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

'오직 하나'의 이야기

by 탕헤르의 달

교토역은 남북으로 뻗은 '카라스마길(烏丸通り)'과 동서로 뻗은 '하치조(8조, 八条)'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교토시의 중심부는 남북과 동서로 반듯하게 뻗은 길들이 직각으로 교차되며, 바둑판처럼 도시를 구획하고 형성한다. 이는 794년 교토가 헤이안(平安) 시대 수도로 정해진 이후 중국의 장안(長安)을 본떠 설계한 것이다.

교토역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이찌조(1조,一条)까지 연결되며, 남으로는 쿠조(9조, 九条)와 쥬조(10조, 十条)가 있다. 역의 북쪽이 번화가인데, 주로 산조(3조, 三条)와 시조(4조, 四条)에 상권과 관광지가 있고, 니조(二条,2조)에는 교토 황궁과 니조성이 있다.


교토에서 나의 첫 집은 '고조(5조, 五条)'와 '신마치'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었다. 교토역과 시내의 중간쯤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주택가이면서도 상업지구와 호텔 등 숙박시설이 섞여 있어 관광객이 주는 활기가 있는 곳이다.


동네는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골목이 좁고 오래된 주택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길을 걷다 보면 2층의 목조가옥이 많은데 100년 이상된 전통가옥인 ‘마치야(町屋)’다.


‘마치야’는 과거 주거 겸 점포로 도시 상인들의 공간이었다. 정면이 좁고 안쪽으로 깊은 구조여서 ‘장어의 침상’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는 정면의 너비에 따라 세금을 매겼던 과거의 세금 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어느 것 하나 ‘그냥’ 현재인 것은 없다.


본채가 길가에 면해 있지만 수직으로 촘촘한 나무 창살 덕에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렵고, 2층에는 작은 격자무늬 창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쪽 깊은 곳에 정원이 있다. ‘마치야’의 특징이다. 현재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치야'들 사이로 조화롭게 들어선 근현대식 건물은 시간의 층이고 변화하는 도시의 얼굴이다. 외관만으로도 박물관이 되는 곳이다.


낡은 목욕탕과 우동집, 오래된 카페의 토스트와 커피, 찻잎 볶는 향이 고소한 어느 찻집의 여름 말차, 벨기에인이 운영하던 요가원은 첫 번째 동네의 추억들이다.


그곳에서 5개월을 지내고 교토의 북쪽인 슈가쿠잉(修学院)으로 이사했다. 교토역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 조용한 주택가이다.


집 앞에는 한량이나 두량으로 된 작은 관광 전차가 서는 역이 있다. 차단기가 내려갈 때마다 '땡땡땡' 울려 퍼지는 소리는 이곳이 전차의 도시 일본임을 실감하게 한다. 철로를 건너면 교토시내를 가로지르는 '카모가와(鴨川, 압강)'의 한줄기인 '다카노강'이 흐른다.


이사한 다음날 강변에서 뛰어노는 사슴들을 보았다. 그날 이후 등하굣길에서 하얗고 커다란 새와 오리들을 매일 만났고, 사슴은 가끔 마주쳤다.


강줄기 끝에는 커다란 산자락이 있고 저녁에는 형용할 수 없는 색으로 물드는 하늘이 있다. 밤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낮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파란 바람을 일으킨다. 작고 큰 놀이터와 공원이 군데군데 있고, 길 위에는 작은 선술집과, 작은 라멘집과, 작은 빵집과, 작은 책방이 있다.

걷고 또 걷고, 멈추고 또 멈췄다. 이 동네에서 시간은 초와 분단위로 흐르지 않았다. 비와 매미와 햇살과 새와 바람과 나무와 함께 다가오는 시간들은 생생하고 불규칙적이었고, 다감하고 섬세했다.


이곳에서 네 계절을 보냈다. 때로는 배우자와 함께 걷고, 함께 수다스러워졌다. 이 동네를 다음 주면 떠나게 된다. 반딧불이를 보았던 밤과 벚꽃이 터지던 하얀 낮을 잊지 못할 것이다. 깊이 감사한다.

2년 여정의 교토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둑알 하나를 세 번째 동네에 올려놓는다. 격자무늬에서 탄생할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 그 시절 그곳에서 다가오는 것과 지나가는 것. 그 모든 것이 만들어 낼 ‘오직 하나’의 이야기를 소중히 기다린다.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 : 일본 다도(茶道) 문화에서 비롯된 말로, 다실에서의 한 번의 만남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인연이라는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모든 것은 ‘그 순간에만 태어날 수 있는 세계’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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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동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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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동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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