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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Dec 03. 2022

(단편소설) 조금은 아픈 이야기

#4. 빈방

    오래된 집이다. 그래도 문정도는 현대식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여전히 열쇠로 열고 닫아야 한다.

뻑뻑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익숙한 냄새로 가득하다. 아무도 없는 이 집의 가라앉은 공기와 고요함, 그리고 시간의 무게가 동시에 느껴졌다. 10년 이상을 이곳에 살았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인데, 사람의 왕래가 끊긴 이곳은 누군가 다시 돌아와 주길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집의 공기와 무게감이 내 몸에 달라붙어 오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예나 지금이나 따듯했다. 텔레비전이 꺼져있는 거실은 고요했다. 냉장고와 시계 그리고 작은 기계들이 조용히 작동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덜 적막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웠지만 온전히 차가운 냉기가 흐른다거나, 외로운 기분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같이한 가구와, 공기 속에 떠다닐 우리의 흔적 그리고 나의 기억,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억들이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결코 이 공간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과거 속으로 빨려가듯, 천천히 지난 시간을 살펴본다.

그리움이 마음에 가득하다. 곧 다시 떠나야 하는 이곳인데, 우리의 흔적과 이야기들이 옷깃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붙드는 것 같다. 조용히 말을 시켜본다. 어제도 오늘도 추운 날씨인데 이렇게 따듯한걸 보니 이곳은 따듯한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었구나 생각한다.


    집은 거주자들의 기억과 감정을 먹고 산다. 목 빠지게 기다리던 주인이 나타나면 온 맘 다해 따듯하게 반겨준다. 집의 따듯함은 그 어떤 럭셔리한 호텔과 멋진 풍경에도 비교되지 않는 포근함과 안정감을 준다. 집은 살아 움직이고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준비한다.


    여름날의 뜨거운 햇빛과 밝은 햇살, 저녁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눈앞에 펼쳐진다. 거실에 앉아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집은 지금 가장 그리운 것을 불러오는 힘을 지녔다. 어머니의 칼질 소리와 찌개가 끓는 소리, 그들이 조용히 나누던 대화들, 상처 주던 대화까지도 한없이 그리워졌다.


    문제는, 우리의 기억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참 전에 이곳에 살던 불행한 한 남자의 기억도 같이 머물러 있었다. 그의 기억과 흔적을 이어받은 우리 가족은 그 남자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를 찾아 나섰다. 그 남자의 안위를 걱정하던 집의 미련을 풀어줘야지만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될 것 같았다.

    

    그 남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남자는 꽁꽁 숨어버린 듯이 사라져 버렸다.

새벽의 시간에 집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 살던 이전 남자의 온기와 그의 기억 그리고 그의 감각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는 외로웠던 것 같다. 이 집에서 보내던 날들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그를 찾아 나섰지만 그는 사라져 버렸다. 어딘가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길 바랄 뿐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적 없는 그를 걱정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는 나의 존재조차 모를 테지만 나는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함께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집은 스쳐 지나간 이들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들은 주인을 보호하면서 그들의 삶에 녹아든다. 하지만 , 인간은 눈치채지 못한다. 항상 움직이고 눈앞에 있는 것들,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들에만 큰 관심을 두는 인간은 집이 우리들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눈치채지 못한다.


     집은 때로는 철거되기도 하고 보완되기도 하고 비어 내기도 한다. 집도 외롭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그렇게 그들의 기억을 되새긴다.


이 글은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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