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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Apr 04. 2018

나의 대장

  


 나는 군 복무를 하던 10월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전투복에 방탄모를 착용한 채로 후임과 함께 후문 초소로 가는 길이다. 시간은 새벽 2시, 시곗바늘도 힘없이 늘어지는 시간. 어둠 속에서 힘찬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고독한 그림자가 4박자에 맞춰 타박타박 뛰어온다. 소리는 점점 커진다. 가을밤 침묵이 차가운 여단본부 아스팔트 위로 무너진다. 그 단단한 그림자는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뛸 것이다.


“필승!”


나는 그림자를 알아보고, 경례를 한다. 초소 근무를 함께 가던 후임도 동시에 멈춰 섰다. 그림자가 반응한다. 흐릿한 가로등 아래서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인다. 땀이 얼굴과 군청색 티셔츠를 흠뻑 적셔서 건장한 맨 몸이 도드라졌다. 그림자는 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환한 얼굴의 주인과 함께 멀어진다. 그림자는 강 희철 대위(가명)다. 〇여단 본부 정보과의 책임자.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그는 얼굴이 작고 둥글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 얼굴을 가졌다. 키는 175cm 정도. 목소리는 바리톤처럼 낮고 묵직한 목소리를 냈다. 우락부락한 근육은 없지만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고 다음 날 기지방호 훈련을 소화할 만큼 놀라운 체력을 가졌다. 20대 중반에 이미 국정원장 표창을 받을 만큼 군사 정보 분야에서 뛰어났고, 한직에 밀려난 뒤에도 변함없이 업무를 매우 꼼꼼하게 처리했다. 게다가 일과 관련에선 인간관계에서도 칼 같았다. 아무리 친해도 하급 간부가 무능하고 나태한 모습을 보일 때는 좋게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은 보안 담당 상사가 술 마시고 지각을 하자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는 심하게 야단을 친 적이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의자 몇 개가 사무실 밖으로 날아갈 정도로 요란했다고 한다. 그 상사는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무려 30분 동안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 상사는 그 일 이후로 강 대위가 부대를 떠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지 않았다. 그러니깐 강 대위가 떠나고 그다음 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성실했다. 강 대위의 엄한 모습 이면에는 부드러운 모습도 있었다. 친한 병사들에게는 장난을 잘 쳤고, 농담도 곧 잘 했고, 간식을 사주면서도 자주 못 사준다고 미안해했다. 그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이등병에서부터 중령급 간부까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가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그에게서 직접 들었다. 매년 한번 있는 보안 경진대회 준비를 위해 입 갑판을 만들다가 불현듯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미소 띤 얼굴로, 자기는 학창 시절에 연극배우 했었다고, 무대도 손수 다 직접 만들었다고.


훌륭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선한 인품은 부패한 세상에서 본인 인생을 괴롭히는 결점으로 작용한다. 그는 업무 처리에 칼 같은 성격 때문에 비리나 부정한 일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여단장과 두 차례나 갈등이 있었다. 이런 일은 군대에서 흔한 예가 아니다. 여단장은 여단의 장군을 지칭하는 말인데, 사령관 바로 밑의 직책으로 공군에서 서열이 꽤 높았다. 어느 군대나 장군은 황제나 다를 바 없다. 군법이 있더라도 여단 내에서는 여단장에게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여단장이 비리나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위 관급 장교가 나서서 막는다는 것은 보통 군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강 대위는 두 차례나 비리를 막아낸 것이다.


한 번은 여단장이 여단 내 재활용 시설에서 생긴 수익금을 횡령하려고 한 사건 때문에 생겼다. 여단 본부는 병력 수가 많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재활용 시설에 쌓인 알루미늄 캔이나 고철 등을 고철 수거 회사에 팔면 500만 원 넘는 현금이 들어왔다. 그것을 여단장이 꿀꺽하려던 것인데, 강 대위가 시설 반장과 함께 막은 것이다. 시설 반장이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효력이 있었다. 여단장도 어찌하지 못했다.


그다음에 있었던 갈등도 작지 않았다. 여단 예하 포대 중에 한 부대의 부대원이 <사병 골든 벨> 대회에 참가하여 골든 벨을 울리는 기쁜 일이 있었다. 여단에서는 축제 분위기였다. 다만, 문제는 주최 측에서 상품으로 준 노래방 기계를 여단장이 자신의 집으로 무단으로 가져가려고 한 것이었다. 본래는 병사의 소원대로 입상한 포대의 부대시설에 설치할 계획이었다. 여단장이 노래방 기계에 욕심을 부린 것은 산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병사들과 부 사관들의 처우를 몰라본 경우였다.


강 대위가 이것을 저지했다. 기지출입 보안 조치 문서를 본 뒤, 출입을 허가하지 않고 헌병대에 전화해서 트럭에 싣고 오는 노래방 기계를 본 부대로 돌려보내 버렸다. 여단장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부대에서 보안조치를 담당하는 강 대위가 막으면 어찌할 수 없었다. 여단장의 행동은 병사의 물건을 강탈한 범죄였으니 말이다. 연말에 사령관 진급을 꿈꾸던 여단장 입장에서는 크게 소문이 나는 것이 본인 진급에 좋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로 정보과가 여단장에게 찍힌 건 사실이다. 여단장의 비서 노릇을 하는 부관 장교가 에너지 절약을 한다며 작은 사무실에 에어컨과 히터를 철거해버렸다. 또 여단장에게 문서 보고를 올릴 때마다 최종 결재에서 퇴짜를 놓았다. 강 대위는 퇴근하지 못하고 추운 사무실에서 밤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강 대위가 여기보다 더 외진 부대로 전출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부관실에서 근무하는 이〇균 병장이 우리 사무실에 와서 한 적도 있다. 여단장을 보좌하는 부관 장교가 그런 이야기를 이〇균 병장에게 흘린 것이다. 은근한 회 유이면서 협박이었다.


