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Waving to you 08화

자연 앞에 겸손히

by LenaMilk

Munduk


발리의 북쪽에 위치한 마운틴 빌리지! 문둑(Munduk). 발리 한 달 여행 중에 가장 많은 것을 느낀 곳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립고, 고작 2-3시간 같이한 가이드와 택시 운전사, 그리고 아름다웠던 호텔의 직원들까지 그립다. 한 여름의 발리의 날씨라고 하더라도 산으로 둘러싸인 문둑의 날씨는 선선하다. 물론 낮에는 여전히 후덥지근 하지만 충분히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면 풍부한 자연의 냄새와 바람이 후덥지근 더위조차 날려버린다.


문둑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홈스테이와 에어비엔비들이 주된 숙소 형태인 듯했다. 우리는 문둑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역시나 가격이 아주 합리적인 호텔(Puri Lumbung Cottages)에서 머물렀다. 이 호텔은 어릴 적 부모님과 다녀온 한국의 허브나라와 허브 농장을 생각나게 했다. 성장하며 한국의 다양한 곳을 다녔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허브나라의 추억이 가장 찬란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뱀을 보았던 곳, 향긋한 나무와 풀냄새 그리고 허브까지.. 그런 초록 식물들로 뒤덮인 오두막 산장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언제인지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국에 내렸던 큰 비로 인해 그 허브나라가 물에 다 휩쓸려 내려갔다는 사실을 접했던 기억이 있다.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이 글을 쓰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에 허브나라를 쳐보니 다시 재정비를 해서 오픈한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문둑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문둑에서 머물렀던 호텔도 기본적으로 나무와 꽃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곳 곳에 나무로 지은 방이 보였다.

그리고 운 좋게도 우리의 방 옆에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만 오픈을 하는 '선셋 바(sunset bar)'와 마사지 샵이 나란히 있었다. 선셋 바라니.. 너무 로맨틱했다. 매일 선셋 바에서는 고구마나 다른 재료를 이용한 튀김 종류를 그 자리에서 갓 튀겨 놓고 손님들이 자유롭게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글을쓰고 사진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면, 마음이 촉촉해지는 느낌이다. 매일 5시에서 6시 사이에 선셋 바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몇몇 유럽 사람들이 ( 특히, 이 호텔에는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많았다.)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광경과 이제 슬슬 해가 노릇노릇 해지는 걸 보니 나도 술 한잔 기울이고 싶어, 발리 소주를 주문하고 무료 고구마튀김을 접시에 가득 담아 자리를 잡았다. 몇 분 뒤에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홀짝홀짝 발리 소주를 마시며 고구마튀김을 다 먹고 나니, 문둑을 떠나는 것 자체가 너무 아쉽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가끔 너무 어렵다. 그 순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 정도로 문둑 마을의 느낌과 풍경은 아기자기 하면서도 풍요로웠다. 문둑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친절했다. 하루는 산 밑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호텔에서 벗어나 마을로 내려가며 이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 보이는 그 얼굴과 묵묵히 길을 청소하고, 자신의 가게를 가꾸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마을 가운데에 산을 올라가기 위해 도로가 있기 때문에 약간은 무섭기도 했다. 한 번씩 차들이 쌩생 달릴 때면 한국의 고속도로가 생각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모기는 억셌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나 차 없이는 그게 이동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아무래도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이기 때문에 평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선셋 바의 풍경


