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들어오세요. 가벼운 목례. 자리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간단히 자기소개 하세요.
「저는 '소옹 수굥'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세종시 출신입니다.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5년간 서점에서 일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일본 문학에 관심이 생겼고, 일본 문화와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에 와서 2년간 어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저의 경험을 살려 귀 사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비지니스 일본어 수업의 취업면접 대비 자기소개 연습이다. 나와 스리랑카 출신 스님 S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이 취업이나 4년제 대학 진학을 준비한다. 긴장한 학생들이 때로는 곁눈질로 대본을 보고,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가상 면접장의 팽팽한 공기를 누그러뜨린다. 나는 이날 국문학을 전공한 '소옹 수굥'으로 일본의 출판업계 취업을 준비하는 전문학교 학생이 되었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교토의 2년간의 생활은 갈래 길 앞에서 고민하는 청춘의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다시 대학을 다니며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나는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금과는 다른 나를 상상한다.
2년의 시간은 나를 나비로 만드는 '완전변태(完全變態)'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카페에 들러 커피와 책을 즐기다가도 지각하지 않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뛰었다. 예습복습은 빠뜨리지 않았고 쪽지 시험도 최선으로 준비했다. 유용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수업을 들을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학교 생활을 전투적으로 임했다.
수업은 어렵지 않았고, 첫 발표 과제가 주어졌다. 사회생활 경험치가 높은 데다 번역작가가 목표인 사람의 수준은 달라야 했다. 나는 돋보이고 싶었고, 수십번을 연습했다. 잘 했어야만 했던 나는 발표 도중 갑자기 긴장했고, 나의 언어는 이족보행 로봇의 걷기처럼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사소한 일에도 긴장해 버리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쪽팔렸다. 그날 나는 왠지 '바다 거북'이 되고 싶었다.
교토생활은 이미 1년이 훨씬 지나 있었지만, 일본어 실력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영어가 모어(母語)인 작가 '줌파 라히니'는 이탈리아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도전을 한다. 그녀는 이탈리아어와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나와 이탈리아어 사이의 거리는 지금도 극복할 수 없다. 겨우 두 걸음 나아가는데 내 인생 절반이 소요됐다시피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말이다'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나 역시 일본어의 세계에서 겨우 모래 한알 정도의 크기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 끝에 당연처럼 놓여 있을 '변신'이나 '변태'는 인생을 여섯번쯤 환생한 다음에나 가능할 것 같다.
그 날의 쪽팔림, 피로, '변태'와의 거리감은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떨어져 나감을 느꼈다. 대신 가벼워진 자리로 불완전한 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변신'을 향한 나의 욕망은 '나'를 늘 문 밖에 두었었다. 오랜 세월 외로웠을 나를 마주하니 짠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이번 생의 '변태'는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을 것 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다른 길을 걸었어도 두 갈래 길의 차이는 '송수경'과 '소옹 수굥' 정도일 것이다.
삶은 결국 길 끝이 아니라 길 위에 있음을 알게 된 지금, 가만히 소란스러운 번데기가 온전하게 사랑스럽다. 안녕.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