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고 파란 색색의 잉어 깃발이 5월의 신록 속에 나부낀다. 긴 수염을 단 잉어는 바람을 가르며 힘찬 유영을 한다. 저러다 정말 용이 될지도.
어린이날 잉어 깃발을 거는 '코이노보리(鯉のぼり)'는 일본의 전통 풍습이다. 남자아이의 건강과 출세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국 황하를 거슬러 오른 잉어가 상류의 '용문'에 오르면 용이 된다는 '등용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문'에 오를 수 있는 물고기는 왜 잉어였을까. 잉어의 수염이 용과 닮아서 선택된 것일까?
조금 더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한자 ‘잉어 리’(鯉)는 ‘물고기 어’(魚) 와 ‘마을 리’(里)로 이루어져 있다. 산 좋고 물 맑던 시절 마을의 개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잉어는 평범함의 상징인지 모르겠다. 평범한 물고기가 역경을 극복하고 용이 되는 이야기는 어린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한국 버전으로는 '개천에서 용난다'가 있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더욱 어려워진 요즈음이지만, '수염' 하나 믿고 용이 되고픈 잉어들이 매일의 고달픔을 감내한다. 등용문의 설화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잉어가 용꿈을 꾸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1948년 유엔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선언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에 기초한다. 프랑스 혁명이 있기 전까지 인간은 평등하지 않았고, 왕권은 하늘이 부여한 절대권리였다. 국가는 왕과 귀족을 위해 존재했다.
우리 헌법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일본의 현행 헌법인 '일본국헌법'은 1947년 5월 3일 시행되었다. 그 이전에는 1889년 제정된 '일본 제국 헌법'이 존재했고, 그 이전에는 헌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국헌법'과 '일본 제국 헌법'의 큰 차이는 ‘일본 천황'의 지위이다. '일본제국헌법'에서는 '천황'이 국가를 통치하지만, '일본국헌법'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으로서만 존재한다. 1947년, 일본국의 주인은 국민이 된다.
우리나라는 1919년 9월 11일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법에서 헌법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잉어의 꿈'은 근대의 이야기다.
나는 교토에서 일본어를 공부한다. 거주·이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헌법은 이렇게 실재적이다. 그러나 헌법은 이상적이다. 헌법은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지만 현실에서 용과 잉어가 누리는 자유는 다르다. 그래서 잉어는 용이 되고 싶어 한다.
일본의 5월은 '골든위크'라는 긴 연휴로 시작된다. 4월 29일 '쇼와의 날'로 시작된 연휴는 5월 3일 '헌법기념일', 5월 4일 '녹색의 날', 5월 5일 '어린이 날'로 이어진다.
6월 우리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본의 헌법기념일을 보내면서 헌법을 다시 생각해본다.
잉어가 용이 되는 이야기는 헌법이 있어 가능했다. 고무적이고 감사하다. 그러나 잉어가 잉어 자체로 존엄한 이야기는 마땅하고 본래적인 헌법적 가치이다. 평온하고 찬란하다. 헌법이 모두에게 실재하기를 바란다. 여전히 헌법이 이상적이라면 '무제한으로 사랑할 권리' 나 '아름다움에 이끌려 방랑할 권리'가 담겨있을 때이기를 바래 본다.
* 일본에서는 3월3일 ‘히나 인형’을 장식하며 여자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5월5일 ‘코이노보리’로 남자아이의 건강과 출세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