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오늘은 한 번은 기록해 두고 싶었던 한국과 뉴질랜드의 병원의 차이를 적어볼까 한다.
림프종 진단을 받고 초반에는 뉴질랜드에서 치료를 받을 것인가 한국에 갈 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림프종은 전세계 어디나 국제 표준 프로토콜대로 치료하고, 특히 나는 신규 진단이라 이런저런 치료 옵션을 고려할 필요가 별로 없었던 점, 마침 임상실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 (아무래도 한국보다 여기가 환자수가 적어서 왠지 신약에 뽑힐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족의 림프종 치료를 뉴질랜드에서 해 본 회사 동료의 추천 등으로 그냥 여기서 치료를 받기로 결정을 했었다.
네이버 카페에 림프종 관련 모임이 몇 개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가입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에 빠지기 싫기도 했고, 네이버 비밀번호를 오랫동안 안 써서 잊어버렸는데 이런저런 오류로 찾는 과정이 너무나 험난했기에 더 이상 거기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치료를 시작하고 난 후 최근에야 이런 저런 블로그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하며 한국과 뉴질랜드의 병원의 차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찾아 본 이유는 같은 임상 그룹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이 혹시 있는지 궁금해서였는데, 운 좋게도 같은 그룹에서 벌써 오래 전에 치료를 시작하신 분과 나보다 두 달 정도 전에 치료를 시작하신 분의 글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귀차니즘을 무릎쓰고 8년만에 비밀번호를 찾아 로그인한 네이버로 댓글도 달아 소통도 하게 되었다. 이미 치료를 받고 계신 지 2년이 훌쩍 넘으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엡코리타맙은 정말 부작용이 적고 좋은 약제인 것 같다고, 나도 분명 잘 치료 될 거라고 하신다. 현재 나는 치료 6주차를 지나가고 있고 엡코리타맙을 풀도즈로 3주 연속으로 맞고 있다 보니 주사 맞은 자리가 많이 붓고 간지러운 것이 가장 성가신 부작용 중의 하나인데, 먼저 치료를 받으신 분들의 경험을 보니 지금 이러는 것이 정상이고 이것 또한 곧 지나간다.
병원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사실 치료 자체의 차이는 현재 나의 단계에서는 별로 없는 듯 하다. 나는 임상 실험군에 속해 있다 보니 엡코리타맙 제조 업체인 애브비 AbbVie에서 세밀하게 정해 놓은 계획대로 병원에서는 실행만 해 주는데 (물론 중간중간 나의 상태에 따라 의사가 당연히 개입한다.) 이것은 전 세계 어디나 동일하다. 하지만 여기는 뉴질랜드. 한국 병원의 시스템과는 아무래도 다른 점들이 있다.
일단 규모가 다르다. 뉴질랜드는 인구 500만의 아주 작은 나라로, 어딜 가나 무얼 하나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이는 병원도 마찬가지여서 큰 병원에 가도 번호표/접수표조차 없다. 자동화는 덜 되어 있는 듯 하지만, 사람이 적다 보니 의외로 더 빠르게 진행이 되기도 한다.
나의 하루 치료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병원에 도착해 혈액검사를 한 후 의사가 수치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그날의 예정된 약물들을 투여한다. 각종 부작용 방지제들을 먹거나 정맥주사로 투여한 후 리툭시맙 정맥주사와 엡코리타맙 피하주사를 맞고, 엡코리타맙 투여 후 1시간정도 병원에 머물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 후 귀가한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순서로 치료가 진행되지만 한국은 일단 혈액검사를 하려면 외래 2시간 전에는 병원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 기본인 듯 하다. 블로그에 보면 아침 7시에 혈액검사실에 왔는데 벌써 앞에 50명 이상이 대기하고 있다는 등의 글들이 많았다. 혈액검사 후 의사를 만나기 위한 외래진료도 시간이 많이 밀리기도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진행 상황이나 대기 상황 등 모든 것이 문자로 바로바로 통보되고 혈액검사 결과 등도 병원 앱으로 자세히 알 수 있는 등의 자동화된 시스템은 너무나 편해보인다. 여긴 일단 병원 앱 같은건 애시당초 없다.
