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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May 17. 2018

상상놀이 #1 어둠의 숲

참나무족의 최후와 꼬마 영웅의 자비


어린이 날이다. 나는 내 방에서 우리 집에 놀러 온 11살 악동과 마주한다.

  "삼촌. 우리 뭐하면서 놀 거야?"

  "응. 글쎄."

 나는 대답에 잠시 뜸을 들인다. 나는 뜸을 들이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조카는 이미 마음속으로 답이 정해져 있다. 조카가 나와 함께 놀면서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싸움 놀이이다. 주제는 영웅과 괴물의 싸움. 물론, 내가 괴물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괴물 역을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조카가 11살이 되었고, 몸무게가 45킬로그램이나 나가며, 손 힘이 세졌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조카가 매일 태권도장에서 단련한 체력은 나의 조기 은퇴 욕구에 더욱 힘을 실어 준다. 예전에는 조카가 있는 힘껏 때려도 아프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카의 장난을 다 받아주다가는 내 몸이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조카의 힘이 세졌다고 나도 그만큼 힘을 써서 조카와 놀아 줄 순 없는 거 아닌가. 나는 때리는 척만 하고, 조카의 주먹이 닿는 족족 아파하고 괴로운 척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진짜로 아프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조카에게 이제 너는 싸움 놀이를 그만 둘 나이라는 걸 설득시키는 것이다. 내 속 마음은 실내에서는 나와 보드게임만 하고, 실외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축구나 농구를 하면서 놀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조카가 핸드폰 게임이라도 하는 게 나에게는 좋은데, 그것은 누나가 결사코 반대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카가 달려든다.

  "삼촌. 싸움 놀이 하자. 삼촌이 타노스 하고, 내가 아이언맨이야."

 조카도 어벤저스를 봤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언맨은 타노스한테 지는데."

 내가 지적한다.

  "맞아. 그런데 여기서 아이언맨은 이겨."

 조카는 아이언맨의 비행 흉내를 내면서, 레이저 광선을 마구 쏜다. 레이저 광선은 손바닥으로 변해서 나의 옆구리와 뱃살을 공격한다. 나도 타노스를 흉내 내며 레이저 포를 쏘지만, 삼촌판 타노스는 영 싸움에 젬병이다. 비운의 타노스는 금방 지쳐서 땅바닥에 뻗는다. 조카가 그 위에 타고 올라가서, 엉덩이로 머리를 누른다.

 "항복! 항복!"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항복을 외친다. 조카는 기쁜 얼굴을 하며 내 머리 위에서 내려온다. 나는 생각한다. 아! 피곤하다. 쉬고 싶다. 그때, 나는 해결책이 생각난다.  

 "태연아. 우리 이거 그만하고, 다른 게임 한번 해볼래?"

 조카는 게임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다. 이내, 아이언맨 비행을 끝내고, 조카로 돌아온다. 아싸! 절반은 성공이다. 내가 생각해낸 게임은 상상놀이이다. 일단, 나는 조카를 내 옆에 앉힌다.  

 "삼촌이랑 상상놀이 한번 해볼래?"

 "그게 뭐 하는 거야?"

 조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되물어 본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거야."

 나는 무척 신난다는 느낌으로 두 팔을 아래 위로 흔들면서 '신나는'을 강조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한번 해볼래."

 "태연아.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봐."

 조카는 나를 따라 가부좌를 튼다.

 "그렇게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어. 그냥 편안하게 앉아."

 조카는 다시 가부좌를 풀고 앉는다.

 "그리고 눈을 감아."

 조카는 눈을 감는다.

 "이제 우리는 모험을 떠나는 거야. 우리는 황토색 말을 타고 있어. "

 나는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든다. 조카도 나의 인기척을 느끼며 같이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든다.

 "우리는 푸른 초원을 달리고 있어. 밝은 햇살이 우리 앞을 비추고 있고, 따뜻한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어오고 있어. 그리고 꽃과 나비가 지천에 널려 있어. 참 아름다운 풍경이야."

 "그런데, 삼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야."

 "음...... 우리는......  음...... 그러니깐, 초원을 지나서 어둠의 숲을 지냐야 해."

 "어둠의 숲?"

 "응. 천년 묵은 나무들이 사는 곳인데, 그들은 이방인을 무척 싫어해. 그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튼튼하고 질긴 나뭇가지로 마구 공격하지."

 "그럼. 우리는 뭘로 싸워?"

 "우리도 무기로 싸워야지. 삼촌이 마법의 창을 줄게. 이 창은 잔 다르크가 쓰던 창으로, 퇴마 세례를 마친 은으로 도금한 창이야."

 "그거 말고, 총이나 미사일 같은 거 없어."

 "물론 있지. M249 분대 자동화기 어때?  1분에 750발에서 최대 1000발 발사하는 기관총이야. 여기에 철갑탄과 소이탄을 장착했어. 어때? 좋아?"

 "응. 좋아. 거기다가 다연장 로켓포도 추가해줘."

 "다연장 로켓포? 그건 많이 큰데. 들 수 있겠어?"

 "응. 그럼 그건 빼."

 "그럼. 삼촌은 마법의 창을 들게. 이제 어둠의 숲으로 돌격!"

 "돌격!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조카가 입에 침을 튀겨가며 기관총을 쏜다. 나도 '챙챙. 챙챙.' 금속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싸운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슬슬 지겨워졌는지 조카가 묻는다.

"그런데 삼촌. 우리 언제까지 싸워?"

"이제 거의 다 무찔렀어. 이제 5명 남았어. 아니. 이제 다 쓰러졌고 1명 남았어. 5000년 묵은 참나무만 무찌르면 돼."

"그게 대장이야?"

"응. 끝 판 대장이야. 이제 이 녀석만 무찌르면 우린 어둠의 숲을 지날 수 있어."

"그다음엔 어디로 가는 거야?"

"성으로. 공주가 갇혀있는 성으로 가서 공주를 구해야지. 자 빨리 싸워! 참나무가 그쪽으로 도토리 폭탄을 던지고 있어."

" 철갑탄 발사!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조카가 다시 입에 침을 튀기며 M249 기관총을 발사한다.

"삼촌이 참나무를 동굴로 유인할게. 삼촌이 동굴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동굴 입구 앞에서 매달리면, 그때 네가 폭탄으로 동굴을 무너뜨리는 거야. 알겠지?"

"응. 알겠어."

그런데, 조카의 대답이 시원찮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묻는다.

"아니.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조금 불쌍한 거 같아서. 자기도 부하들과 자기 땅을 지키려고 싸운 건데, 다 죽이면 그렇잖아."

"그럼 어떻게 할까? 살려줘? 그러다가 우리를 공격하면 어쩌지?"

"일단은 마취총을 쏘아서 기절시킨 다음에 협상을 하면 어때?"

"협상? 무슨 협상?"

"우리는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었다. 공격은 너희가 먼저 한 것이다. 우리와의 전투로 너희 종족이 입은 피해에 대해 보상하겠다. 너도 풀어주겠다. 우선, 참나무 500그루를 심어주겠다. 나머지 500그루는 우리가 무사히 숲을 지나고, 돌아오면 그때 심어주겠다. 오케이?"

"그래. 오케이."

 나는 참나무 대장이 되어 조카와 협상을 맺는다. 우리는 어둠의 숲을 무사히 지나고, 어둠의 숲에는 무지갯빛 평화가 찾아온다.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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