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나 Jul 03. 2019

사진 : 니모를 찾아서 中

아득한 심해에 사는 어떤 물고기는 생존을 위해 자기발광이라는 능력을 개발해 냈다고 한다. 빛이라고는 한 줌도 녹아들지 않는 심연에서, 오로지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들은 선척적으로 가지지 못한 능력을 후천적으로 개안했다.


심해어에 대한 설명 한 줄을 읽고, 초롱아귀 이마에 달린 촉수등을 보고,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낮은 촉의 눈빛을 켜고 막연한 무언가를 찾아 유령처럼 지상을 배회하는 인간은 확실히, 미약한 불빛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밝히는 심해어를 닮았다.


한 때 내가 있었던 곳에서,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나는 눈빛을 켜고 사람과 풍경을 본다. 그들 생활을 엿보고, 그리 깊이는 아닐지라도 그들 마음을 들여다본다. 수면에 저의 결을 남기며 멀어지는 바람을 보고, 바람이 지나고 나서야 흔들리는 허연 억새풀을 본다.


눈빛이 그곳을 밝히는 동안 세계는 나에게 자신을 보여준다. 시선을 돌리면 그곳은 가뭇없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 한 때 나의 빛이 비추던 그곳을 알 길 없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 눈 앞에 펼쳐진 작은 세계만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곳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내가 떠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갈 것이고, 오늘도 바람은 불어오고, 그렇게 풍경은 내일도 흔들릴 테지만, 그곳은 지금 나에겐 영영 불꺼진 밤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눈앞의 세상도 까무룩 소등된 세계가 되겠지. 수명이 다한 등은 곧 새 등으로 교체되겠지.


고대 로마에 "메멘토 모리" 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빛이 남아있는 한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한다.(자의적 해석) 여기서 사랑은 물론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 나는 오늘 사랑할 것을 찾아 새벽 속에서 눈빛을 밝힌다.


2010년. 07월 10일. 여행 일기를 다시 적어봄.


그림 : 안토니오 데 파레데가 그린 바니타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을 여행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