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 순간들
첫 여행은 가출이었다. 초등학교 오 학년, 아직은 바람이 시리던 오월이었다. 함께 가출하자는 친구의 권유에 나는 홀랑 넘어갔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정과 사회에 불만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면 사는 일이 조금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만 하루 만에 붙잡혔다. 전날 밤 야산에서 거적때기도 없이 하룻밤을 지새우며 발이 얼고 입이 돌아갈 뻔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밤의 무서움과 세상의 광막함, 무수한 별들, 그리고 여행이라는 낭만적 단어의 현실성을 날것으로 깨달았다. 그 후로 가출은 꿈도 꾸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된 이후로는 자주 여행을 다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방랑에 가까웠다. 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뭐를 잘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하찮은 나를 위해 어딘가에 예비돼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가진 시간이 너무 많았고 심심했다. 그래서 툭하면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났다.
길 위에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건 때로는 눈부신 풍경이었고 때로는 맑은 사람이었다. 우연처럼 조우한 아름다운 순간의 품 안에서 나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곤 했다. 나에게 파문처럼 밀려오는 어떤 울림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설명할 수 없는 농밀한 위로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굳이 무엇이 되지 않아도 이런 순간들로 남은 생을 채색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한 순진한 믿음으로 나는 더 자주 방황을 즐겼다.
여행이 좋았지만 가난했으니 돈은 벌어야 했다. 공장도 다니고 학원 선생 노릇도 하고 주유소도 전전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일상은 거대한 공장 같았고 나는 공장을 돌리는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의미 없이 마모되고 소모되다가 폐기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습자지보다 얇고 건조한 관계는 애틋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지독한 따분함이었다. 참다 참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봉착하면 나는 습관처럼 여행을 떠났다. 길 위에 흩뿌려진 아름다운 순간들을 몰래 줍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물질적으로 가진 거 쥐뿔도 없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철없는 건 여전하)다. 그래도 지금은 소백산 자락에 일자리 하나를 얻어 지내고 있다. 여행으로 단련된 시력 탓인지 이곳으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나는 작고 사소한 아름다운 순간들과 자주 마주친다. 출퇴근 시간에 걸리는 파스텔빛 노을이 그렇고, 푸른 소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노론한 햇살이 그렇다. 누군가 방금 흔들어 놓은 스노우볼처럼 이따금 세상 가득 흩날리는 눈발도 그렇고, 히말라야의 진파랑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의 하늘색도 그렇다. 그리고 말 하나도 고르고 골라서 하는 동료들의 여린 주저함과 세심한 배려도 그렇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다!)
문장이 될 수 없는 아름다움 들은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은가. 굳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그것들은 사실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다만 그것을 발견할 마음의 여유가 내 안에 없었을 뿐.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서야 겨우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
지금까지의 내 여행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우연히 발견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굳이 그것 것들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주위에 널려 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또다시 먼 여행을 떠나게 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든다. 그때의 여행은 무엇을 위한 여로일까? 잘 모르겠다. 떠나봐야 알 것 같다. 알기 위해 여행을 여행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