나의 경우 아예 한 사이클(1달)의 일정이 미리 짜여져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병원에만 오면 바로 혈액검사를 하고 그 결과가 나오는데 한 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물론 간호사는 조금이라도 빠른 결과를 위해 내 피를 들고 뛰다시피 다니기는 하더라만. 아무튼 절대적으로 환자 수가 적으니 가능한 일이지 싶다. 외래도 따로 잡지 않고 그냥 방금 채혈한 혈액내과 Day Stay 내 자리에 앉아있으면 의사가 나를 찾아와 이런 저런 체크를 해 준다. 별 이상이 없으면 바로 치료 시작이다. 여기저기 다닐 일 없이 한 자리에 앉아 모든 게 해결되고 기다리는 시간이 적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장점인 듯 하다.
또 다른 차이점은 치료 분위기가 참 느긋하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특유의 느린 일처리로 가끔 사람 속 터지게 하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만큼은 이 느긋함이 큰 장점인 것 같다. 이곳도 분명 환자 예약이 줄줄이 잡혀 있기는 한데, 한 명의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자세가 좀 더 여유롭다고 할까. 나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질문이 꽤 많은 편인데 최소한 시간에 쫒겨 할 말을 못 하거나 들을 말을 못 듣거나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특히 일반 GP 가 아닌 스페셜리스트 이상을 만나게 되면 첫 만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가족 관계, 직업, 라이프 스타일, 식습관 등 많은 것을 물어보는데 환자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같이 있는 날은 Tom은 늘 남편과 악수를 나누며 잘 지내는지 근황을 묻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다른 점이자 나에게 정말 큰 장점은 아무래도 병원비가 무료라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세금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공공 보건 시스템이라 공립병원 이상의 진료는 대부분 무료이다. 그 동안 암 진단을 받고 현재까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GP를 세 번 방문했는데 한 번 방문 때 마다 약 7만원 정도씩 들었다. 그 후 큰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는 약 탈 때 낸 돈 3만원 정도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돈을 낸 적은 없다. 입원, 외래진료, CT 및 PET-CT, MRI 등등의 각종 검사도 모두 무료이다. 한국도 암 환자들은 치료비의 5%만 내니 원래 내야 하는 돈을 생각하면 혜택이 상당하지만, 무상 의료는 느낌이 또 다르다.
오래 전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로 했을 때, 무료 병원의 혜택을 받는 것은 내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공공 보건 시스템의 개념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매 번 꼬박꼬박 세금을 낼 때는 불만이 있었다. 넉넉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뭘 이다지도 많이 떼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병원을 다니다 보니 그 불만이 쏙 들어갔다. 여기는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물론 뉴질랜드에서 내 림프종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단점도 있다. 아직 닥치지는 않은 점들이고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인데, 재발을 할 경우 옵션이 한국만큼 많지 않은 듯 하다. Tom을 처음 만났던 날, 여포성 림프종은 재발이 잦고 완치가 어렵다는 것을 여기 저기서 읽은 나는 치료 후 자꾸 재발이 되거나 약에 불응(반응없음)하게 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물었었다. Tom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만일 나중에 꼭 필요하면 한국에 가서 치료하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다. 본인은 늘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한국은 언제나 치료 옵션이 많고 새로운 임상의 기회도 많기 때문에, 필요하면 얼마든지 다녀 오라고. 즉, 여긴 뭐가 많이 없단 소리겠지. 그 때는 너무 초창기라 내가 잘 모르기도 했고, 또 치료 시작 전부터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후에 알아보니 표준 항암 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 까지는 여기서도 한국처럼 가능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 (CAR-T등)은 한국보다 더 비싸고 복잡한 것 같다.
하지만 벌써 이것까지 걱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지금 나는 내 컨디션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임상실험의 이 그룹에 배정이 되었을 때 사실 Tom의 팀은 모두 너무 좋아했단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림프종 환자가 대개 어르신들인데, 물론 모든 환자가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이 약으로 치료를 받을 경우 관해 기간을 오래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최소 10년에서 15년 이상의 관해 기간을 가지기를 기대하는 의사 앞에서, 암에 걸리고 하루 하루가 소중해 오늘을 잘 살자고 다짐하는 내가 재발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한국에서건 뉴질랜드에서건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테지만 어쨌건 나는 지금 뉴질랜드에 있으니까,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며 현재를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