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과 돌

by 김광일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졸업 후 군대에 입대하기 전, H 교수님께서 학교 4층 휴게실에서 따뜻한 덕담을 건네주셨다. 교수님은 인생을 더 많이 살아본 선배이자 형 같은 존재로, 군 생활 이야기를 진심 어린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해안 경비를 하며 배를 탔던 경험은 듣는 내내 흥미진진했고, 그 이야기는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이야기의 끝자락에 교수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비우고 와라.”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당시엔 채워진 것도 없으니 비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비우라는 걸까? 생각을 비우라는 의미일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내라는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년 3개월의 공군 복무를 마쳤지만, ‘비움’의 진정한 의미는 여전히 모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파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도파민은 인간의 욕구와 의욕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실험에 따르면, 도파민이 부족한 생쥐는 눈앞의 먹이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 역시 도파민이 부족하면 의욕을 상실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SNS, 뉴스, 숏폼 영상 등을 소비하는 일상. 이 끝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채우기만 한다. 자극에 익숙해진 뇌는 더 이상 작은 즐거움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제야 교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비우고 오라’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자극으로 가득 찬 마음과 뇌를 비우고, 본연의 나로 돌아오라는 깊은 메시지였다.


박노해 시인의 <돌의 독백>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돌은 키우지 않는다. 채우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서서히 갈라주고 나눠주며 날마다 은미하게 작아진다.”


우리도 지나치게 채우려 애쓰기보다는, 돌처럼 나누고 비워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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