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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Feb 23. 2024

[르무통 X 제주] 외로워지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군대를 제대한 이듬해였다. 배낭을 꾸려서 제주로 떠났다. 당시에는 캠핑이라는 말 대신 야영이라고 불렀고 야영에 필요한 물품을 대여해 주는 가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텐트와 코펠과 버너를 빌렸다. 집을 떠나며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으며 숙박업소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 현금 딱 35,000원만 들고 집을 나섰다. 도보여행이자 무전여행이었다.

제주시를 떠나 성산을 향하고 있었다. 무작정 중산간도로를 걸었다. 그때의 제주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구릉 같던 오름과 바람에 몸을 눕히던 억새와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없었던 도로. 세상에 나 혼자인 거 같았고, 제주의 평원이 모두 내 것 같았다. 그렇게 언덕을 넘던 어느 순간이었다. 저 멀리 바다에 거대한 성벽이 하나 있었다. 극적이었으며 너무 거대해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풍경이었다. 전율!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의 두 번째 제주 여행이었다.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수마포구와 광치기해변

그날 내가 본 건 성산일출봉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보았던 풍경 중에 가장 장대한 풍경이었다. TV에서도 그런 장관은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나는 성산일출봉 아래에 텐트를 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산일출봉에 오르면 성산일출봉을 볼 수 없다. 성산일출봉 남쪽 바로 아래에 수마포구가 있다. 성산일출봉의 거대한 장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마포구가 제격이다. 포구라고는 하지만 어선도 없는 아담한 포구다. 대신 해녀들이 있다. 마침, 부지런한 해녀 한 명이 바다로 물질을 하러 나가고 있었다. 방파제에는 병아리처럼 노란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해녀는 방파제 끝에서 바다로 뛰어들었고 수경을 쓴 얼굴을 수면에 파묻은 채 점점 먼 바다로 나갔다. 

성산일출봉 아래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해군 동굴 진지들이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은 연합군과의 전투를 준비하며 제주 전역에 동굴 진지를 만들었다. 그중 성산일출봉에는 일본해군의 자살특공기지를 구축했다. 성산일출봉에 구축된 동굴 진지는 모두 18개이며 폭약을 실은 소형선을 감춰놓기 위한 시설이었다. 

현재 낙석 위험 때문에 동굴 진지에 접근하는 건 금지되어 있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 진지까지만 접근이 가능하다.

수마포구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해변이 광치기해변이다. 광치기해변의 길이는 무려 3km에 달한다. 광치기해변의 공용주차장 인근은 지금 온통 유채꽃이다. 울퉁불퉁한 현무암 돌담 너머의 유채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만개한 유채꽃과 함께한 르무통 포레스트(내추럴베이지)


본격적으로 길을 걸었다. 해안 산책로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좌측에는 바다, 우측에는 낮은 사구가 있어 세상과 분리된 길이다. 그 길 어디에서 텐트 하나를 보았다. 저만치 성산일출봉을 품에 안은 자리였다. 내가 처음 성산일출봉과 맞닥뜨렸을 때처럼 그도 지난 저녁 성산일출봉에 놀라 이곳에 텐트를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어디쯤에서 나도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성산일출봉을 그리며 나의 첫 번째 제주 여행을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펜팔을 하던 제주 여자 친구(?) 집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자 친구가 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서 딱 한 번 얼굴을 보았을 뿐, 주야장천 편지만 주고받던 사이였다. 방 하나가 비었으니 언제든 놀러 오라는 말 한마디에 겁도 없이 덜컥 집을 나섰다. 당시, 제주 여행은 지금의 해외여행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신혼여행을 대부분 제주로 떠나던 시절이었다. 

