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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Apr 25. 2018

고양이는 털을 보고 제 짝을 고르지 않는다.

 “광일아. 여기 좀 나와서 봐라.”    


 


 어느 따뜻한 봄날 일요일 오후였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고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경쾌하면서 살짝 웃음기가 배어 있다. 그 느낌은 뭐라고 할까? 버터처럼 부드럽고 고소하면서 사과잼처럼 경쾌한 발랄함, 버터를 바른 빵에 사과잼을 얹었을 때의 느낌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무얼 보고 그리 재미있는가?



방을 사부작 나와 보니 흐뭇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가 창문 밖,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어머니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선이 아름다운 고양이 한 마리가 모래 바닥에 뒹굴뒹굴하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요가 체조하는 요염한 아가씨 같았다. 하얀 털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다. 매우 잘 먹고 털 관리를 잘해서 보기 좋았다. 예뻐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나도 알고 어머니도 아는 녀석이다. 미용실에 사는 녀석이 분명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슈퍼마켓과 미용실이 거의 붙어 있다고 할 만큼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고,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미용실을 지나야 했다. 그러니깐 내가 그 녀석을 모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만약 맹인이라고 할지라도 고양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처음 이 동네에 미용실이 생겼을 때 미용실 고양이는 저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이 등장하기 5년 전, 즉 미용실이 처음 개업했을 때는 짙은 회색빛의 암컷 페르시아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타미나(영화 <페르시아의 왕자>에 나오는 공주 이름이다). 이름에서처럼 외모도 이국적이고 귀족 느낌이 나는 그런 고양이었다. 다소 뚱뚱한 체구로 낮에는 대개 미용실 유리창에 딱 붙어 앉아 잠을 잤는데, 밤만 되면 그녀는 아파트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낮에는 비만 환자처럼 누워 지내다가 밤만 되면 체조 선수로 변신하는 것이다. 직접 봐도 믿지 못할 정도로 180도 돌변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어느 겨울날엔가 미용실에 가니 그 고양이가 2세를 잉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세의 아비는 아파트에 사는 길 고양이었다. 품종을 알 수 없는 하얀 고양이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페르시아 고양이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미용실 사장님 말로는 오백만 원 주고 데려온 페르시아 고양이라는데, 2세는 잡종이라니 나는 단순하게 속물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웬걸. 미용실 사장님은 덤덤하게 말씀했다.



 “우리 사람 기준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고양이라도, 그녀에게는 최고의 남자 친구겠지."



 생각해보니, 동물의 사랑에는 애초에 인간이 고안해 낸 신분 따위는 없었을 터였다. 그 보다 더 본질적인 것, 너와 내가 만나면 가슴이 뛴 다는 것. 고양이는 그것을 본능으로 알았던 것이 아닐까.



 페르시아의 그녀는 이듬해 봄 출산을 했다. 검은 줄무늬에 바탕이 하얀 고양이었다. 모두 세 마리였다. 하얀 털은 아비의 흔적이었고, 검은 줄무늬는 그녀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는 어미 주변에 붙어서 젖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몇 달쯤 지나자 어미 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들끼리 물고 빨며 노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아비가 누군지 모른 채 성장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미용실에 가니 한 마리만 어미 곁에 남아 있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다른 주인을 만나 타지로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베란다 창문가에서 어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고양이는 최후에 어미 곁에 남은 고양이일 터였다.



 아파트 뒤뜰은 볕이 잘 들어 따뜻했다. 녀석은 기지개도 켜고 하품도 하고 뒹굴뒹굴 구르기도 하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사진 한 장 찍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 좋은 생각인 데요”라고 대답하며,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가 사진기를 들고 나왔다. 연달아 세 장의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아뿔싸.


 


 사진기의 셔터 소리가 너무나도 컸다. 당황할 만큼 소리가 컸다. 디지털 사진기라서 소리를 줄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명백한 나의 불찰이었다. 당연히 고양이도 소리를 듣고는 자신을 찍는 나를 발견했다. 애민한 녀석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경계하다가 어슬렁어슬렁 자리를 떴다. 명당을 놓쳐서 짜증 난 얼굴이었다.



 나는 복잡하고 미묘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녀석의 입장에는 비밀스러운 명당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텐데, 내가 기척을 내는 바람에 녀석에게 평화롭고 조용한 자리를 뺏고 말았다.


 녀석이 사라진 빈 풍경을 보니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이럴 때는 나도 거리의 고양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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