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dose 그리고 입원

feat. CRS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

by 혜원

엡코리타맙을 첫 주에는 0.16mg, 둘째 주에는 0.8mg, 셋째 주에는 3mg 이렇게 조금씩 증량해서 투약했고, 4주차 치료에 48mg 첫 정규 용량 full dose를 투여할 예정이었다. 처음으로 풀도즈를 넣을 때는 보통 부작용이 따른다고 했다. 이 부작용은 CRS – Cytokine Release Syndrome-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 이라고 하는데, 면역 세포가 갑자기 많이 활성화 되면서 염증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한꺼번에 나와서 생기는 반응으로, 발열, 몸살, 오한, 혈압저하 등등으로 나타난다.


풀도즈를 넣은 날은 열이 나면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하기에 병원에서 30분 이내의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고, 원하면 병원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준다고 했다. 차라리 하룻밤 혼자 입원하는 게 여러 모로 편할 것 같아서 입원 옵션은 없냐고 물으니, 남는 병실은 없다나. 처음에 나는 쿨하게 거절했다. 일단 집이 병원에서 15분 이내에 있고, 호텔에서 남편과 있으려면 평일에 아이들 슬립오버를 어레인지 해야 하기에 그게 오히려 더 귀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었다. 혹시나 풀도즈를 맞은 날 밤에 열이라도 나서 오밤중에 병원행을 해야 하면 어쨌든 이리저리 다급하게 아이들을 챙겨야 할 테니, 그 날은 그냥 아플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방학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평일에 슬립오버를 간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났고, 친구 집 아이들도 덩달아 엄청 신이 났다. 친구 엄마들은 도시락까지 책임져 주었다. 마음 편히 하룻밤 맡길 친한 학교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이쯤 되니 호텔행은 때 아닌 호캉스가 되었고,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있으면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손에 물을 묻히게 되는데 이 참에 하루 푹 쉬자 싶었다.


4주차 치료 당일, 평소와 같은 순서로 이런저런 약을 투여 받은 후 마지막으로 엡코리타맙 풀도즈를 맞았다. 갑자기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Jo가 친절하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 작은 약이 내 몸 속에 들어가서 할 큰 일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맞았다.



병원 일정이 끝난 오후, 호텔로 이동했다. 병원 정문 앞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작은 비즈니스 호텔인데, 하루 푹 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했다.



한숨 푹 잔 후, 남편과 바닷가로 산책도 나가고 맛있는 저녁도 사먹고,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챙겨먹었다. 오랜만에 부려보는 여유였다. 아직 날이 따뜻해서 바다에는 요트와 패들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웬 커플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포즈로 유유자적 지나가길래 찍어 보았다.


아이들은 각자 친구 집에서 잘 놀고 있고, 나는 아직 열이 오르지 않고. 딱 좋았다. 장항준 감독이 나오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실컷 웃고 푹 쉰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래서 호텔을 잡아준 거였구나 싶었다. 원래 풀도즈 맞은 다음날 아침에 혈액검사 등 각종 체크를 위해 병원에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병원 예약 시간이 되었을 때는 두통과 몸살기운이 심해져 맥을 못 추릴 정도가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된 반응이라 겁이 나지는 않았지만, 간혹 가다 있다는 아주 심각한 경우는 아니기를 바라며 서둘러 체크아웃을 했다.


병원에 도착해 CRS인지 다른 감염인지 확인하기 위해 혈액배양검사 blood culture를 하느라 피를 잔뜩 뽑았다. 림프종은 혈액암이다 보니 혈액 검사를 늘 많이 한다. 작은 통으로는 열 통이 넘게 뽑는 날도 있고, 이러다 피가 남아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뽑고 또 뽑는다.


항생제를 맞은 후 좀 대기 하다가 병실이 나자마자 입원 할 수 있었다. 응급실로 입원했을 때와는 다르게 새로 지은 병동에 1인실이라 굉장히 쾌적했다. 이런 말 웃기지만 마치 호캉스의 연속 같았다. 열이 나고 온 몸이 쑤셔서 괴롭기도 했지만, 병원에서 푹 쉬며 차차 열도 내리고 컨디션을 되찾아 갔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처음으로 아이들이 병원에 왔다. 갑자기 한 입원이다 보니 필요한 물건들을 남편이 가지고 왔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같이 데리고 오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이 처음 본 것인데, 다행이 저녁에는 컨디션이 좋았어서 침대에만 누워있지는 않아도 되었다. 딸내미는 엄마가 괜찮은지, 걱정스런 눈으로 주사바늘이며 환자복이며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분주했다. 아들은 병실이 크다며, 프라이빗 화장실이 너무 깨끗하고 좋다며, 호이스트 (환자를 들어 옮기는 장치) 레일이 신기하다며, 신이 나서 병동 탐구에 들어갔다.


지금 내 몸 속은 말하자면 전쟁터다. SNS를 보면 5센치암 혹은 7센치암 극복기 라면서 매 영상마다 암 크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무려 9센치가 넘는 거대한 암 덩어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덩어리는 돌처럼 딱딱했는데, 한 달 정도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금은 꽤 작아지고 말랑해졌다. 이렇게 암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면서 내 몸 속에서는 당연히 염증 반응이 올라가 있고, 면역 치료를 하고 있다 보니 면역 반응 또한 과하게 활성화 되어 있다. 여기에 또 한가지 더해진 변수는, 내 몸 속에는 ESBL 이라고 하는, 항생제에 잘 죽지 않는 내성균이 있어서 아무 항생제나 쓴다고 듣지를 않는다는 거다. (나는 평생 항생제 먹어본 일이 손에 꼽는데, 어쨌든 이 균은 항생제 사용이 더 자유로운 나라들에서 주로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어서 아시안들에게 많다고 한다.) ESBL이 있다는 것을 이번 입원 때 알게 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좀 더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늘 1인실을 배정 받는다. 안 그래도 무료인데 심지어 1인실이라니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치료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추가되었다는 것에는 두말 할 여지가 없다. 이렇게 전쟁터와 같은 내 몸이 쉴 곳으로 병원은 좋은 옵션임이 분명했다. 간호사들이 시간마다 체크해주고 돌봐주고, 혼자 조용히 놀기도 쉬기도 딱 이었다. 사실 나는 간호사 호출할 일도 거의 없어서 병실 문을 닫아둔 채로 있는 듯 없는 듯 잘 지냈다. 이 날 저녁은 아주 평안하게 지나갔다. 저녁이 특히 맛이 없었다는 것만 빼고.



CRS는 그 반응의 강도에 따라1~4 단계로 나뉘는데 나는 다행이 1단계로 약하게 반응이 왔고, 이렇게 순조롭게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Tom은 혹시 다음 번에 또 열이 38도 이상 나면 그 때는 토실리주맙Tocilizumab을 투여하겠다고 했다. 토실리주맙은 CRS 치료제로 면역 반응을 진정시키는 주사이다.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일찍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침도 먹지 않고 곧바로 퇴원했다.


병원 밥은 정말이지 영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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