을 짜고, 돈(또는 포인트)을 모으고, 스스로 당당히 구입까지 하는 멋진 소비자로 키우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칭찬 포인트 또는 집안일 아르바이트로 모은 용돈으로 구입하도록 가르쳐왔다.

그런데 이곳 베네수엘라로 이사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이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평소엔 장난감을 거의 사주지 않는데, 이사를 오며 아이 장난감을 많이 처분하고 왔던 것이 맘이 쓰였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마트 입구 장난감 가게에 갔고, 아이는 야구공 보다 조금 큰 작은 장난감 하나를 골랐다. 가격을 물으니 25불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에선 10불이면 살 수 있는 장난감을 차마 2배가 넘는 가격에 살 수가 없었다.

아이를 설득했다. 여기서는 이걸 너무 비싸게 팔고 있으니 지금 바로 필요한 게 아니라면 나중에 사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다른 곳에서는 이 돈을 내면 같은 장난감을 2개 살 수 있다고 하자 아이는 설득이 됐고, 우리는 대신 내 기준에 가격이 합리적이었던 고무공을 사서 돌아왔다.

이곳에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공산품 가격이 치솟아 한국이나 미국 기준 최소 2, 3배로 판매 중이다. 이젠 칭찬 포인트를 모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러 가던 예전의 우리의 작은 이벤트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대신 반년쯤 지났을 무렵, 우리는 미국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아이에게 예전에 골랐던 장난감을 3개 사주었다. 크리스마스 때 받고 싶다고 했던 또 다른 장난감도 사주었고, 그동안 눌러왔던 소비욕을 발산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지만 약속도 지켰고, 아이는 행복해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갑자기 아이가 본인이 필요할 때만 나오는 특유의 애교를 짜내며 물었다.
"우리 멕시코 여행 가서 혹시 에밀리아나가 갖고 있던 인형 비싸면 사줄 수 있어?"
(*요즘 한창 여름휴가를 계획 중이다)

한 달 전쯤 친구가 생일 선물로 받은 인형을 주말 동안 빌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나 보다. 아니, 세상에 그 인형이 뭐라고. 아이가 조건을 2개(멕시코에 가면+안 비싸면)나 붙여가며 이렇게 눈치 보며 이야기할 일인가 싶어 뭔가 속상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처음 장난감 가게에 다녀온 후로 아이가 뭔가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나처럼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에는 적었지만 말이다.

아이가 스스로 여기서는 장난감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참아왔을 것을 생각하니  속상했다. 또 아이에게 가격 걱정을 하게 한 것도 미안했다. 나는 아이가 장난감을 살 때, 가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얼마인지 확인을 시켜주고 사게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다 미안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면 좀 기다렸다가 나중에 싸게 사는 것이 현명한 소비 생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마트 갈 때마다 입구에서 아이를 현혹하는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을 봤을 텐데...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지나쳤던 아이는 늘 우린 비싸서 저걸 못 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 나라에 사는 것에 대해 안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이제 생각하니 처음 장난감 가게에서 아이한테 장난감을 사주지 않았던 내가 후회된다. 지금이라면 이곳 물가에 적응이 됐기에 25불이면 제일 싼 장난감을 고른 것이나 다름없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사줬을 텐데 말이다. 장난감 가게에 가던 우리의 작은 이벤트를 그만둔 것도 후회됐다. 늘 미국 여행가서, 한국 가서 뭐 사주겠다, 해주겠다 말하며 미룬 것도. 장난감을 받기 위해 하는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장난감을 받게 됐을 때의 성취감, 그리고 장난감 가게에서 직접 물건을 살 때의 설렘.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조금 비싸게 산다고 해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으리라. 그동안 내가 어리석었다. 뭣이 중헌지 모르고.


이제 아이에게 다시 칭찬 스티커 모으기를 시작하자고 해야겠다. 그리고 스티커를 다 모으면 아이 손을 잡고 가서 원하는 선물을 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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