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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May 01. 2019

뉴욕, 뉴욕, 뉴욕

4년째 열애 중입니다.

나는 뉴욕에 대한 환상을 가진 적이 없다. 미국에서 살고 싶은 로망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뉴욕에 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물론 고등학교 때 본방, 재방까지 사수하며 보던 '섹스 앤 더 시티' 덕에 뉴욕이 매력적으로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뉴욕에 살고 싶어 했던 적은 없었다.


미국에서 살고 싶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 도시는 엘에이였다. 일 년 내내 따뜻하고 야자수가 있고 차를 운전해 출퇴근을 하고 모든 것이 서울 생활과 달랐다. 엘에이 생활에 익숙해진 내가 종종 뉴욕에 놀러 가면 더럽고 복잡하고 사람 많고 정신없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별로 살고 싶지 않은 뉴욕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모를 어떤 연유에서 몇 년 뒤 나는 뉴욕으로 이사 왔다. 물론 내가 서울을 버리고 뉴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백 프로 나의 의지에서 비롯한 이동이었지만 반 강제적 선택이었다. 그렇게 뉴욕으로 이사 오고 처음 두 달은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삭막하고 무례하고 더럽고... 길거리의 뉴요커들은 그렇게 나를 심적으로 지치게 하였다. 어딜 가나 친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심한 낯섦으로 일 년만 살고 다시 엘에이로 이사 가리라 마음먹었던 나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4년이 지났다. 4년이란 시간을 보낸 후 뉴욕을 향한 나의 마음은...

"I F***king Love New York City!!!!"


사람들은 뉴욕에서 십 년은 살아야 진정한 뉴요커라며 4년이면 아직도 'Honeymoon Phase', 신혼기라서 뉴욕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결혼 한 것 치고 4년이면 오랜 신혼기인 듯싶다.


뉴욕이 살기 좋은 도시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이런 거지 같은 도시에서 왜 사나 싶을 때도 많다. 살기 안 좋은 점이 더 많은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뉴욕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



1.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도시: 끊임없는 자기 발전에 대한 동기부여

엘에이에서 로컬들이 자주 찾는 술집이나 식당에 가서 행여나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여 그네들의 직업이 무엇인가 물으면 정말 셋에 둘은 '배우(지망생), 코미디언(지망생), 작가(지망생), 영화감독(지망생), 모델(지망생)' 중에 하나다. 그때마다 평범한 회사원은 대체 어디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었다. 동네가 동네인 만큼 장차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꿈 많은 청년들이 많은 도시였다. 그래서 엘에이 하면 능력이나 지적 수준보다는 겉모습에 치중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런 엘에이를 Superficial(사전적 의미: 피상적, 천박한) 한 동네라고 일컫는데 그 말은 헛소문이 아니다. 모두들 운동하고 몸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도시니까.


반대로 뉴욕은 어딜 가나 명문대 출신이 발에 치인다. 물론 서부보다 동부가 좋은 학교도 많고 학구열도 세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 차이가 이렇게 극명할 줄 은 뉴욕에 살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다.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하버드, 예일 출신은 흔하게 만날 수 있고 아이비리그는 아니어도 타주에서 이름 좀 날리는 학교 출신도 정말 많다. 물론 콜럼비아, 뉴욕대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각 국에서 석사, 박사까지 하고 온 사람들이 즐비하니 뉴욕은 정말 어지간한 학벌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뉴욕시에 위치한 아이비리그 콜럼비아 대학교

이 학벌 좋은 사람들이 경제, 금융, 패션, 문화,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뉴욕이다. 여기저기 능력자들이 한데 모인 곳.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자격지심으로 작용했다. 서른 넘어 이사 온 이 곳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에 부딪혔다고나 할까.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 모든 것이 자극제로 작용해서 자기 계발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나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로 쌓아가는 인맥 속에서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일례로 뉴욕 이사 온 첫 해에 구한 아파트에 룸메이트가 총 세명이었는데 한 명은 NYU에서 석사 과정을 하며 UN 인턴 하던 캐나다 인, 한 명은 멕시코 정부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계 멕시칸, 마지막 한 명은 에콰도르 출신 가수였는데 그녀의 음반이 스패니쉬 음악 차트 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들었다. 2년이란 시간을 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정말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뉴욕이란 도시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모든 것에는 열심히 사교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존재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갖고 뉴욕이란 도시에 모인 이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배운 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정말 의미 있다.


2. 세계 최고의 쇼핑 도시: 다양한 팝업/플래그쉽 스토어

현재 본인은 H 모 패션 브랜드 글로벌 플래그쉽 스토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쉬는 날 쇼핑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쇼핑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하거나 그냥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세계 최고 쇼핑 도시라서 좋은 이유는 편리하기 때문이다. 딱히, 나는 얼리 아답터는 아니라 신생 브랜드에 지나친 관심과 애정은 없지만 이들이 시장 조사를 하고 스타트업 회사들이 팝업 스토어를 내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 일 없이 돌아다니며 말로만 듣고 인터넷에서 사진만 보던 제품들을 실제로 테스트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인터넷에서 구매했던 물건도 매장이 바로 옆에 있으니 직접 가서 환불도 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사이즈 교환도 할 수 있고. 미국에서 사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뉴욕 같은 메트로 폴리스를 제외하고는 미국 내에서 어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차를 타고 몇십 분을 가고 오고....


