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오가도 발길이 멈추어 지는 곳이 있다. 멈추어서 바라보다 결국 카메라를 꺼내 들면 언제나 같은 장소이다. 카모가와(鴨川, 압천)이다. 강폭이 넓지 않아 눈에 담기 편안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긴장되지 않는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교토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줄기를 중심으로 교토의 상업, 예술, 사랑과 삶이 펼쳐졌다. 카모(鴨)는 일본어로 '오리'를 뜻한다. 예전부터 오리가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説)도 있지만 유력한 설은 아니다. 이름의 유래야 어찌 됐든 카모가와에는 오리가 많다. 맑고 투명한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오리들이 있어 강의 품은 넉넉해진다.
편안한 물의 흐름과는 달리 수면 아래 오리의 발길질은 참으로 부지런하다. 뭍에서는 뒤뚱거리고 물에서는 열심인 오리가 내게는 사랑스럽다.
그러나 옛 일본인들의 눈에는 잘 날지도 못하고, 뒤뚱거리고, 게다가 사람을 무서워 하지도 않는 모습이 만만하고 멍청해 보인 듯 하다. 일본어로 '오리가 되다(鴨になる)'라는 표현은 우리말로 '호구가 되다'라는 의미이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오리는 사냥꾼들에게 그야말로 '호구'였다.
말은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다. 적나라하지 않은 표현들은 시간과 공간을 늘리고 넓혀 생각에 여지를 준다.
일본어로 '꽃 따러 다녀올게요(花を摘みに行ってきます)'는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이다. 알싸한 꽃향기에 파묻혀 용변을 보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인지도 모르겠다.
은유적이고 구불구불한 말은 상상하는 재미를 주지만, 상징이나 문화적 코드를 알지 못하면 소통의 실패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일본어는 간접적인 표현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교토사람의 '돌려말하기' 는 일본인 사이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차 드시고 가세요'는 빨리 돌아가라는 뜻이고, '따님이 피아노를 잘 치네요'라는 이웃의 칭찬은 시끄럽다는 주의이다.
차(茶)가 나올때 까지 기다린다거나, 자녀에 대한 칭찬에 해맑게 웃는다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이다.
덧붙여, 일본인은 'NO'라고 말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그들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을 통해 'YES'의 진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를 알지 못했던 나와 나의 지인도 'YES'를 그대로 받아들여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일본어 표현은 꽤나 모호하고 간접적이고 문맥의존적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화와 칼'에서의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해석이 흥미롭다.
저자는 크리스트교 중심의 서양문화권이 '죄의 문화'인 반면, 일본은 '수치 문화'라고 말한다. '죄의 문화'에서 인간은 내면의 양심과 절대적 도덕기준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서양의 문화에서는 개인이 중시되고, 표현은 명확하고 직접적이다.
반면, '수치 문화'에서는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체면이 중시된다.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소속된 집단이나 사회의 평가에 맞춰 행동한다. 상황이나 관계성에 의해 윤리기준이 달라진다. 따라서 개인보다는 집단과의 '조화'가 우선시된다.
상대를 배려하는 언어는 은근하고 완곡하다. 거절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말이 숨기고 있는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좋아요'라는 말 속에서 승낙인지 거절인지 '혼네(本音,본심)'를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물밑에서 발길질을 해도 이방인으로서 나의 이해는 늘 뒤뚱거린다.
'압천(鴨川) 십릿벌에
해는 저믈어..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정지용, 경도 압천(京都 鴨川) 中>
정지용 시인도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 고향의 말과 풍경이 그리운 날에는 카모가와를 거닐었나 보다. 숱한 발버둥에도 삶의 호구가 된 것 같은 어느 날에는 나도 카모강변을 거닐며 우아하게 삶에게 말해야겠다.
“에에도스나*(ええどすな, '좋네요'라는 의미의 교토방언)” 라고.
*에에도스나(ええどすな, 좋네요) : 기모노를 차려 입은 교토 귀부인의 새침한 말투. 거절을 할 때에도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하는 '에에도스나'에는 천 년 동안 권력의 중심지였던 교토에서 자신의 본심을 쉬이 드러내지 못했던 조심스러운 마음이 담겨져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