비둘기호 열차와 통통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 날 폭설이 내렸다. 제주시에서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버스가 모두 결행되었다. 서귀포까지 구경 가려던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대신 온통 설원으로 변한 제주시를 여자 친구의 친구들까지 네댓 명이 며칠이나 싸돌아다녔다.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수시로 뛰어다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너무 순수해서 보석처럼 간직하고 싶은 시절이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작은 종이상자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집은 공장과 붙어 있었다. 육지에서 놀러 온 딸의 친구를 친근하게 맞아주셨던 아버지의 미소가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며칠 후 겨울 태풍은 지나갔고 그제야 다시 통통배를 타고 제주를 떠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제주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육지로 시집을 갔을까? 어디에 있든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완성한 성산일출봉


그림을 완성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날은 맑았지만 바람은 제법 거셌다. 이따금 나처럼 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혼자는 나뿐이었다. 그리고 만난 백기 해녀의 집. 소박한 해녀의 집 안에는 아주머니 둘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끄러미 출입문 밖을 지켜보던 모습은 시골의 간이음식점 같은 모습이었다. 배가 고팠다면 망설임 없이 들어갔겠지만 난 늦은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대신 해녀의 집 옆에 있는 무인판매대에서 주먹만 한 귤 4개가 들어 있는 봉지를 집어 들었다. 가격은 1,000원. 잔돈이 없어서 무통장으로 입금했다. 바다를 향한 의자에 앉아 귤 하나를 까먹었다.

이제 길은 축대 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측 해안사구 때문에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않았다. 앞에는 내가 가야 할 길과 바다가 있었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조금씩 멀어진 성산일출봉이 있을 뿐이었다.


섭지코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풍경


신양섭지와 섭지코지

광치기해변이 끝나는 지점쯤에 신양섭지가 있다. 신양섭지는 하늘에서 보면 잘록한 지형이다. 물방울 모양의 섭지코지와 광치기해변의 남쪽을 이어주는 곳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광치기해변, 좌측은 신양섭지인 셈이다. 

아이들 몇이 까르르 소리를 지르며 파도가 찰랑대는 백사장 끝까지 뛰어갔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어른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아이들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유도 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푸른 파도 위 선돌과 평화로운 육지 풍경


이제부터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었다. 섭지코지의 동쪽 끝에 다다르는 동안 몇 개의 불턱을 만났다. 불턱은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던 곳이다. 작업 중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던 곳이라 가운데는 모닥불을 지필 수 있도록 둥근 화덕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탈의장 건물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으며 옛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독특한 건 대부분의 불턱이 원형 돌담을 두른 것에 비해 섭지코지의 불턱은 반원형으로 개방 형태라는 점이었다.

방두포등대

섭지코지의 남쪽 끝을 돌아서면 하얀 등대를 만난다. 등대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등대의 이름은 방두포등대다. 등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등대 정상에 오르자, 그렇지 않아도 거센 바람이 더 가열하게 불어왔다.이제 오늘 걸어야 할 길은 끝났다. 등대에서 내려와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제주 여행을 생각했다. 나의 세 번째 제주 여행은 조금 길었다. 오로지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주일 만에 짐을 싸서 제주로 내려왔다. 여행이 아니라 이주였다. 가난해서 떠날 수 있었다. 버릴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1년 사글세 250만 원이 아까워서 문간방 하나를 얻어서 살았다. 당연히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가 그리울 때는 오토바이를 몰고 바다로 가거나, 차라리 더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주에서 맞이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 하지만 나는 그때처럼 쉽게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외로워지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 어른이 된 후 외로움이란 단어를 삶의 중요 키워드로 삼았다. 감히 외로움을 알아야 삶의 깊이를 안다고 생각한다. 문득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고 싶을 때,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 제주는 내 외로움의 절반을 품은 섬이다.


드로잉으로 완성하는 여행의 마무리


Tip

섭지코지는 해안가를 제외한 대부분 구역을 휘닉스아일랜드제주가 차지하고 있다. 휘닉스아일랜드제주의 시설물 중에 글라스하우스와 유민아르누보뮤지엄은 숙박 이용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두 건물 모두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작품이다. 글라스하우스 2층은 레스토랑이고 1층은 카페다. 특히 카페에는 음료와 ‘씨글라스 마그넷 만들기’를 묶은 상품도 있다. 유민아르누보뮤지엄은 아르누보 유리 공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이다.





[르무통 x 제주] 시리즈 작가 소개

박동식 여행가, 사진가, 에세이스트


카메라를 들고 길을 떠나는 유목여행자다. 

세상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것을 즐기며 때로는 돌아서서 혼자가 되기 위해 애쓴다. 

저서로는 『마지막 여행』 『열병』 『여행자의 편지』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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