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입원

사진으로 보는 두 번째 입원기

by 혜원

퇴원 후 주말을 집에서 잘 쉬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싸이토카인 방출 증후군- CRS를 이렇게 잘 넘기나 싶었다. 그런데 월요일 저녁. 갑자기 또 몸살 기운이 올라오더니 열이 난다. 하루 종일 괜찮았는데, 정말 난데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한번 아프고 잘 넘어가나 했는데, 두 번은 아파 줘야 하는 거였나 보다. CRS는 늘 발열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38도 이상 열이 나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고 여러 번 들은 터라 슬슬 짐을 쌌다. 암 환자는 체온이 낮다더니 나도 최근엔 늘 35도 초중반 대라 38도면 꽤 뜨거워진 상태이다. 몸살 기운으로 온 몸이 쑤시는 아픔을 참고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있노라니 마치 둘째 낳으러 갈 때 진통에도 불구하고 평온하게 가방 챙기던 딱 그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이웃 언니네 잠시 맡기고 남편과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30분 이었다. 응급실은 만원이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열이 나면 응급실에 가서 ‘혈액내과에서 임상 실험 중인 환자이고 혈액내과 당직 의사에게 연락해달라’고 하면 금방 CRS 치료제인 토실리주맙을 줄 거라고 Jo에게 수 차례 들었던 것이다. 특히 나는 지금 첫 풀도즈 후라 언제라도 반응이 올 수 있기에, 혈액내과 온콜 닥터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 예상대로 응급실에서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10분도 안걸려 후다닥 챙긴 입원 가방. 나는 내가 뭐가 필요한지 이제 다 알지.


오늘도 어김없이 하양이와 함께. 내 딸은 엄마가 뭐가 필요한지 잘 알지.


딸내미가 야침차게 넣어준 니도볼. 젤리처럼 말랑한데 단단해서 느낌이 정말 좋다. 주사 맞을때 한 손에 꼭 쥐고 주무르기 딱이다. 간호사들이 다 궁금해 한 잇템.


오늘도 어김없이 몰래 넣어준 쪽지. 딸은 정말 그저 사랑.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응급실 당직 의사를 만나야 그 당직 의사가 혈액내과 당직 의사에게 연락을 해 주는 건데, 응급실 당직 의사가 도대체가 오질 않는 거다. 열이 나니 간호사는 일단 항생제를 투여하려 했다. 나는 내가 현재 어떤 임상실험에서 어떤 치료를 받고 있으며, 혹시 일반 감염이 아니고 CRS라면 일반 항생제가 아닌 토실리주맙을 투여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혈액내과 당직 의사에게 꼭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내가 간호사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오늘 처음 본 응급실 간호사 보다는 내가 나의 상황을 더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진상 환자 같지 않아 보이게 잘 설명해 보았다.


시간이 늦어져 아이들을 챙겨와야 했기에 남편은 집으로 보내고 혼자 의사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어째 더 아픈 것 같았다. 응급실 대기 시간은 정말 랜덤이고 운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필 이 날이 최악이었다. 수액을 맞으며 몇 시간을 버틴 후 드디어 응급실 당직 의사를 만난 시간은 자정이 꼴깍 지나서였다. 내 상황 설명을 들은 의사는 매우 깔끔한 브리핑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어준 후 바로 혈액내과 당직 의사에게 전화를 하러 갔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혈액내과 당직 의사는 토실리주맙을 주지 말라고 했단다. 토실리주맙은 CRS 2 단계에 투여하는데, 지금 2단계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단 열이 38도 이상이어야 했는데 수액을 맞은 덕에 열이 조금 내려가 있었고, 저혈압이 계속 유지되어야 했는데 혈압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내 혈압은 90/50까지 떨어져서 오는 간호사마다 청진기를 귀에 대고 수동으로 혈압을 재고 있었지만 이걸로는 아직 부족하단다. 대신 의사가 각종 모니터 할 것들을 잔뜩 지시했는지 자정이 넘은 그 시간부터 나는 심전도니 엑스레이니 이런 저런 검사들을 받으러 실려 다니기 시작했고, 엊그제 하느라고 피를 한 바가지는 뽑은 혈액 배양검사를 한번 더 한 당한 후에야 병동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새벽 3시였다.


