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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Nov 16. 2019

굳빠이 깜상

    지난해 봄, 골목에 꽃이 피고 꿀벌이 날아들던 어느 날이었다. 작고 새까만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 어귀에 모습을 드러냈다. 깜상과의 첫 만남이었다. 깜상은 낯선 인간이 무섭지도 않은지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다리에 저의 몸을 문지르며 작은 소리로 울었다. 엄마를 찾고 있었을까. 어쩌나 나는 네 엄마가 아닌데.


    아버지는 녀석에게 깜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마트에서 사료를 사 왔다.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깜상에 반해버린 나는 그 녀석을 방에서 기르고 싶었지만 털이 날리는 거라면 질색하는 어머니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대신 보일러 실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깜상은 아버지와 나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깜상은 꼭 강아지 같았다. 멀리서도 나를 보면 다가와 알은체를 했고, 보이지 않아도 깜상~ 하고 몇 번을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 화답했다. 출근길에는 골목 끝까지 쫄래쫄래 따라왔고, 퇴근길에는 내 차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골목 초입에 마중 나와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면 깜상은 강아지처럼 나를 졸졸 따라오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울어댔다. 고양이 답지 않게 참 정이 많은 녀석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깜상 밥을 챙겨주긴 했지만 우리는 깜상의 주인이 아니었고 깜상도 우리 고양이는 아니었다. 깜상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깜상은 자유인, 아니 자유묘였다. 마음 내키는 대로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했고 어쩌다 이성과 눈이라도 맞으면 이박삼일 외박을 하기도 했다. 며칠 보이지 않는 날이면 걱정이 되었지만 삼일 째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 들러 저의 안부를 전해왔다. 그런 깜상이 기특해서 나는 자주 털을 빗겨주었다. 깜상은 기분이 좋은지 벌러덩 드러누워 연신 가르릉거렸고 그 울림은 내 손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졌다. 그때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나의 작은 세계는 참 고요했다.


    한 살배기 깜상은 뜨거운 여름을 무사히 보냈고 낙엽이 뒹구는 가을을 지나 난생처음 겨울을 맞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 깜상은 자주 보일러실에 들어왔다. 연탄 통 옆에 몸을 바싹 붙이고 앉아 말없이 한참을 꾸벅꾸벅 졸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졌다. 첫눈 오던 날이 생각난다. 깜상은 하늘에서 하늘하늘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신기한지 현관문 앞에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었다. 나도 따라서 깜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첫눈을 처음 보는 녀석의 마음을 헤아렸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자 깜상은 묘생에 대해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거침없이 동네를 누볐다. 주위의 수컷들과의 영역 싸움에서도 이긴 듯했고, 활동 반경도 그만큼 넓어졌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며 가며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와 나는 사료를 챙겨주었다. 그게 고마웠을까. 어느 날부터 깜상은 참새를 잡아왔다. 어머닌 기겁했고 아버진 깜상을 혼냈고 나는 깜상에게 푸닥거리당한 참새 털을 쓸어야만 했다.


    그렇게 가을이 왔다. 깜상과 우리는 여전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깜상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이 녀석 또 바람났나? 하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삼일이 지나고 사일 오일이 지나도 깜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나도 사흘 째 되는 날에는 꼭 돌아와 안부를 전하던 녀석인데...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깜상은 찾아오지 않았다. 출퇴근 길이 가을처럼 쓸쓸했다. 그 무렵 깜상이 죽었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쥐약을 먹고 죽었는데 아마 그 고양이가 깜상 같다고. 우리 동네에서 깜상 같은 고양이는 깜상이 유일했다. 온몸이 까만 검정 단색에 인간한테 친근하고 애교가 많은 고양이는 깜상뿐이었다.


    깜상이 사라진   달이  되어간다. 깜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문이 맞는 듯싶다. 작은 짐승이라도 한동안 곁에 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니 마음이 허전하기 그지없다. 깜상은 사라졌는데 깜상과 함께한 시간은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시간에서 깜상의 몸만 빠져나간 공백은 날로 헛헛함을 더한다. 처음엔 어디  싸돌아다니고 있겠지, 바람 제대로 났나 보네 하고 깜상의 부재를 애써 흘렸는데, 이제는 그만 깜상의 죽음을 인정해야  듯싶다. 인간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 눈빛, 온기, 다정함을 알게   깜상. 깜상을 빗질해줄 때의 몸의 울림과 느리게 흐르던 시간과 고요함을 아마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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