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
웨어 두 아이이 빌롱 시리즈는 필자인 내가 한국사회에 살아가며 느끼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의 집합체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으나 꽤나 날카롭고 합리적이라 자부할 수 있다.
필자를 짧게 소개하자면, 9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여자다. 어릴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무용, 악기 그리고 미술에 관심을 발전시켜 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리고 예술론을 전공한 후 현재 다문화, 이민, 미디어 그리고 젠더 스터디스, 글로벌 스터디스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어릴 때부터 누구한테 지시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고,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했다. 반면에, 오타쿠 기질을 발휘하여 내가 꽂힌 분야에 대해서 만큼을 최선을 다해 임했다. 그렇게 운 좋게 얻은 유학의 길을 통해 영국 런던과 옥스퍼드에서 너무 길지도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은 시간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국계 영국인 교수 남편을 만나 현재 서울에서 거주 중이다. 우리 부부는 문화, 언어 그리고 예술, 정치 등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모습에 관심이 많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의견을 공유해 왔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비판적인 자아성찰을 통해 한국에 살아가며 겪는 많은 차별 그리고 한국의 강점과 이점에 대해 글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내 머리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
필자가 대학 졸업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환경과 나의 새로운 삶을 시작 앞에 당황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파격적으로 머리를 잘랐던 적이 있다.
원래도 20대 초반부터 초중반까지 짧은 쇼트커트 스타일을 유지했어서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지만, 영국에서 열심히 기른 머리를 한 번에 싹둑! 남성들의 스포츠머리와 비슷한 스타일로 잘랐다. 그 스타일을 너무 좋아하는 여자 지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남자 지인들은 예전 긴 머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뭐 … 사람마다 스타일이나 취향이 다른 것이니 남들이 나의 머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2년 정도 짧은 머리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미용실에 다녔는데,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최근에, 모 여배우의 짧은 머리 변신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는 기사를 본 후, 왜 우리는 여배우의 머리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선비질’을 멈출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해보다가 나의 경험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요즘에는 ( 벌써 나의 짧은 머리도 6년 전 일이니…) 다양한 스타일과 톡톡 튀는 스타일링도 인기가 많다. 짧은 사이에, 소셜미디어(sns)를통한 다양한 이미지와 정보에 노출되다 보니 이런 좋은 영향도 받는 듯하다. 다양성을 이미지로 나마 계속해서 마주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하다.
한 번은 친구와 나의 첫 서울 클럽 나들이를 갔다. 하지만 그 당시에 통금이 있던 나는 들어가서 1시간도 채 놀지 못하고 친구와 밖에 나와 길거리에서 앉아있었다. 그때 헤어 디자이너 4분이 오시더니, 짧은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청담동의 한 샵에서 헤어 모델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경계했지만, 내 돈 안 들이고 청담동에서 머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그냥 한번 도전해봤다.
내 짧은 머리는 더더욱이 개성이 강한 머리로 변했다. 몇 번의 탈색에 걸쳐 신기한 색과 한 번에 20만 원이 넘는 청담동 모 샵 원장님의 커트를 받으니 정말 멋있게 변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살이 좀 붙기 전이라서, 깡마른 몸에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머리는 자라기 시작하고 그 머리를 관리하기 위해 청담동까지 가기는 부담스러웠기에 그냥 동네에 있는 꽤 괜찮은 미용실들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서 우연히 들어간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겪은 일이다. 아마 실장인가 부원장쯤 되는 헤어 디자이너였고 남성이었다. 그는 나의 머리를 보더니 되게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며 어디서 했는지 등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이미 짧은 머리에서 더 짧게 잘라다는 나의 요청에 계속해서 딴지를 걸었다.
남자 친구는 있는지, 이러면 남자를 못 만난다는 둥, 왜 머리를 안 기르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기분 나빴던 건 정말 나를 ‘판단’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그 눈빛이었다.
내가 내 돈 내고받는 서비스에서 이렇게 판단을 받는 상황이 무척이나 새롭고 화가 났다.
그때 당시 주변에 나처럼 쇼트커트를 하는 언니들은 거의 다 예술 쪽 일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냥 긴 머리가 불편했을 뿐이다. 관리를 해줘야 하고 여름철에 머리를 말리기도 힘들고, 머리도 많이 빠져서 엄마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런 긴 머리가 싫증이 났을 뿐이다.
이러한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판단 그리고 여성을 ‘남성의 응시에 의존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다시 한번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머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의 머리스타일이 한국 대다수 남성이 기대하는 긴 머리 혹은 그래도 좀 긴 단발머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판단’ 질을 당해야 했던 게 매우 기가 찼다.
서울도 점점 다채로워진다. 내가 사는 지역만 봐도 외국인 관광객 및 외국인 거주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의 패션과 스타일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법과 사회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가 누군가의 선비질로 침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많은 패션 브랜드와 스타일 그리고 메이크업, 스타와 인플루언서들이 점점 국제무대로 뻗어나가는 것만큼 우리의 미(beauty)에 대한 기준도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고 확장되어야 한다. 사실 , 최근 몇 년 동안 어울리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며, 내 개인 시간을 많이 가져온 덕분에 바깥세상 사람들이 또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 확실히 적당한 ‘다양성’은 우리의 문화와 콘텐츠를 조금 더 자유롭게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아주 오래전에, 한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런던이나 파리에서는 굳이 학교를 안 다니고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패션만 공부를 해도 공부가 된다던 약간은 낭만주의적 멘트가 생각난다.
사실 런던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 중 하나가, 그냥 런던 시내에서 사람들을 구경을 하면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럭셔리한 포쉬(posh) 패션의 정석을 보여주는 젊은 부부가 있는가 하면, 빈티지 무드와 럭셔리 무드를 자유롭게 믹스 매치한 패션, 혹은 그냥 가벼운 트레이닝 복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들 또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빈티지 패션 등등. 한 공간에서도 다양한 패션과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명품 매장도 장벽이 낮았다. 그냥 심심하면 런던 시내의 백화점에 가서 윈도쇼핑을 즐겨했다. 굳이 사지 않더라도 새로운 시즌의 색감과 디자인을 보며 그렇게 안목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한국 백화점에서는 내가 정말 작은 것 하나라도 구매하지 않거나, 그냥 집 앞 백화점을 간다고 조금은 후줄근한 스타일로 방문하기 약간은 부담스럽고 어려운 시선과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것이 한국의 문화겠지만, 이렇게 다시 서구권의 자유로움이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매일 내 삶에 존재한다.
아직은, 그런 분위기조차도 무시하고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만큼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천천히 가끔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풍경과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고 있으면 즐거워지는 걸 보니, 그래도 조금씩은 이곳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인가 싶다.
이번 글의 제목처럼, 제발 내 옷차림 내 머리는 내 마음대로 해도 그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길 바란다.
우리는 남에게 너무 관심이 많다.
꼭 자기의 의견을 소리 내어 말해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게 꼰대력이다.
남이야 자기 돈으로 뭘 하던 남한테 피해 준거 없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