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by 탕헤르의 달

「어느 날 해질 무렵의 일이었다. 하인 한 명이 라쇼몽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소설 라쇼몽(羅生門)은 이렇게 시작된다.


천 년도 더 전 교토의 제일 남쪽에는 '라쇼몽'이라는 문이 있었다. 날은 어둡고 비는 내리고 갈 곳이 없는 한 남자가 문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거리는 조용하다. 그 무렵 교토에는 거대한 지진과 화재가 이어져 집도 절도 파괴되고 모두가 굶주렸다.


도시의 관문 '라쇼몽'도 방치된 지 오래이며,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문 위쪽에는 문지기 대신 시체가 쌓여갔다. 남자는 며칠 전 주인집으로부터 더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갈 곳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조만간 저 문위에 시체로 쌓여질 터였다.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다. 그건 못할 짓이었다.’


남자는 시체들 사이에서라도 몸을 눕히기 위해 성문 위로 올랐다. 어둠속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앙상하게 마른 노파가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뽑고 있었다. 시체를 훼손하는 노파의 모습에 남자는 분노했다. 노파에게 칼을 들이댔다. "나는 이것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우. 여기 누워있는 시체들은 모두 살아 있을 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야. 그러나 그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 나도 어쩔 수가 없다네."노파는 말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남자는 결심이 섰다. '먹을 것이 없으니,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할수 있다’는 생각이 어디선가 나왔다.

남자는 노파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의 옷을 빼앗아 가도 원망마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굶어 죽으니 말이요." 옷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파를 발로 차고, 남자는 사라졌다. 거리는 칠흙같이 어두웠다.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업적을 기려 일본에서는 매년 1월과 7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을 순수문학 부분 신인작가에게 수여한다. 신인과 무명 작가에게 주로 수여되어 신인의 '등용문'으로 여겨진다. 재미있게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름 첫 세글자는 한국어 발음으로 '개천용'이다.


수업시간에 함께 소설을 읽었다.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을 벗기겠다', '살기 위해 나쁜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괜찮다', '노파의 옷을 빼앗아도 어차피 며칠 못 버틸테니 그냥 굶어죽겠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등 의견이 다양했다.


나는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답하지만, 비 내리는 밤 라쇼몽에서의 나의 선택을 나는 자신할 수 없다.


내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강함'이란, '어떠한 순간에도 위엄을 잃지 않는 힘'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시간에서 나는 나름의 위엄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 삶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쉽게 넉넉지 못한 부모를 원망했다. 어린 시절 다양함과 여유를 경험하지 못한 탓이라고. 어떤 날은 주변인을 비난했다. 다 너희들 때문이라고. 그리고 가끔은 문제를 회피했다. 나도 살아야 한다며.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다. 강함이란 어떤 순간에도 '비툴어지고 멋 없는 나'를 소환하지 않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결국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한 힘이라는 것을 천 년전 교토의 어느 날을 상상하며 깨닫는다.


그러나 많은 자아 중에 못생긴 자아를 꺼내 든 누군가를 쉬이 비난할 수 없음도 동시에 깨닫는다. 그저 누군가는 어두운 자아를 소환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화요일은 제 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국민들이 숨겨두고 싶은 자아를 평생 숨겨두고 살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기대한다.


*라쇼몽(羅生門)은 794년 건립되었으며, 헤이안시대(794∼1185) 교토의 남쪽 출입문이었다. 문은 정면 폭 33m, 안쪽으로 8m 깊이의 규모. 2층 구조의 누각 형태로 기와 지붕이며, 지붕의 양 끝에는 금색의 장식물이 달려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원래의 문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