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기를 가는 이유

by Lena Cho

지난달 수술을 마치고 오늘 엄마한테 다녀왔다,

매달 초쯤에 엄마한테 가면서 들리는 꽃집이

있는데 오늘 가니 꽃 집주인분도 나를 보자마자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했다.


아무튼 오늘 엄마한테 가면서 든 생각이 엄마가

살아계실 때 요양원에 가는 기분과 돌아가신

거의 1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도 납골당에

가는 기분이 어떤 면에서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요양원에 계실 땐 살아계셨는데 어떻게

지금과 기분이 비슷할 까를 생각해 보니

엄마는 요양원에서 많이 아파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늘 아픔만을 확인하고 오는 꼴이 되었기에

갈 때나, 요양원을 다녀온 날은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었다.


어쨌든 엄마가 돌아가신 지는 1년 반이 되어

가고 있고, 요양원에 계실 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주일에 한 번씩 거의 7~8년을 그렇게

다녔고, 돌아가신 지금은 매 달 한 달에 한 번씩

작은 꽃을 사서 납골당에 가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를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 엄마를 만난다고 크게

기뻤던 적이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며칠은 엄마가 아프지 않은

모습을 보고 오는 날은 기분이 꽤 좋았던

적도 더러 있긴 했다.


그렇게 나에겐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 참

고통스럽고, 때론 귀찮기도 했고 좌절감과

죄책감으로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한 두 가지

사가서 드시는 모습을 보고, 몸도 닦아 드리고

손도 잡아 드리면서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지금은 덩그러니 놓여진

유골함 앞에 꽃 한송 놓아 드리고, 멍하니 앉아

있다 오는 거 말곤 특별히 할 게 없다.

오늘도 역시 엄마 유골함과 그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관 너머로 어린 나이부터

연세가 많은 망자들까지 수많은 유골함을

보면서 이 유리벽 밖에 있는 나와 저 유골함의

차이는 딱 저 유리문 한 장 차이란 생각이

들었다. 딱 저 한치의 차이로 나는 유리관 밖에

앉아 있고, 나도 언젠가 저 유리관 속 유골함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내가 매달 꽃을 사서 이렇게 오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나의 작은 정성이 돌아가신 엄마를 위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찾아뵙고 있는데 나의 정성이 너무 미약해서

엄마한테 다다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일은 아니고 지난달 1월 초에 내 수술을

앞두고 엄마한테 갔었는데, 내가 먼저 오고

조금 있다가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분이

오셔서 많이 우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여서 먼저

가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내 뒤를

이어 오신 그분이 나보다 훨씬 많이 울고

계셔서 나는 서둘러 엄마한테 인사를 하고

온 적이 있었다. 그분이 내 눈치 안 보고

좀 더 편안히 우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 때 그분이 와서 나보다 더 우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기 짝이 없나 보다... 내가 슬플 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위안이 되는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라도 맑으면 좋으련만

미세먼지로 우중충 하니, 곧 봄이 오긴 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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