밤새 열로 고생을 좀 했지만, 병실에 자리를 잡고 약 기운이 돌기 시작하니 차차 나아졌다. 아무래도 간호사가 수시로 체크를 하다 보니 푹 잘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용한 1인실에서 혼자 끙끙대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왔고 어젯밤 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역시나 밥이 문제였다. 원래도 잘 먹는 편인데다 요즘은 데사메타손 부작용으로 평소보다 더 먹고 있던 나라 병원밥의 양은 내 위장엔 택도 없었다. 물론 맛도 없었고... 아침 식사가 왔는데 토스트는 이미 식어서 딱딱해졌고, 유제품은 속에서 받질 않아 끊다시피 한 터라 요거트와 우유는 있으나 마나고, 찐 과일 조각들도 딱히 손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오트죽이 따뜻해서 먹을 만 했는데 양이 너무 적었다. 점심은 보나마나 맛 없는 샌드위치 일 텐데...


그렇다. 이게 전부다.


몸 걱정이 아닌 메뉴 걱정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의사가 왔다. 임상 실험 총괄 담당의인 Rory였다. Tom이 휴가로 자리를 비웠을 때 두어 번 만났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응급실에서 그토록 오래 기다리느라 열도 내려버리고 타이밍을 놓쳤으며, 아무도 나에게 토실리주맙을 주지 않았다고 힘들었던 어젯밤을 토로했다. Rory는 CRS 2 단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해주며, 여러 모로 상황이 확실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토실리주맙을 주고 안 주고의 여부 보다는, 내가 들은 예상 시나리오 그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계획이 계획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다니 내가 언제부터 이런 대문자 J형 인간이었던가.


아무튼 Rory의 친절한 설명과 위로에 마음이 풀린 나는 다시 열심히 점심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바쁜 날인 것을 알기에 점심 셔틀을 시키기는 싫었다. 병원 앞 스시집까지 나갔다 오기엔 아직은 다리가 후달달 떨릴 것 같고... 그 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친한 권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병원 근처 한인 마트인데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밥이요! 밥이 먹고 싶어요!”


나의 한줄기 빛 권사님은 두툼한 김밥을 두 줄 사 오셨다. 햇반과 장조림도! 그래 이 맛이지. 엄청 큰 김밥이었는데 두줄 다 점심에 먹어버린 건 안 비밀.

보기만 해도 든든한 구호물품
불고기 김밥 너란 김밥 실패가 없는 김밥


저녁에도 병원 메뉴에 햇반을 데워 같이 먹었다. 이민 오고 나서 햇반은 살 일도 먹을 일도 영 없었는데, 처음으로 햇반이 출시되어 맛 보았던 오래 전 어느 날 처럼 정말 감탄하며 먹었다. 그래, 이 맛이지. 미세 플라스틱 걱정 따위 오늘은 고이 접어둔다.

고기를 먹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소고기 메뉴로 선택했는데. 소고기에서 왜 닭고기 맛이 나는가...


입원 둘째 날은 순조롭게 잘 지나갔다. 몸도 차차 나아졌고. 하지만 오늘은 병원에 머물며 계속 모니터 해야 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퇴원 생각은 접고 마음껏 여유를 부렸다. 책도 읽고,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고, 병원 안에서지만 슬슬 산책도 했다.


힐링 가든도 한바퀴 돌아주고
각자의 이야기들로 가득 찬 땡큐 카드도 정독해 주었다


어느 창가에 쪽지가 붙어있다. 병원 맞은편은 은퇴자 마을인데, 거기 사는 어떤 사람이 아픈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발코니에 설치한 천사를 찾아 보란다.


여호와의 천사가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편 34편 7절)


다음 날,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오늘 퇴원 할 거라는 이야기를 아침 일찍부터 들은 나의 머릿속은 오로지 하나, 오늘 점심 뭐 먹을까로 가득 찼다. 친한 친구같은 집사님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었기에, 우리는 어느 맛집을 갈지 심도 있는 계획을 세운 끝에 소고기 영양탕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퇴원은 의사 허락만 떨어지면 딱히 복잡한 적이 없었고, 비용은 모두 무료이니 수납 절차도 필요 없고, 다만 입원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해 주는 퇴원 서류만 받으면 끝이다. 그래서 늘 오전에, 늦어도 점심때는 퇴원이 가능했다. 이날 아침도 역시 오트죽 약간에 이미 말라비틀어진 토스트를 먹는둥 마는둥 하며 소고기 영양탕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퇴원 이야기가 없다.


