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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Sep 10. 2020

[엽편소설]실종

삼촌과 조카가 평일에 놀이동산에 갔다. 두 사람은 운행을 정지한 오리 배 호수와 뾰족한 녹색 지붕이 달린 성탑을 지났다. 삼촌은 조카의 무당벌레 모양의 가방을 둘러맸다. 가방의 열쇠고리에는 은방울이 달려 있어, 걸을 때마다 땡그랑 달그랑 소리가 났다. 조카 현우는 다섯 살이었다. 현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배트맨 옷을 입었다. 달릴 때마다 검은 망토가 바람에 활짝 펼쳐졌다. 현우는 왼손으로는 삼촌의 손을 오른손으로는 땀에 촉촉이 젖은 지폐를 꼭 쥐고 있었다. 삼촌이 준 용돈이었다. 

삼촌이 스낵코너 앞에 멈춰서 검은 안경을 매만지며 현우에게 물었다. 

“뭐 먹을래?”

현우는 스낵 코너에 붙은 메뉴판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듯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했다. 

“레드 피치 슬러시.”

삼촌은 잠깐 망설였다. 자신의 누나가 알면 싫어할 것 같았다. 삼촌은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슬러시를 계산했다.

아주 오랫동안 삼촌은 이날 있었던 일들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사람들의 모습들 또한 떠올릴 것이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어린 현우를 보고 웃음 짓던 모습이나 자기 또래의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곰돌이 복장을 하고 잠시 인형 탈을 벗고 있는, 머리카락이 땀에 젖은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모습도 기억할 것이다. 현우의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꽉 쥐었던 것, 그리고 점원에게 슬러시를 받아들었을 때 차가운 감촉도 기억할 것이다. 

무엇보다 딸기코에 광대 복장을 한 키 작은 남자를 기억할 것이다. 귀신의 집 뒤편에 앉아 웅크린 채, 침이 뚝뚝 떨어지는 금니를 드러내며 기분 나쁘게 웃던. 

삼촌과 조카는 스낵코너를 지나 좀 더 걸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현우는 삼촌의 다리에 매달렸다. 삼촌은 현우를 번쩍 들어 올렸다가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삼촌은 현우가 “삼촌, 제발!”이라며 손에 쥐여준 핫바 봉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봉지 뒤편에는 먹어 선 안될 것 같은 화학품이 잔뜩 적혀 있었다. 아질산나트륨, 에리토브산나트륨, 폴리인산나트륨, 메타인산나트륨, 피로인산나트륨, 말트덱스트린, 소브란칼륨, 뭐 이딴 걸 왜 넣는 담. 삼촌은 생소한 화학물질들을 읽어나간 후 마지막으로 콜레스테롤 함량 21mg을 읽어 나갔다.  

삼촌은 현우가 다리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전히 손에 든 봉지를 보며 삼촌이 말했다. 

“현우야. 이건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거 샀다간 너의 엄마가 난리 날 거야.”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우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 토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삼촌은 일부러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광대 복장을 한 그 남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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