우리는 문둑에 머무는 짧은 시간동안 다양한 체험을 시도했다. 일단, 호텔 리셉션에 가면 호텔과 연계된 가이드와 드라이버 그리고 원데이 클래스와 체험들을 안내해준다. 그렇게 필요한 가이드의 영어 레벨과 하고 싶은 액티비티를 정해서 알려주면 호텔에서 알아서 스케줄을 정리해준다. 우리는 이틀에 걸쳐 트레킹을 신청했다. 사실, 4-5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트레킹이 아니라 아침 산책의 어려운 레벨 정도의 네이처 워크(nature walk)였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Red Coral "Tanah Barak" Waterfall Trek (밑의 사진 참고)였다. 남편은 평생 어려운 산을 오르는 것을 취미로 가져온지라.. 상위 레벨을 도전해도 괜찮았겠지만 나는 아니다. 그것도 아침 10시부터 걷는다니.. 앞이 깜깜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첫날 시도했던 것은 문둑에서 유명한 폭포를 가는 것이었다. 폭포에서 호텔까지 왕복 2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듯했다. 우리를 안내해줄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폭포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가이드는 문둑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보낸 문둑 로컬이었다.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열심히 걸으며 다양한 식물들을 보고 그의 설명을 들으며 이따금 등장하는 기념품 가게에서 커피와, 차 그리고 나무 식기류를 구매했다. 그들은 매우 고마워했다. 아무래도 팬데믹 기간 동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현재도 과거에 비해 관광객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가족들은 생활고에 힘들어한다고 한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그들의 안위와 축복을 빌어주며, 그렇게 계속해서 걷다 보니 어느덧 폭포 앞에 도착했다. 폭포의 크기가 엄청 컸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여름 오전부터 걸으며 땀으로 범벅되었던(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땀이 많은 편이라...) 몸의 열도 내려줄 만큼 시원했다.

레드 코랄 "타낙 바락" 폭포 코스

그리고 그 오후에 흥미로운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바로! Herbal medicine Class! 허브로 약을 만드는 발리의 민간요법을 배우는 클래스였다. 그렇게 같은 가이드 겸 통역사로 오전에 우리를 안내해 주신 분과 마을에서 마사지와 약초에 대한 지식으로 유명하신 선생님이 오셨다. 우리는 4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약초와 과일을 가지고 장, 두통 그리고 생리통, 기본적인 몸의 활력에 좋다고 하는 약을 만드는 것을 배웠다. 물론, 서울에서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발리 혹은 열대 우림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약초들이기에 실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4가지 정도의 약초로 만든 물약을 마셨다. 내심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를 그것도 네 잔이나 내 몸이 섭취하는 게 맞는 것인가 싶었지만, 설마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며 그냥 마셨다. 몇몇 약들은 매우 썼지만 마실만 했고, 그리고 몇 개는 심지어 맛있었다. 선생님의 설명과 곁들여진 가이드분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생생한 문화 체험이었다.


그다음 날이 밝았고, 우리는 전날보다는 더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 바로, 문둑의 정글을 걷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Inter Lake Trek 제주도 올레길을 걸을 때 작은 숲들은 걸어봤어도 정글은 처음이었다. 어제의 가이드 분은 이미 다른 고객이 있으셔서 다른 가이드 분이 오셨다. 가이드님의 성함은 '유리'였다. 정글에 야생 원숭이도 있을 수 있다기에 내심 기대했다. 사원의 원숭이들에게 된통 당했지만, 야생 원숭이는 아직 마주친 적이 없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정글 탐방. 울창한 나무와 식물들, 일본의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나무의 정기精氣(spirit)를 실제로 느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밑의 사진을 첨부한다. 직접 눈으로 봐야 하지만 다행히 사진으로도 어느 정도 몇 백 년 된 나무들의 신비한 모습과 자연의 위대함 앞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갤러시 z플립3로 촬영한 노 필터 ! 정글의 모습