문제는 ESBL 이었다. 내 몸 속에 있다는, 항생제에 잘 죽지 않는 내성균. 정확히 말하자면 항생제를 분해해서 약이 잘 듣지 않게 만드는 효소란다. 건강한 사람들도 이 균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아무 증상 없이 그냥 살아간다. 하지만 나처럼 면역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는 각종 감염과 패혈증 등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었다. 퇴원이 늦어지는 이유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항생제를 어떻게 투여해야 할지를 감염 부서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 답이 아직 도착을 안 해서라고. 이미 굉장히 센 항생제를 내내 맞고 있었는데, 바꿀지 말지가 관건인 듯 했다.


곧 되겠지. 퇴원 준비를 하자. 소고기 영양탕을 먹으러 가자. 나는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들은 교대로 계속 바뀌다 보니 최근 두 번의 입원을 하는 동안 꽤 여러 명의 간호사를 거쳤는데, 그 중 나의 원픽인 비비안Vivian이다. 보통의 필리피노 답지 않은 큰 키와 하얀 피부의 비비안은 굉장히 세심한 사람이었다. 입원 첫날 새벽 3시에 병동으로 들어왔을 때, 내 환자보드에 어떤 인도 간호사가 이름 대신 써 놓은 성을 보자마자 이름으로 바꿔주었다. 이름 발음하기가 좀 어려우면 그냥 성으로 써 놓는 사람들이 있더라면서. 물론 그 인도 간호사도 그냥 Shim 이라고 써놔도 되냐고 나에게 물어보기는 했는데, 한창 열이 올라 죽겠는 새벽 3시였기에 나는 한마디라도 덜 하고 싶어서 맘대로 하라고 했던 것이었다. 아무튼 비비안도 이미 내 퇴원소식을 들은 터라 나는 경쾌하게 주문했다.


“나 IV (정맥주사) 니들 없이 가벼운 몸으로 샤워하고 싶어!”

“물론이지!”


비비안은 바로 니들을 빼 주었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었는데... 이 때는 몰랐지.


아침을 너무 대충 먹은 탓에 배가 고파 오는데 심지어 이 날 따라 점심도 늦게 나왔다. 모든 퇴원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1시가 넘어서야 나온 점심은, 참치 샌드위치는 얼마나 맛이 없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나는 사실 미식가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라 웬만한 음식은 불만 없이 잘 먹는 편인데.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은 지 꽤 됐는데. 이 샌드위치는 그냥 너무 짜기만 했다. 이걸 더 먹어 말어 살짝 고민하며 사진을 한 방 찍었다.

짠 기운이 느껴지는가

그때였다. 이송담당자 orderly가 왔다. 당장 퇴원은 아니지만 퇴원실 discharge room에 가서 퇴원 서류를 받고 기다려야 한단다. 아마 병실을 비워줘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오더리를 마냥 기다리게 하기는 미안해서 샌드위치는 내려놓고 휠체어에 짐도 나도 실었다.


퇴원실 이라는 데에 와 본 적이 없어서 어디인가 싶었는데, 방마다 베드가 있고 거기서 기다리거나 처치를 받으며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해놓은 몹시도 애매하고 썰렁한 장소였다. 점점 오후가 되어서인지 사람도 없고 텅 비어있는 방이 대부분이었다.

조.용.


간호사가 다시 와서는 감염 부서에서 아직 답이 없어서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퇴원 서류는 진작에 준비 되었다며 건네고 갔다. 이미 두 시가 넘었고, 나는 너무 배가 고파 헝그리에서 행그리로 모드가 전환되었다. 퇴원이 늦어지는 바람에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어, 나를 데리러 오시기로 한 집사님은 결국 못 오시게 되었고, 대신 같이 먹기로 했던 소고기 영양탕을 포장해서 우리 집 앞에 두었다고 하셨다. 현관 앞에 음식을 두러 갔는데 이미 다른 음식이 있다며 집사님 왈


“여기 푸드뱅크 food bank야 뭐야”


매 달 셋째 주에 아이들 주일학교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음식을 나누는 푸드뱅크를 한다. 근데 이젠 우리 집이 푸드뱅크가 되었구나. 사랑이 모이는 곳이 되었구나. 감사할 뿐.


시간은 3시가 넘어가고 4시가 되었다. 내 몸 하나 가누기 버거운데 무거운 가방이 두 개나 있으니 우버를 타고 집에 가기는 괜히 싫었다. 남편은 회의 중일테다. 플랜 B를 가동하여 언제든지 픽업 부탁하라고 한 권사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와 주신단다. 하지만 이것도 곧 취소해야 했다. 간호사가 오더니 아무래도 IV를 한번 더 맞아야 할 것 같단다. 언제 맞을지 모르는데 맞기 시작하면 시간이 걸릴 테니 차라리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데리러 오는 게 맞지 싶었다. 아니 오늘 퇴원하기 왜 이리 힘들어.


