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NA Mar 21. 2019

30+n 년 간의 방황

그동안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 '넌 무엇을 하고 싶니?'

나는 태생이 게으르다. 바쁘게 움직인다거나 꽉찬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것을 버거워 한다. 고등학교 때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는 것을 힘들어 했고, 직장 생활 중에 야근을 거의 한 적이 없지만 어쩌다가 늦게 까지 일을 해야 하면 몸둘바를 모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게 나는 바쁘게 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어쩌다가 며칠간의 휴가가 주어지면 계획을 세워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평소에 못했던 책읽기라던지 커피샵에서 딱히 할일 없이 인터넷 브라우징을 한다던지 공원을 산책한다던지 하는 여유로운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을 즐긴다. 계획 세워 떠나는 여행 자체가 나에게 큰 스트레스임을....


내가 생각하는 일상


이런 내 성향을 너무 잘 알아서 대학교 때는 나름 열망하던 라이프 스타일이 있었다. 일명 '아이들러(Idler).'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보다 좀 더 느긋히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그런 삶. 당시 동기들이 공모전이다 인턴쉽이다 여기저기 취업 준비에 바쁘게 지내고 있을 때 나는 대학교 4학년 때까지도 특별한 목표 없이 음악을 들으며 취업과 전혀 관련 없는 서적들을 뒤적이며 그렇게 대학 마지막 일 년을 보냈고 당시 교수님들에게 해외 인터뷰쉽 간다고 하고 미국으로 한 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할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등 떠밀려 나왔을 때는 멘붕이었다. 이젠 더 이상 집에서 용돈 받으며 공부하는 학생이 아닌 사회인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생에 있어서 초조함을 느꼈던 것 같다. 졸업 후 주변을 돌아보니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던 이들은 어디든 취직을 했고 그런 소식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6개월간 인턴도 해보고 여기 저기 취업 준비를 해보다가 결국 다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해외 인턴쉽을 갔다. 그러고 6개월 만에 정직원이 되어 미국에서 5년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20대 중반/후반을 로스 엔젤레스에서 보내게 되었다. 일 년 내내 따뜻하고 바다가 있고 쾌적하고 모든 것이 서울보다 현저히 느린 페이스로 진행되었다. 내 적성과 너무 맞았다. 5시면 퇴근하여 운동을 가고 주말에는 등산을 가고.. 하지만 목표가 없었다. 여전히 대학교 때랑 마찬가지로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 수록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명백해졌다. 3년쯤 지나니 다니던 회사를 너무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면 회사를 그만 두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건 싫었다. 그렇게 2년을 더 버텼고 5년이 되던 해에 회사를 더 이상 다닐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혀 모든 것을 내려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문화적 이질감, 특히 서른 즈음 사회생활 5년 차 이상 친구들을 보며 큰 이질감을 느꼈다. 더 이상 목표 없이 흘러 다니는 이십 대가 아닌 3년, 5년, 장기 목표를 갖고 현실에 치여 사는 서른 살, 어른 살이 되었던 것이다. 나만 빼고...


결국 다시 한국을 뜨고 말았다. 5년이라는 짧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느낀 것보다 더 크게 정체성을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뉴욕으로 왔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뉴욕에서 3년을 보내고 나서야 드디어 목표가 생겼다. 40살 되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겼고 직업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여기까지 오기가 이렇게 힘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지난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찾기 힘들어했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쉽게 찾았던 것 같다. 그 일연의 대답들이 모여 내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고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뭔가 하고 싶은 게 슬슬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라거나 뚜렷한 목표라거나 하는 것은 막연하기만 하다. 하지만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렇게 소소하게 단기 목표를 세우고 있다. 올해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코딩과 데이터 분석을 배울 예정이다. 학교도 등록했다. 코딩을 배우고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더 어린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일찍 발견해서 자리 잡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바뀌기 마련이니까 10년 동안 먹었던 쌀이 하루아침에 먹기 싫어져 빵을 먹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 심정으로 나는 매일 나에게 질문한다. '넌 하고 싶은 것이 뭐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