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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Jul 09. 2022

Where do I belong

영어에 미친 자들 #1

웨어 두 아이이 빌롱 시리즈는 필자인 내가 한국사회에 살아가며 느끼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의 집합체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으나 꽤나 날카롭고 합리적이라 자부할 수 있다.


필자를 짧게 소개하자면, 9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여자다. 어릴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무용, 악기 그리고 미술에 관심을 발전시켜 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리고 예술론을 전공한 후 현재 다문화, 이민, 미디어 그리고 젠더 스터디스, 글로벌 스터디스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어릴 때부터 누구한테 지시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고,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했다. 반면에, 오타쿠 기질을 발휘하여 내가 꽂힌 분야에 대해서 만큼을 최선을 다해 임했다. 그렇게 운 좋게 얻은 유학의 길을 통해 영국 런던과 옥스퍼드에서 너무 길지도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은 시간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국계 영국인 교수 남편을 만나 현재 서울에서 거주 중이다. 우리 부부는 문화, 언어 그리고 예술, 정치 등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모습에 관심이 많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의견을 공유해 왔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비판적인 자아성찰을 통해 한국에 살아가며 겪는 많은 차별 그리고 한국의 강점과 이점에 대해 글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 영어에 미친 자들 #1>


미국의 세계적 부호인 일론 머스크가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 동아시아 대표 삼국의 출산율과 관련한 내용을 트윗에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이 왜 한국과 일본의 출산율이 현저히 적은 지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첫째로 1. 안정적이지 않은 집값(비싼 집값) 그리고 2.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아무래도, 결혼을 한 입장에서 이미 아기를 낳은 주변 친구들 혹은 언니들, 그리고 인터넷의 글과 댓글들을 보다 보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희생을 해야 한 아이를 부모의 만족감 그리고 아이의 만족감을 채워주며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영어 교육’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엄마들이 가장 집착하는 과목인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 즉, 해외 유학 경험 및 해외 교포들 및 영어 스피킹 능력이 좋은 사람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탄생한 영어 유치원은 지역과 커리큘럼에 따라 한 달에 기본 이백만원 에서 삼백만원까지, 부모님들의 등골 브레이커의 주범이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건 장차 아이의 앞날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언어라는 것은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능력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어릴 때부터 한국어보단 영어 혹은 영어로만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교육방식인지 의심하게 된다.


물론, 무엇이든 아주 편안하고 여유 있게 그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도 꾸역꾸역 남들이 다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부모와 아이가 희생해야 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교육 및 삶의 방식인지 의문하게 된다.


필자도 어릴 때부터 영어를 계속해서 배워온 건 사실이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영어 유치원 같은 프로그램이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 보편화되던 시절은 아니었기에, 그냥 구몬과 같은 학습지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나중에는 과외를 받고, 수능을 준비하다가 영어권 학교의 유학을 준비하며 토플과 아이엘츠를 통해 영어를 공부했다.

현재에도 영어를 끊임없이 공부하며 지금 보다 나은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이 원어민 언어학자이기에 언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하루는 내가 너무 궁금했던 외국인들이 원어민만큼의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했다. 남편이 말하기를, 절대로 영어를 쓰는 국가에서 태어나거나 정말 어릴 때부터 산 것이 아닌 이상 ‘원어민(native speaker)’는 될 수 없다 였다. 단순히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꿈도 영어로 꾸고, 모든 표현이 막힘없이 영어로 표현되며 무엇보다, 언어의 문화를 몸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말 그곳에서 갓난아기 때부터 산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나의 언어 목표는 원어민이 아닌 원어민에 가까운 고급 영어를 쓰고, 말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걸로 바뀌었다.


