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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un 22. 2019

여행을 여행해

여행의 사소한 이유

아무런 전조 없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씬들은 대부분 여행에서의 짧은 컷이다.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의 이름이 여행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물처럼 흐르다가 어느 장소에 도착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렇게 예전 여행 장면이 현상되면 공간은 대부분 어느 길 위거나, 산 중턱의 벼랑이거나, 어느 해변이거나 그렇다.


오늘 인화된 장면은 이거다. 나는 경운기 짐칸에 실린 볏단 위에 누워 있다. 경운기의 심한 진동은 볏단을 통과하며 부드러운 율동으로 바뀌어 몸을 흔들다. 요람 위에 누운 아기가 된 듯한 안온함이 몸 전체로 퍼진다. 하늘엔 석양이 눈 앞의 구름을 붉게 물들인다. 나는 쉽게 저녁노을에 감동하곤 하는데, 오늘은 정말 장관이다. 내 눈 앞에 수평으로 누운 하늘 끝에서 끝까지 온통 노을빛이다. 붉은 하늘이 경운기의 더딘 속도로 느리게 느리게 흐르고 있다. 불현듯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나는 참 운이 좋구나. 나 말고 어느 누가 지금 이 순간 나처럼 시골 노부부의 경운기 짐칸에 폭신한 볏짐 위에 누워서 이토록 아름다운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까. 떠나와서 참 다행이다.


여행에 대한 다채로운 금언처럼, 여행의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다. 누군가는 하나뿐인 인생, 죽어라 일만 하다가 죽기엔 왠지 억울하고 분해서 짧고 굵게 즐기기 위해 떠난다, 또 혹자는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과 도전을 위해 떠난다. 그러나 자신을 찾기 위해 지구의 반대편까지 떠돈 이는 자신은 언제나 자신 안에 있었음을 깨닫고, 한바탕 인생을 즐기기 위해 떠난 자는 아찔한 쾌락에도 자극이 무뎌지는 특이점이 있음을 알게 되며, 모험과 도전을 위해 집을 나선 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모험이며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는 일이 도전임을 깨우친다. 그렇게 여행이 처음 기대와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더라도, 실패한 여행은 실패한 대로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 여행은 그냥 여행을 여행하는 일이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건 이런 사소한 장면들뿐이다. 하지만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도 결국 이렇게 우연하고 아름다운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의 짧은 영상이다. 그런 영상들이 아무런 전조 없이 재생되면 나는 눈을 감고 재생 속도를 늦춘다. 그때의 기억을 불러와서, 할 수 있는 만큼 작은 디테일까지 복원한다. 귓가에서 부서지는 경운기 엔진 소리,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질감, 하늘에 퍼지는 노을의 계조, 저녁 공기의 소슬한 온도. 어떤 화소는 깨지고 왜곡되고 굴절된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다. 내가 복원하려는 건 원본이 아니라 새로운 버전이니까.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니까.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복원에 성공한 영상을 나는 계속 돌려본다. 멀리서 들려오는 경운기 소음에 걷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경운기가 조금씩 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한 팔을 허수아비처럼 올리고 엄지를 세운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할아버지가 검은 고무로 칭칭 감은 좌석에서 엉덩이를 어정쩡하게 들어 올리고 깡마른 팔을 앞으로 뻗어 변속기를 조작해 경운기를 세운다. 경운기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공회전하는 엔진 소음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어디까지 가는데? 미소가 화석이 된 다감한 얼굴로 할아버지도 목청을 돋우어 되묻는다. 할아버지를 닮은 할머니가 호기심 가득한 생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할아버지 가시는 데까지만 태워주세요. 할아버지는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엄지 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킨다. 타라는 신호다. 나는 볏짐 가득한 경운기 짐칸에 앉는다. 덜컹하며 경운기가 한 번 흔들리고 곧 앞으로 나아간다.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점점 멀어진다. 소실점의 하늘로 물통에 떨어진 물감처럼 노을이 번진다. 노을은 밀물처럼 밀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 위까지 도달한다. 노을을 보기 위해 나는 볏짐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하늘을 물들인 노을은 내 눈동자까지 색염한다. 가슴을 침염한다. 영상을 닳도록 돌려보며 나는 그때 가슴에 데칼코마니처럼 남겨진 무늬를 본다.



나에게 여행은 참 별 거 아니다. 지극히 사적인 영상을 수집하는 벽이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이기에 세상에 하나뿐인 매우 희귀한 '짤'이다. 그런 여행짤을 수집하기 위해 나는 여행을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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