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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13. 2019

달콤한 문 / 손미

내멋대로 오독하기

  초희楚姬
  붉게 터진 네 아기를 찾으러 갈 시간 너는 맨몸으로 딱딱한 무덤을 나와 우주에 떠 있는 고아원으로 가자 측백나무가 길게 삐져나온 별 하나를 찾자 언젠가 지나오는 길에 노란 손수건을 매어둔 것 같은 나무가 있다
  스물일곱 송이 꽃이 폈고 비로소 우리는 가장 아픈 꼭짓점에 섰지 토성의 달들이 우리의 소풍을 반겨줄 것이다

  초희, 달아나자 우주를 향해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머리카락 뜯으며··· 가는 길 어디쯤 앉아 단 한 번만 춤을 추자 네 시를 비웃던 남자와 내 삶을 비웃던 애인이 모퉁이에서 만나 웃거나 혹은 외면하겠지

  문밖에서 우주가 울고 있다

  문을 열면 고아처럼 버려진 것들이 젖을 찾아 온몸에 파고들어 초희, 우리는 가서 이름 없는 것들의 어미가 되자
  우리, 가는 길 어디쯤 앉아 별의 꼭지를 잡고 단 한 번만 웃거나 울자 스물일곱 송이 꽃이 졌고,
  사자가 먹은 제 새끼를 생각하는 기린 한 마리가 우리를 배웅해 줄 때 미리 와서 떠돌던 스푸트니크의 개가 마중 나오는 그림자가 보인다
  자, 이제

*초희楚姬 : 허난설헌의 이름



  화자는 '달콤한 문' 앞에 서 있다. 왜 문은 달콤할까? 아마도 문 안쪽의 세계가 시고 쓴맛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쓰디쓴 세계를 나갈 수 있는 달콤한 문, 그 앞에서 화자는 자신보다 사백 년 먼저 이 문으로 내몰렸던 초희의 이름을 부른다. 누이를 사랑하고 누이의 작품들을 아꼈던 동생이 아니었다면 이름조차 남아 있지 못했을 초희. 주석이 부연하듯 초희는 허난설헌의 본명이다. 그는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천재였다. 산문 시 서예 그림 등 다방면에 재주가 깊었다. 그러나 초희는 너무 일찍 태어났다. 초희가 태어난 시대는 조선이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활동이 제한되고 경제적 자립도 불가능했던 암울한 시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은 현모양처뿐이었다. 일찍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섬기고 정절을 지키고 자식을 돌보며 온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여인에게 예술적 재주가 무슨 소용일까. 그의 천재성은 남편을 비롯한 뭇 남성들의 무시와 시기만 야기할 뿐이었다. 같은 여자인 시어머니도 초희 편이 아니었다. 예쁜 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며느리를 늘상 구박했다. 세상은 왜 천재를 낳았으면서도 시기하고 괴롭히는 걸까. 너무 일찍 태어난 초희는 불운한 생을 살다가 너무 일찍 죽었다. 달콤한 문을 열고 우주로 날아갔다. 초희에게 문 안쪽은 얼마나 부조리하고 협소했을까. 문 안의 세상은 초희를 견디지 못했다. 그의 나의 스물일곱, 초희는 문 안의 편향된 질서와 편협한 거주자들에 의해 문밖으로 추방됐다.


  초희가 우주로 떠난 후 사백삼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지구는 많이 변했을까? 화자는 회의적이다. 여전하다고 생각하기에 초희를 떠올리고 다른 별로 가잔다.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열매를 맺는 '측백나무'가 자라는 어느 별로 가서 속세를 잊고 신선놀음하잔다. 세상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산업혁명,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여성의 사회 경제 정치 활동의 통로를 열어주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남성적이지 않은가. 지금도 일상에서 여성에게 은밀하게 가해지는 편견 구속 차별 폭력 등으로 인한 고통의 전부를 (나를 포함해)이번 생에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남성에게 여성은 영원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사자가 먹은 제 새끼를 생각하는 기린'과 '미리 와서 떠돌던 스푸트니크의 개' 정도 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부의 힘에 의해 삶의 소중한 부분을, 혹은 삶 자체를 빼앗긴 '암컷'이라는 것. 고통과 상실이 난무하는 쓰디쓴 세계를 빠져나가는 문은 얼마나 달콤한가. 하지만 시인은 끝내 '달콤한 문'을 열지 않고 시를 닫는다. 초희가 살았던 스물일곱 송이 이후의 삶을 더 살아볼 요량인 듯하다. 그렇게 삶의 고통을 견디며 시를 꽃피우려나 보다. 손미 시인 파이팅!


“허난설헌이 생을 마감한 나이인 스물일곱 살 무렵, 나 역시 힘들고 상처 받았으며 그 마음을 오롯이 담아 시를 썼습니다. 과거 속 인물을 통해 사랑과 이별, 결혼과 출산 등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현대사회 젊은 여성이 겪는 불안한 심리와 갈등도 함께 느껴볼 수 있겠지요.”

시인 인터뷰 中



덧 : 스푸트니크의 개

스푸트니크의 개의 이름은 '라이카'이다. 라이카는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던 암컷이었다. 춥고 배고프지 않은 날이 드물었을 테지만, 이따금 마음씨 좋은 사람이 던져주는 빵 한 조각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라이카는 영문도 모른 채 한 집단에게 납치되었다. 라이카로서는 목적을 알 수 없는 강제 훈련을 받은 후 소련의 두 번째 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로 쏘아 올려졌다. 사람들은 라이카가 작은 유리를 통해 보았을 푸른 지구를 제멋대로 상상하며 라이카를 우주영웅이라 칭송했다. 소련 정부는 인류 최초로 지구 생명체를 우주로 보냈다며 우쭐댔다. 그러나 정작 라이카는 그런 허명을 원한 적이 없었다. 영웅적 삶에 동의한 적이 없었다. 다만 길 위의 삶에 만족했던 떠돌이 개 라이카는 성층권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고압과 고열 산소 부족 그리고 방사능에 의해 푸른 지구를 보기도 전에 고통스럽게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자신의 동의 없이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스푸트니크의 개 라이카는 외부의 힘에 의해 존재를 부정당하고 자유의지를 빼앗기고 생존마저 강탈당한 이 땅의 모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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