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by 탕헤르의 달

'오카자키 공원, 동물원 앞입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우회전합니다'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토의 버스에서는 언제나 기사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녹음된 안내방송도 규칙적으로 나오지만, 기사님은 각자의 방식으로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승객들을 안내한다. 명랑하게, 중후하게, 드물게는 엄청 웃기고 이상한 어조로.


얼룩 하나 없는 차창은 투명하다. 속도감만 다를 뿐, 걸을 때처럼 편안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차 후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미리 하차 준비를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므로 서두르지 않도록 주의를 받기 때문이다. 안단테의 리듬이 편안하다.

며칠 전 일본의 농림수산상(장관급)이 경질되는 사건이 있었다. 자민당 정치자금 행사에서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쌀을 산 적이 없다. 지지자 분들이 많이 주신다. 집에는 팔아도 될 정도로 많이 있다" 라고 농림수산상은 말했다. 이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다며 인터뷰를 하는 장면은 더욱 가관이다. “집에 팔 정도로 쌀이 많지는 않다고 아내에게 질책을 받았다. 쌀을 정기적으로 구입하고 있다.”


뉴스에서 관련 발언을 들은 나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그의 발언에 어이가 없다가도, 자신의 업무에 한 순간이라도 진심이었다면 감히 나오지 못했을 말들에 화가 났다.


작년 여름 이후 '쌀값 폭등'은 일본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혼자인 날이 많아 쌀소비가 적은 나로서도 2kg에 약 2,800엔(약 2만 6천원)을 주고 쌀을 샀을 때에는 적잖이 놀랐고, 걱정이 앞섰다. 가족 수가 많은 가정들은 어떻게 감당할까.


일본 내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가운데 쌀값은 더욱 가파르게 올라 매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정도이다. 예년의 2배 가까이 오른 쌀값은 5kg 기준 평균 4,268엔(약 4만 천원/ 25.5.20.기준)이다. 정부는 비축미를 세 차례나 풀었고, 급기야 외국산 쌀도 수입하고 있지만 쌀값은 내려가지 않고 있다. 학교 급식에서는 쌀밥 제공 횟수를 줄이고 빵을 제공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쌀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판다. '레이와(令和) 쌀 소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 레이와(令和)는 20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로, 레이와 시대에 발생한 쌀 사태라는 의미

원인은 복잡하다. 기후변동으로 인한 흉작, 50년 이상 지속해 온 일본 정부의 '쌀 감산 정책*'의 실패, 관광객 급증, 생산인력 부족 및 고령화, 매점매석, 난카이 대지진 경보로 인한 사재기 등.

* 쌀 값 하락을 막기 위해 1971년부터 일본정부에서 시행한 쌀 감축 정책으로, 2018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산정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함.

오랜 기간 다양한 원인이 쌓여 발생한 문제를 두고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무장관의 능력을 탓한다면 가혹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비난은 '무능력'이 아닌 '무관심'으로 향한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마음을 다해 고민했다면, 집에 쌓이는 쌀이 부끄러워 괴로웠을 일이다.


일본인의 성실함과 주어진 역할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일본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요소이다. 쌀이 부족할 정도로 관광객이 몰려오게 만든 공신이다.


어제 아침에는 집 근처 소학교(초등학교)의 학생들이 버스 뒤쪽을 가득 메웠다. 빨간 모자를 쓴 어린 학생들이 좌석과 통로에서 재잘댄다. 한 학생이 그만 챙겨 온 녹차를 바닥에 쏟았다. 인솔 교사는 젖은 아이의 가방을 챙기고, 기사님께 걸레를 빌려 복잡한 틈에서도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 물기가 사라져 갔다. 아이들은 '철학의 길' 앞에서 하차했다. 기사님은 잠시 정차한다는 양해를 구하고 이후에 타는 승객들이 젖은 좌석에 앉지 않도록 좌석 위에 수건과 붉은 블록을 올려놓았다. 기사님의 배려로 버스 안은 편안하고 안전하다.


'본분을 다하는 곳에 불성이 있다'는 일본의 고승 '도겐(道元)' 선사의 가르침을 버스에서 본다. 장관님도 버스를 자주 이용하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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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시내버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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