결국 나는 4시 반이 지난 시간에야 주사를 또 맞는 걸로 결정되었다. IV를 빼지 말았어야 했다. 빼 달라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빼 달라고 했어도 비비안은 빼 주지 말았어야 했다. – 사실 이건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 땐 누가 봐도 너무 퇴원 각이었기에. 누굴 탓하리.


문제는 2박3일의 입원 중에 매일 피검사를 하느라 기존 IV말고 다른 팔에서 피를 두 번 뽑았는데, 두 번째 날 너무 무자비하게 아프게 뽑혀서 심적 충격이 있었던 터라 바늘에 또 찔리기가 너무나 싫었다. 혈관 찾으러 온 웬 젊은 민머리 중국 남자 간호사에게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 간호사 왈


“Don’t worry! I’m pretty good!”


일 못하는 사람이 말만 많은 법인데... 매주 치료 받으러 가는 혈액내과 Day Stay에서 뉴질랜드, 필리핀, 타이완, 모든 국적 다 제치고 제일 아프지 않게 혈관 잘 잡아 주시는 한국인 간호사님도 절대 저런 말씀은 안 하셨는데. 이번 입원 첫 날 내 인생 통틀어 정말 처음으로 겪어본, 바늘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하나도 안 아프게 피 뽑는 간호사에게 너무 놀라서 비결을 물어보니


“I’m just trying. Practice makes perfect!”


라며 겸손하게 웃었는데. 나 잘 하니까 걱정 말라는 이 남자. 정말 믿어도 되는 거겠지.


아니. 믿으면 안 되는 거였다... 민머리의 그는 시종 일관


“Oh… small vein... small vein…”


하며 내 혈관 탓을 하더니 왼쪽에 한번 오른쪽에 한 번 양 쪽 다 찌르긴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두 팔 다 실패하고 도망치듯 머쓱하게 퇴장했다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말만 잘하던 그가 내 팔뚝에 남긴 흔적. 내가 딱히 엄살쟁이는 아닌데 이건 꽤 아팠다.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hospital tattoo


하루 종일 거의 굶다시피 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이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후에 온 다른 간호사는 내 얼굴을 보더니 한번 더 실패하면 정말 울겠다 싶었는지 내 팔을 붙잡고 오랫동안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드디어 좋은 혈관을 찾아서 한번에 성공시켜 주었다. 진작 오지 왜 이제야 나타났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나는 센 항생제를 하나 더 맞고, 하나를 또 맞아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 약이 준비가 안 되었다며 내일 아침에 병원에 오자마자 맞자고 해서 (다음날은 목요일이라 원래 병원에 오는 날이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은 채로 퇴원했다. 하룻밤 자고 아침에 또 라인 잡느라 고생하기 싫어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암 환자들은 혈관을 아껴야 한다고들 하는데 아니 뭘 어떻게 아끼냐고 내 맘대로 잠글 수 있는 수도꼭지도 아니고...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아끼는 거였다.

엄마 퇴원했다고 같이 잘거라며 몰려온 아이들이 주사바늘을 보고 얌전히 후퇴했다. 이론상으론 불편하지 않아야 했는데 하필 딱 가운데라 영 불편해서 퀸 침대에 혼자 대자로 누웠다.


퇴원하기가 이렇게 힘들 일인가. 하루가 너무 길었고 나는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집에 도착하니 소고기 영양탕과 맛있는 식빵이 문 앞에 야무지게 놓여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우리집이 푸드뱅크


다음 날, 다섯 번 째 주사를 맞으러 예정대로 병원에 간 나는 Tom과 Jo에게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을 토로해 주었다. 네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혈액과 온콜 닥터와는 자정에야 통화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To m은 편지 한 통을 써 주었다. 혹시 또 밤에 열이 나서 응급실로 오게 되면 이걸 내밀란다. 말하자면 응급실 프리패스권 이었다. 누가 봐도 바로 처리해주지 않으면 본인에게 불똥이 튈 것 같은 긴급한 환자 느낌이 난다.


Jo 말로는 이게 머피의 법칙이라 이 편지를 받아놓으면 응급실 올 일이 없단다.아니, 진작 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무튼 이걸 쓸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첫 풀도즈는 이렇게 두 번의 입원으로 마무리 되었다. 앞으로는 계속 풀도즈를 맞는다. 부디 내 몸이 잘 적응해서 더 이상은 CRS 걱정 안 해도 되기를.

월, 수, 금 연재
이전 23화Full dose 그리고 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