강 대위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사무실에서 단 둘이 있을 때, 오히려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광일아. 너는 어떤 사람이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냐?”


“…….”


“옳은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늘 웃으며, 조용히 넘어가는 사람이 진짜 좋은 리더 같으냐?”


“…….”


“그런 지도자를 만나면 일하는데 편하긴 하겠지. 싫은 소리 안 하니깐. 본인도 편해.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거든. 그런데 그런 리더는 조직을 망치는 사람이야. 소인배이지. 좋은 리더는 말이다. 잘못된 것,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잘못을 따지고,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광일이 이 자식. 허허. 이 자식도 능구렁이 다 됐어. 형님이 말하는 데 대답도 안 하고. 허허."



 강 대위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지나갔는데, 나는 씁쓸하게만 보였다.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날도 있고, 비 온 뒤엔 세상이 맑다. 진부한 표현 같지만, 그런 말이 꼭 들어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무렵에는 부대에 크고 작은 사건이 줄 지어 일어났다. 의무장교가 부대 내에서 음주 운전으로 헌병대에 적발되었고, 신병이 동기생에 집단 구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며칠 뒤에는 부대 밖에서 심각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일요일 저녁에 휴가자 복귀 차량을 운전하던 최 상병이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도로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있는 할머니를 치고 만 것이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최 상병은 방심했을 것이다. 할머니 또한 팔순이 넘은 나이에 치매에 걸리셔서 버스가 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여단은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피해자 가족들이 당장 여단에 항의 방문을 하였고, 스무 살이 갓 넘은 앳된 병사는 찬 감방에 갇힐 처지에 놓였다. 여단장은 또 여단장 입장에서 사고가 외부에 알려져서 자신의 진급에 영향을 미칠까 초조했다. 이미 이 교통사고 전에 부대에서 일어난 두 차례 사건으로 기지대장이 책임자로서 문책을 당했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였다. 사령관도 이 사고 처리의 귀추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사고 비상 대책 회의가 여단장과 참모장, 헌병대장, 작전처장 등 고위 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정보작전처 회의실에서 열렸다. 평소에는 워 룸(War room) 상황실로 쓰던 곳이었다.


 


 다급하게 모였지만,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오랜 시간과 침묵에 익숙한 화석처럼 굳어있었다. 시든 얼굴들이 가문 날 콩 잎처럼 고통으로 주름져 보였다. 서로 눈치만 보며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눈빛들이었다. 문제를 자신이 나서서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해 주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나는 후임 몇 명과 맥심 커피를 배달하고 그 살얼음판 같은 현장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른 침묵을 깨트렸다. 강 대위였다.


“피해자가 팔순이 넘었다거나 치매를 앓았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문제입니다. 유족들의 마음을 잘 보듬고 최 상병이 유족과 원만하게 합의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제가 다른 부대에 있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여단장님. 이번 일은 제가 헌병대와 공조하여 처리해보겠습니다.”


돌덩이처럼 굳은 얼굴들이 강 대위를 향했다가 다시 여단장을 바라보았다. 여단장이 침을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네. 이번 일은 자네가 해보게.”


강 대위는 일을 잘 처리했다. 사고를 낸 최 상병은 부모님이 안 계셨다. 폐지를 주우며 겨우 생활을 해결하는 할머니와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보태는 어린 남동생이 있을 뿐이었다. 합의금을 낼 처지가 아니었다. 강 대위는 전 부대원들에게 성심 성의껏 기부금 협조를 부탁했다. 강 대위가 해결책을 제시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따랐다.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의 합의금 문제에서 장례식까지 유가족들이 섭섭하지 않게 강 대위가 애썼다. 결국 원만하게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최 상병도 부대에 무사히 복귀했다. 처음엔 젖은 양말처럼 축 쳐진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회복되었다. 강 대위의 공이었다. 유족들과의 문제가 해결되자 여단장은 참모장과 함께 정보과 사무실에 직접 찾아왔다. 내가 보이 찻잎을 쪼개어 차 주전자에 넣고 데우는 동안 여단장과 강 대위의 말이 이어졌다.


“강 대위. 이번 일은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닐세. 이번 일은 자네가 다 했네. 사실, 이번 일로 내가 그동안에 자네에게 했던 일에 대해 생각했네. 내가 참 잘못했지. 지난 일로 마음에 앙금이 남아있다면 제발 잊어주게. 내가 정말 잘못했네.”



 나는 여단장과 정보장교에게 보이차를 대접하고 부관 장교와 함께 복도로 나왔다. 부관 장교는 난간에 기대어 혼자 던힐 담배를 피웠고, 나는 방에서 간간히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강 대위는 연거푸 이번 일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고, 여단장은 계속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하였다. 여단장은 강 대위가 원한다면 부대에 남을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는 말도 하였다.


 그는 부대에 남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이 오기 전 부대를 떠나 자연인이 되었다. 다. 여단장은 사령관으로 진급을 하지 못했지만 재임에는 성공했다. 부관실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며 군 법당에 대형 연꽃을 주문했다. 거기서 끝이다. 그다음 해에는 진급하지 못하고, 재임도 실패하면서 전역하고 말았다. 나도 그곳을 떠났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 중에서 그 부대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대는 매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나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기지 주변을 달리고 있다. 그는 영원한 나의 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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