한국에서도 거대한 나무는 많다. 정말 아주 가끔 등산을 하다 보면 특히 시골의 어려운 산일 수록 오래된 나무를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발리의 정글 탐방을 통해 마주했던 나무들은 말 그대로 신비했고, 자연의 생동감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감탄을 쏟아내며 천천히 걸어가던 중 가이드분께 자연과 힌두(hindu)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분의 대답이 감동적이었다. 내 질문은 이렇게 자연을 보존하고 자연을 아끼는 모습이 발리의 대다수가 믿는 종교 힌두와 관련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었고, 유리는 자연은 우리보다 위대하고 자연 없이 인간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에 경외를 표하고 자연을 아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과,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태도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아니 서울의 삶에서 겸손함은 미덕일까? 아니면 나를 낮추는 독일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만히 있거나 나 자신을 낮추면 호구가 되고는 한다. 아직은 겸손의 참된 뜻을 온전히 이해할 만한 내공이 없는 것일까. 그의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과연 대도시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겸손'의 의미를 이해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자연의 정화 과정과 자연의 선물을 진심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8월의 여름, 올여름도 서울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고, 그 비로 인해 반지하에 살아가던 가족이 참변을 당하고, 누군가의 귀한 자녀였던 남매가 맨홀에 빠져 사망했다. 자연은 무섭다. 그리고 위대하다.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지구 온난화와 같은 지구 기상이변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판타지 동화로만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정글을 지나 거대한 크기의 호수를 마주했다. 그리고 호수에서 카누잉(canoeing)이 가능하다 기에 카누를 타고 호수를 건너기로 했다. 우리는 호수 옆에 있는 템플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의 차례를 기다렸다. 호수는 깊고 넓었다. 매우 깊기 때문에 휴대폰을 빠트려도 그 누구도 꺼내 줄 수 없다며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으며, 그렇게 10분 정도 노를 저어 도착한 곳은 오래된 사원과 들판이 있는 평지였다. 평지가 나타나자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넓은 들판 옆에 오래된 사원이 있고, 바로 앞에는 호수와 산이라니.. 생각만 해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이제 그다음 날이면 문둑을 떠나,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인 우붓(Ubud)으로 향한다. 문둑을 떠나려니 마음이 아려왔다.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다. 트레킹 프로그램을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주 정도는 머물면서 다양한 트레킹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을 더 깊숙이 관찰하고 정글 더 깊숙이, 그리고 다양한 호수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게는 한정된 시간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아쉬운 대로 다음 기회를 기대해야 했다.


호수에서의 시간도 마무리하고 다시 차를 타고 호텔로 향하던 중, 가이드 유리가 심오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은 아시아의 별처럼 동남아 사람들의 롤모델이라는 것이다. 케이팝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와 발리에서도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며,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의 속도를 매우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비결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한국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 성장과 비교해서 우리가 과연 성숙한 인간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는 물음표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짧게 하며, 한국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았다. 온갖 비리와 갑질 그리고 성희롱, 국가 세금을 낭비하는 정책과 몇몇 교수들의 논문 표절 등등.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진 국가의 부유함이 과연 부러워해야 할 부분인가 싶다가도, 당장 먹고살 것이 급급한 상황이라면 한국의 부유함이 그저 부러운 우상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내 대답은 " 한국이 급성장한 것은 맞지만, 사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대도시 사람들은 매우 이기적이고 물질적이에요, 그래도 굳이 비법을 찾으라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조부모님 세대들의 헌신과 열심히 일한 결과가 아닐까요.." 그러자 유리는 갸우뚱 거리며, 발리 사람들도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열심히 일을 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그렇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정책과 과거 미국의 원조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는 미국인 남편을 쳐다보며 엉클 조(uncle joe)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던 것 아니냐 물었다. 우리는 다 같이 하하하하 웃으며 그렇지, 아무래도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고 경제 롤모델을 삼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온 것들의 결실이겠지.. 사실, 90년대 생인 나는 70년대와 80년대를 간접적으로 배운 세대인지라, 한국같이 복잡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했는지 한마디로 표현하라 하면 마음이 복잡하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귀결되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자면 한국인의 의지와 집념 그리고 열심히 하는 성실함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으로 -


그렇게, 문둑에서의 삼일을 꽉꽉 채워서 보냈다. 생산적이고 감동적인 3일이었다. 혹시, 발리를 가게 되신다면 문둑을 꼭 가보시고, 제가 머문 호텔의 선셋 바에서 맛있는 칵테일과 발리 소주를 마시며 살짝 취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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