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기
Ubud
우붓이라는 이름과 울창한 정글 옆의 고급 리조트에 대해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겹도록 보고 들었다. 우붓 도착한 첫날! 지난 여행지였던 문두에 대한 그리움으로 센티한 하루를 보냈다. 우붓은 지금까지 다녔던 발리의 시골 그리고 한적한 길리 섬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많은 자동차 그리고 오토바이,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항상 북적북적거렸다. 사람들도 덜 친절했다. 갑자기 다시 한번 도시(물론 우붓이 서울 규모의 대도시는 아니지만.. 비교적 도시에 가까운 큰 타운)의 삶에 넌더리가 났다. 조용히 있고 싶지만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밤이 되면 공연 티켓을 파는 사람들, 길을 걸으면 호객행위를 하는 주민들. 아무래도 우붓은 나랑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게 그립던 떡볶이가 파는 한식집이 있는 곳이니, 맛있는 음식이나 잔뜩 먹고 발리의 마지막 날들을 마무리 하자 생각했다. 그렇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부터 바비 굴링 그리고 퓨전 인도 음식과, 떡볶이 등등 잠시 인도네시아 음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준 높은 음식들을 즐겼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쇼핑을 하다 보니 다시 앞으로 나의 카드값과 노동에 대한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했다. 사실, 발리가 은세공이 유명하다고 하여 은으로 만든 목걸이와 반지 팔찌 등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을까 했지만 가격이 그렇게 저렴하진 않았다. 그리고 너무 종류가 많아 선택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는 흥정을 하는 관광객과 상점 주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붓에서 매일 밤 선보이는 전통 춤 공연들은 한 명당 만원이면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공연이다. 서울에서도 공연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기에, 공연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들었지만, 이국적이고 수준 높은 연주 실력과 발리 전통춤을 보다 보니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특히, 종교와 관련된 발리의 신화와 종교의식을 덧붙인 공연을 보고 있으니, 수백 년간 이어온 그들의 문화와 그 자부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첫 공연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은 오래 지속되었다. 첫 공연은 Kecak Fire & Trance Dance 였는데, 수십 명의 남성들이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며 주술적인 행위를 이어나가고 그 중간중간에 전통 가면과 복장을 입은 배우들이 대사와 연기를 하는데 화려한 코스튬과 가면 그리고 기묘한 동어반복의 행위까지.. 어딘가에 홀린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마지막에 불을 가지고 주술적인 춤과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은 달궈질 대로 달궈진 불 위를 걷고 이런 행위를 반복한다. 주술에 홀린 듯이 뜨거운 숯불 위를 걷는 퍼포먼스가 20분가량 지속되고, 그렇게 끝나고 나면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공연이 끝난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마지막에 뜨거운 불과 숯에 몸을 던지던 청년에게 관객들의 팁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돈을 쥐고 하늘을 향해 감사 인사드리는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발리 사람들과 종교 그리고 종교적 행위의 긴밀한 관계가 느껴졌다.
발리의 외각에는 마스크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작은 갤러리, 마스크 판매점이 있다. 남편은 전통 가면을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여행의 첫 시작부터 발리의 전통 가면을 찾고 있었고 그렇게 찾게 된 가면 상점에 들르기 전 마스크 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시는 무료였다. 일단 방문객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다른 커플 이렇게 사람 4명이서 꽤나 큰 박물관을 구경하려니 기분이 묘했다. 발리의 매력이 가득 담긴 막 물관은 역시나 많은 나우와 풀 그리고 나무로 지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은 전시관이 차례로 지어져 있었고 그 안에 발리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롬복섬의 전통 마스크 그리고 일본, 중국, 한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공수해오거나 기증받은 다양한 마스크가 진열되어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 간다면 외부의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고, 다시 전시관으로 돌아가 다양한 마스크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스크를 구경한 후에 방문한 가면 상점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장인이 만든 가면들이라 그런지 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렇게 장인이 만든 가면을 구경한 후 주변의 다른 상점들을 찾기 위해 걷다 보니 근처에 공방 같은 공간들과 숨겨져 있는 오래된 가면 상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상점에서 우리는 거의 한 시간을 머물렀다. 빈티지 가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가격대도 합리적이었고 무엇보다 영어를 꽤 잘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이것저것 많이 안내해 주셨다. 오래된 가면부터 시작해서 비교적 현대에 만들어진 가면까지, 기괴하면서도 신기한 가면들을 기분이 오싹하면서도 신기했다. 사람의 형상을 기괴하게 과장해서 표현하는 가면은 기괴하면서도 독특하다. 그렇게, 남편은 총 3개의 가면을 구매하기 위해 가격을 흥정하고, ATM 기계를 찾아 돈을 뽑고 꼼꼼히 포장을 하고 그렇게 거래를 마치고 사장님 가족들과 인사를 하는데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그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고맙다고 표현했고, 우리의 안위와 행복을 빌어주었다. 고작 한 시간 남짓 교류한 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따듯함이 두고두고 기억 날 것 같았다. 꼭 특별한 대화를 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고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문화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것이 여행의 아름다움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몇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꽤 큰돈이라는 것과 그것에 감사함을 표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한편으로는 물건을 사는 입장이지만 우리의 구매를 통해 이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까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발리의 공연을 3일 연속으로 보다 보니 잠시나마 발리의 춤과 발리 전통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우붓의 한 리조트의 원데이 클래스를 등록했다. 우리 선생님은 발리 여성분으로, 발리 춤 전문가시지만 발리 전통 악기들도 다룰 줄 아는 분이었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너무 대충대충 가리키는 느낌이 강했으나, 그들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을 탓할 수도 없으며 이 언어장벽으로 인한 불편함은 대충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발리 춤을 배우고 나니 강도가 높은 운동을 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도 영업을 이어나가는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한 후 우리의 우붓의 하루도 그렇게 저물었다.
발리는 그런 곳이었다. 흥정을 하며 값싼 가격으로 과일을 구매했던 길거리의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멀리서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그렇게 나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면서 그들의 따듯한 웃음에 다시 한번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평생을 알아온 사람과도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돌아서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의 웃음과 인사 한마디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 사람이 죽도록 싫다가도 그 사람의 약한 모습을 보며 화가 누그러드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10년 만남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6개월 만에 결혼도 할 수 있다. 반면에 평생 살아온 배우자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해 죽을 때까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하더라.
서울로 돌아와 발리 여행기를 작성하며,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웃음을 잊지 말기로.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 자연을 아끼고 사랑할 것, 그리고 이웃을 향해 웃으며 그들의 사정에 관심을 가질 것. 무엇보다, 삶을 모험하듯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상처받지 말 것. 여전히 서울의 삶은 각박하고 바쁘다. 그럴 때마다 발리의 사진첩을 꺼내 보며 마음을 다스린다. 잠시 눈을 감고 발리의 바닷가를 머릿속에 그리며 발리에서 배운 것들을 상기하고 내 마음을 잠재운다. 발리 하면 떠오르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 영화와 스웨덴 국민 소설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창문 밖으로 도망친 100세 노인'에 발리가 등장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발리를 너무 이상화하는 것은 자칫 여행의 실망감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발리는 신비롭고 고요하다. 모두가 꿈꾸는 자연의 아늑한 삶, 나의 영혼의 깨달음과 삶을 잠시 멈춰갈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곳이다.
아직은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젊은 나이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준 이 여행을 통해 나의 마음이 한층 성숙해졌기를 바라며..
안녕 발리! 다시 볼 때까지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