사실상, 우리가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하며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에서도 해외 관련 업무 및 해외 기업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기본적인 업무에서 얼마나 높은 영어실력이 요구되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회는 실용적이고, 경제적 가치가 뚜렷한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국가이다. 즉, 조금은 덜 실용적이고 경제적 이윤이 뚜렷하지 않은 분야에는 투자 가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문학 및 순수미술 및 순수예술 분야에 투자되는 돈보다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다.라는 어른들의 말만 보더라도…) 조금 더 실용적이고 결과가 뚜렷한 학문 및 분야에 국가와 학교의 자본이 투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조금은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이렇게 실용적인 사회에서 왜 그토록 영어 교육에 집착하는 것일까? 영어를 잘해도 실제로 삶에서 영어를 쓸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실제로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많은 청년들은 일반 회사에서 일반 업무를 보며 사회생활을 이어나간다. 물론, 수준 높은 영어 실력을 통해 더 좋은 일자리와 높은 연봉을 받으며 엘리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왜 이렇게 영어 교육, 영어를 잘하는 것에 집착하는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물론, 영어 및 제2외국어에 능통하면 삶의 경험이 확장되고 경제력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는 한 줄이라도 더 기입되어 있는 이력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가 전부라는 듯이 한국말보단 영어를 먼저 배우게 하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무슨 시공간을 초월하는 슈퍼 파워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난 능력으로 추앙받는 문화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찝찝하다. 여전히 영어권 강대국들을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국가적 지리적 위치라지만, 영어 성적 및 능력으로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적 계급(hierarchy)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일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또 누군가는 뒤처진 느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자살률 1위의 국가. 이제는 어딜 가도 영어를 잘하는 유학생 및 한국에서만 공부한 학생들이 많아지며, 국가의 위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소한 교육 분위기를 통해 형성되는 차별과 압박, 그리고 부모님들의 부담감, 정신적 피로감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경쟁적이며 무엇보다 모국어인 한국말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나이에서부터 영어라는 언어를 배우며 아이들이 마주하는 스트레스는 극심하다고 한다. 물론 그 환경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감부터 가져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토플을 공부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수능 영어를 공부할 때, 토플 영어를 공부하고 미드와 영드를 보며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한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도 약 9개월 정도는 영국인 과외선생님과 어학원을 통해서 영어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첫 2~3달은 너무 힘들었다. 한국에서 미국식 영어를 배우고 떠난 영국 유학길에서 처음 만난 영국 , 그것도 북쪽 출신 선생님의 억양을 알아듣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무엇보다 긴장하며 보낸 첫 달은 그 긴장감 때문에 영어가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나름의 선행학습을 하고 떠난 유학길에서도 실제 원어민들의 영어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기에 꾸역꾸역 배운 영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새롭고 흥미로웠다. 언어라는 것이 단순이 문자와 음성이 아닌, 놀고 즐기며 습득하듯 배워야 한다는 말이 몸으로 와닿는 경험이었다.


첫 2년 정도는 영국인 가족 및 영국으로 이민 온 루마니안 가족과 지내며 영어 사용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며 점차 늘던 영어는 대학교를 입학 한 후 조금 더 아카데믹하고 내 전공과 관련된 영어에 집중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물론 대학원을 다니며 읽어야 했던 서적과 논문의 90%가 영문이라서, 독해 실력과 번역 실력은 대학교 시절보다 향상되었지만 스피킹과 리스닝 스킬은 퇴보했다. 그래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서인지 미드와 영드 그리고 영화를 보며 내 나름대로 영어 표현들을 기록하고 반복했다. 물론, 전문적인 직종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영어를 써야 할 일 그리고 영어로 번역을 해야 할 업무들이 많았지만, 그것도 내가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직장 상사들이 시키는 거였단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러던 중 미국인 남편을 만났으니, 지난 3년 동안 영어를 한국어만큼 많이 사용하고 배우다 보니 다시 영어가 확 느는 경험을 가지고는 있으나, 사실상 이러한 특수 케이스가 아닌 이상 영어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나의 요지는, 기를 쓰고 영어를 무조건 잘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과연 유익한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라는 것이다.

언어를 잘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도 유럽 사람들처럼 즐겁게 옆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 도입된다면,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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