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동사 ‘이따다쿠(いただく)’에서 나는 여전히 길을 잃는다. ‘먹다, 마시다, 받다’의 겸양 표현이며, 다른 동사와 결합해 상대의 허락이나 배려를 요구하거나 감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먹다, 마시다, 받다’에 해당하는 동사를 ‘이따다쿠’로 바꾸기만 하면 공손한 표현이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익숙해지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우리말에는 없는 표현 형식으로 모국어를 기반으로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문법이기도 하면서, 제일 일본어스럽게 느껴지는 표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 이 일을 맡게 된 00이라고 합니다’는 ‘本日からこの仕事を担当させていただくことになりました、00と申します。’ 라고 표현한다. 직역하면 ‘오늘부터 이 일을 맡게 해 주심을 받아, 이 일을 하게 된 00이라고 합니다.’가 된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화장실을 사용해도 괜찮을까요?’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겠지만, 정중하게 표현하면 ‘トイレを使っていただいてもよろしいですか’가 된다. 이는 직역하면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 주심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이다.
우리말을 거쳐 받아들이자니 여간 낯설지가 않다. 행위 주체가 ‘나’일지라도 상대방과 관련이 있는 상황에서는 상대의 의사를 중요시하는 표현이다. 무게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옮기는 데에 나는 1년 이상을 헤매고 있다.
일본어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표현이 많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무게중심을 상대에게 두는 것이 특히 중요시된다. 비즈니스 경어는 일본인들도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때 ‘이따다쿠’만 잘 활용해도 크게 실례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니, ‘이따다쿠’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식당, 상점, 호텔에서 고객의 입장으로 자주 듣기는 하지만, 좀처럼 사용할 일이 없는 나에게 ‘이따다쿠’는 암초이고 장벽이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가 ‘이따다쿠’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가로로 놓인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하는 말. ‘이따다키마쓰’
‘이따다키마쓰‘는 ’이따다쿠’라는 동사의 정중한 표현이다. 우리말로는 ‘잘 먹겠습니다’나 ‘감사히 먹겠습니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때 ‘이따다쿠’는 ‘먹다’의 겸양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받다’의 겸양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먹겠다’는 행위에 중심이 있다기보다는 ‘내어주심’을 ‘감사히 받겠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감사의 대상은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해 준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넓혀, 식탁에 오른 모든 생명체의 근원으로 확대된다.
쌀과 채소와 과일, 해산물과 고기, 커피와 차와 빵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순환을 되짚는다. 식탁에 오른 음식물은 한 때 살아있는 생명체였음을 떠올린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이끌어준 태양과 바람과 물과 흙에 감사하며, 그들의 소멸이 우리의 생명으로 이어짐에 감사한다. 그리고 정성스레 음식으로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타다쿠’의 핵심은 ‘연결’과 ‘감사’에 있는 듯하다. 나의 살아있음은 어느 생명체의 ‘죽음’을 받아 가능한 일이다. 나의 하루는 온 우주의 허락으로 열린다.
우리말의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또한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며칠 전 추석을 앞두고 작은 어머니께서 고구마와 밤을 한가득 보내오셨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엄마는 밤껍데기를 벗겨 냉동실에 보관하셨다가 자식들이 오면 내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추석을 앞둔 주말, 교토는 새벽부터 내리는 비로 가을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며칠 후면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가을의 한가운데를 밝혀 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하얗고 둥근달을 보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다. 정성껏 빚은 송편과 햇과일, 나물과 각종 전, 생선과 고기를 올리고 감사를 표할 것이다. 감사의 대상은 넓고도 깊을 것이다.
나는 외국어 속에서 우리말에 깊게 다가간다. 양쪽의 언어를 오고 가며 비로소 말이 담고 있는 마음과 시간과 공간을 보기 시작한다.
외국어는 나에게 좌절이고, 그리움이고, 닿을 수 없는 동경이다. 발음과 억양은 늘 조금씩 어긋나고, 새로운 표현들은 밀물처럼 몰려온다. 빙글빙글 돌아 겨우 하나가 내 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그 언저리에서 끝끝내 방황하고 싶다. ‘말’이 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오래 머물고 싶다. 그러다 보면 한 톨의 밤 속에서 ‘우주’를 보는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 우주를 향해 말하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일본의 명절은 '오봉(お盆)'으로 양력 8월 15일이다. 음력 8월 15일에는 츠키미단고(月見団子、달맞이 떡)라는 떡을 먹으며 1년중 가장 아름답다는 달을 맞이한다. 츠키미단고는 지역별로 형태가 조금씩 다른데, 교토의 단고는 하얀 경단위에 팥소를 얹어 달과 함께 달그림자를 표현한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