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라디오
4:44.
노트북에 표시된 숫자가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그 숫자들에 눈길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날 이 숫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4:44가 무표정하게 떠있던 순간, 갑자기 공간은 종이가 물을 먹듯 부풀면서 거대한 물고기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바깥은 열기와 습기를 최고치로 머금은 공기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나갔다. 엄청난 밀도의 덩어리가 힘겹게 움직이자 그 무게에 눌린 거리의 사물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흐릿해졌다. 뜨거운 볕을 받은 담벼락의 식물들은 암녹색으로 부풀었다. 남산 언덕 위 타워의 길쭉한 첨탑도 뭐라도 뿜어낼 듯 바짝 긴장한 채였다. 온 세상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4:44의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매일 두 번의 4:44가 있을 텐데, 오늘 처음으로 목격했다. 무더위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열기를 느끼지 않았다면 노트북의 디지털 시계 따위를 보지 않았을 것이고, 물먹은 종이처럼 부풀어오른 세계의 암녹색 그림자도 몰랐을 것이다. 소리 없이 숫자들이 움직여서 그 순간 모든 것을, 세상을 바꿔놓았다. 나도 변했을까? 1:11의 나와 4:44의 내가 똑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느슨해도 되나? 아, 그렇다. 나는 그동안 글을 썼다. 열 줄을 쓰면 열한 줄을 지우고 일곱 줄을 다시 쓰면 한 줄만 남겨두고 또 지웠지만. 텅 빈 페이지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워진 것들도, 사라진 것들도 시간을 흡수하고 시간과 힘겨루기를 하고 이별을 고했다. 그건 이야기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만들어진 이야기와 사라진 이야기 사이에 시간이 있다. 1:11의 나와 4:44의 나 사이에는 썼다 지운 글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 글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시간들은 또 어디로 흘렀을까?
고요하게 들끓는 풍경이 작업실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창백한 종이 같던 공간으로 암녹색 그림자가 번져든다. 작업실 천장 모서리에 그림자가 고인다. 이야기든, 그림자든, 먼지든, 공간에서 흐르다 멈추게 되는 곳은 보나마나 모서리다. 언제나 야릇한 어둠에 물들어있고 한번 고이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모서리. 벽과 벽이 만나 꺾인 가느다란 경계. 매끈한 벽만으로는 공간을 이룰 수 없다.
좋은 건축가라면 암녹색 그림자가 멈추듯 이야기가 고이는 모서리를 많이 만들어두어야 할 것이다. 모서리가 많으면 이야기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토록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우리는 그늘에 매혹되고, 음험한 시간에, 아슬아슬한 경계에, 사막의 술병 같은 야릇한 사물에 마음을 빼앗긴다. 마음을 주면 시간을 들이게 되고 이야기가 생겨난다.
연남동 작업실도 그렇지만 후암동 별장도 미로 같은 모서리가 있다. 얇은 노트나 책, 작은 소지품이 몰래 숨어드는 그런 곳 말이다. 손가락에서 빼놓은 반지는 잘 숨어버린다고 엄마는 푸념했다. (그러니까 설거지 따위를 하느라 결혼반지를 손가락에서 뺄 생각은 절대 말라고.) 찾기 어려운 곳에 흘러가는 건 반지의 자의식일까, 아니면 공간의 의도일까. 그렇게 잊혀진, 혹은 분실된 물건들이 제법 많다.
이사를 나오느라 작업실의 짐을 모두 뺐는데도 나는 그 책과 그 노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사물들이지 뭔가. 의지가 충만한 사물들이다.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온 찻주전자와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진 낡은 책과 글자가 적힌 종이 뭉치, 낯선 길을 안내해주던 지도와 모르는 이름이 잔뜩 적힌 팸플릿들. 사물들은 내가 지나가는 통로였다.
세상 무엇도 비어있는 것들이 없다. 그 어떤 사건도 그냥 발생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아무런 인연 없이 만나지지 않는다. 그 어떤 사물도 대충 전달되지 않는다. 세상의 작은 파편들이 제각각의 속도와 이야기로 채워진 우주를 만들다가 불현 듯 생겨난 틈입의 순간 서로의 자장 안으로 밀려온 것이다. 나와 무관한 궤도를 맴돌던 4:44의 세계가 어느 순간 내게로 밀려온 것처럼. 나의 외부에는 무수한 우주가, 무수한 세계가 있고 나와 온 시간을 함께 한다. 그러므로 나는 외롭지 않다.
4:45. 디지털 시계의 숫자가 바뀌자 4:44의 세계가 사라졌다. 부풀어오른 공기가 태연하게 제자리를 찾고, 물고기처럼 배를 뒤집었던 공간도 창백한 종이처럼 납작해졌다. 무중력의 신기루는 홀연히 사라지고 견고한 일상이 재시동된다. 태양이 후다닥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오늘의 마지막 열기를 소진한다. 작업실로 새어들던 빛이 방향을 바꾸고 그림자의 위치도 옮겨졌다. 이곳,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세상이 순간적으로 선명해지고 넓어진다. 흐릿하고 불투명한 미로가 사라지고 확고부동한 형태의 삶들로 다글다글 채워진다.
작업실에 어둠이 깃든다. 모서리 그늘이 점점 더 짙어지는 걸 보니 내가 쏟아낸 말들과 지워버린 글자들이 또 늘어난 모양이다. 나를 흔들어놓고 흘러갔구나, 무언가가. 나는 그것을 규명할 단어를 찾다가 그만두고, 나를 통과한 시간들이 저장된 메모리카드에 ‘작업실’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