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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Nov 27. 2022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2021, 하마구치 류스케

    네이버 줄거리:

    누가 봐도 아름다운 부부 가 후쿠와 오토.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 후쿠는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말없이 묵묵히 가 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세계적인 작가 무리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여자 없는 남자들'의 수록된 이야기를 각색해서 제작한 영화이다. 약 5년 전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먼저 접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키 소설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조용히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단편 소설 모음집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남녀관계 그리고 그 속의 만남과 이별, 한 개인을 파괴하는 부재와 상실의 모습을 담았다. 어떻게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앞서 보여준 이야기들의 반복이라고 느껴질 만한 클리 셰한 전개이기도 했으나, 여전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관계와 그 속의 상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중 하나를 각색하여 드라이브 마이카라는 영화가 탄생했다. 일본 특유의 잔잔한 호흡과 잔잔하면서도 감성적인 사운드 트랙, 일본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일본 연예계에 관심이 있다면 알법한 일본 대배우와 젊은 배우들의 연기까지 조금은 느긋한 전개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서도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연출이 와닿는 영화였다.

    모든 캐릭터는 상실을 안고 살아가기에, 자신들의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그로 인해 기형화 된 성격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사실의 그들의 방황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의 아픈 상처가 내면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내적인 방황을 하고 있다는 인상만을 남길뿐이다.

    

     주인공 카후쿠는 우연히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로 인해 그의 삶에 다시 한번 균열이 생긴다. 둘 사이에서 태어났던 소중한 아이가 세상을 떠난 후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자신의 지옥에서 살아가던 아내의 충동적인 모험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이것을 따져 묻기도 전에 아내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운전을 하며 연극의 대사를 외우고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던 그의 삶에 의도치 않은 큰일이 닥쳤지만, 영화에서 묘사하는 그의 일과에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삶에 균열이 찾아온 그는 그래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연극의 연출자로 오디션을 보던 중 죽은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던 젊은 배우를 마주한다. 싫어도 완전히 떼낼 수만은 없는 관계로 그렇게 연출자와 배우로 매일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미 그 젊은 배우는 한창 배우로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여성 편력 문제로 방송계에서 퇴출당하다시피 쫓겨나 연극계를 기웃거리던 젊은 청년이었다. 한편으론 이런 형편없는 젊은 남자와 몸을 섞던 아내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피하려고 하던 과거를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기에 카후쿠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다시 차분하게 연극 연습에 매진한다.  운전을 좋아하며, 자신이 길들인 오래된 차를 운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도 변화가 요구된다. 그는 이번 연극을 주최하는 레지던시 운영진의 조언에 따라 운전사를 고용하게 되고, 그녀의 운전 실력과 조용한 성품에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자신의 딸이 살아있었다면 이 젊은 운전사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기에 그녀를 조용히 지지하고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마음을 쓰게 된다. 과거를 이해하기보단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도망치던 그에게 진정으로 터놓고 과거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의도치 않은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운전기사 미사키,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일찍이 어른이 된 그녀에게 닥친 비극은 그녀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보단 평범한 무표정으로 해야 할 말만 하는 무뚝뚝한 그녀가 조용히 읊조리는 자신의 과거와 잔잔히 전달되는 그녀의 상처는 느 세계에나 존재하는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파괴된 자아와 묵묵히 삼키는 삶의 아픔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운전을 할 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운전이기에 그렇게 조용히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자신을 표현하는 일보단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상처받는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조용히 보듬으며 서로가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도와주고, 그 힘으로 자신의 한계를 다시금 극복하게 된다.

    극단의 연습기간이 마무리되어 갔다. 모든 배우들의 자신의 몫을 다해 준비한 연극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큰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극단 안에 큰 위기가 찾아온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카후쿠가 맡았던 역할의 대사들이 꼭 자신과 아내에게 하는 말 같아, 더 이상 배우로서 활동을 할 수 없던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직시한 그는 다시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서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 뛰어들게 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서정적인 일본 영화가 그렇듯, 느리다 못해 답답히 흘러가는 호흡과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잔잔한 연기는 모든 대중을 사로잡을 만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 영화 마니아 팬층이 두터운 이유를 다시 한번 재확인하며,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히 풀어내는 일본 영화와 각본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날 법하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의 스토리, 그리고 특유 일본인들의 정서와 문화,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감정, 외로워도 외롭다 표현하지 않는 주인공들 하지만 그들의 텅 빈 얼굴과 여백을 살린 연출, 담담한 읊조림을 통해 만남과 이별, 상처와 치유와 같은 요소들을 담담히 풀어낸다.


    특히, 이 영화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 듯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 '토니 타키타니'의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했더니, 주인공 카후쿠를 연기한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토니 타키타니에도 등장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잔잔한 늦은 밤의 시간에 본다면 무척 우울해질 수도 있으나, 성인이 된 우리들은 인생이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며 그것을 참아내고 극복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이겨내는 하루하루 그리고 그 속의 아름다움, 개인의 성장 더 나아가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받는다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무리 큰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그 시간에 떠밀려 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그 상처가 극복되기도 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마음속에 딱딱히 응고되어 마음을 짓누르기도 한다. 변화가 없는 그들의 표정에서, 차가울 만큼 잔잔한 삶의 흐름 속에서도 느껴지는 주인공들의 아픔이 미니멀한 연출과 비교되어 극적으로 다가온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표현같이, 겉으로는 흔들림 없어 보이지만 요동치는 그들의 내면을 섬세히 표현해낸 배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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