또한 뉴욕은 여러 브랜드들이 초대형 플래그쉽 매장을 선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미국 경기가 많이 안 좋아서 예전같이 대형 매장들이 들어서기는커녕 회사들마다 철수하기 바쁘긴 하지만 옛날 타임 스퀘어 전성기 때만 해도 그 유명한 Toys R Us(토이스 알 어스의 파산은 어딘가 가슴이 아렸다. 스마트폰 게임이 대체해버린 장난감 시장의 현실. ㅜㅜ) 매장 안에 회전차부터 시작해서 5번가에 있는 대형 아디다스 매장 및 소호에 나이키 랩... 등등 정말 많은 회사들이 꽤나 큰 규모로 플래그쉽을 선보이고 그 매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뭔가 일등 소비자로 채택된 것 같아서 기분이 우쭐하다. 그래 봤자 내 지갑만 털리고 호갱이 되는 거겠지만 나 같은 소비형 인간에게 뉴욕은 정말 천국이다.  

타임 스퀘어 H&M 매장


3. 문화적으로 풍부한 도시: 박물관, 미술관, 공연, 레스토랑, 바, 공원 등 다양한 문화 공간

뉴욕이 문화의 도시라는 것은 말해 입 아플 정도로 자명한 사실이다. 메트로 폴리탄, 구겐하임, 모마, 휘트니 등 그 미술관 개수와 규모만 해도 벌써 2주 치 여행 계획은 잡히니 말이다. 게다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연극,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등등 품격 있는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두루 갖추어진 도시이다.


이 모든 문화생활 중에서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문화생활은 단연 Bar Hopping:바합핑, 술집과 술집을 뛰어다닌다는 의미로 여러 Bar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한다. 뉴요커들 만큼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도시 사람들도 없지 않나 싶다. (아, 물론 한국 사람 제외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술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과연 장사가 되나 싶은데도 주말이 돌아도 면 어김없이 맨해튼 대부분의 술집들이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나는 한 술집에서 오래 술 마시는 것보다 술 한잔 마시고 옆집 가서 또 한잔 먹고 하는 것을 즐긴다. 장소를 옮기며 술집마다 갖는 특유의 데코라던지 손님들 분위기가 바합핑의 재미를 선사하는 것 같다. 또한, 퇴근 후 해피아워도 뉴욕의 술집을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사람이 넘치는 바에서 술을 마시다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은 덤이다. (실제로 현재 뉴욕에 있는 친구 반 이상은 술집에서 만났다.)


본인은 사람 구경을 제일 재미있어한다.


이 밖에 도시의 수많은 벽을 장식하는 그라피티, 벽화는 도시 전체를 갤러리로 만든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는 그냥 하염없이 걷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냥 정처 없이 걷기만 해도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요즘같이 봄이 오면서 햇볕이 따뜻해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콧속으로 들어오면 내가 정말 뉴욕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블록 건너마다 있는 작은 가든 공원부터 센트럴 파크까지 뉴욕 곳곳에 위치한 공원에 찾아가 가만히 앉아 사람 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점심시간에 가서 주로 멍 때리는 브라이언트 공원



4. 다인종 다문화: 이민자에게 호의적인 도시

마지막 이유는 사실 나에게 특별하다. 일단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무슨 말이고 하니 다인종 다문화여서 좋은데 싫을 때도 있다. 사실 뉴욕에 살기 전까지는 다인종 다문화를 찬양했다. 미국으로 이사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하고만 사는 것보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를 한 번에 경험하고 싶었다. 대학교 때 애정 했던 문화인류학과 수업들을 되새기며 나는 다문화에 대해 언제나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몇 년을 살고 나니 이 부분에 있어 여러 가지 의견이 교차한다.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에서 오는 신기함과 매일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반면 한편으로 내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문화적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이 생각보다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뉴욕 와서 느꼈다.


특히 직장 내에서 그 이질감을 극복하는 것이 처음에는 꽤 힘들었다. 예를 들어 유난히 게으른 문화가 있다던가 하는 것. 여기서 '게으름'의 기준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것으로 빨리빨리 가 몸에 밴 한국적 문화 배경의 나는 특정 문화 출신 동료가 게으름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일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 근면성의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인수인계를 할 때 좀 난감할 때가 많았다.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2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뉴욕 기준만을 따를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있는 곳은 뉴욕이니 뉴욕 스타일대로 일하고 뉴욕 스타일대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사실 아직까지도 뉴욕 스타일이 뭔지 모르지만 대충 맞춰 가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정말 많은 인종들이 살다 보니 미국 사람들 시선이나 마인드 자체도 굉장히 진보적이다. 인종 차별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여타 미국인들보다 평균적으로 월등히 높은 것 같다. 별의별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다 보니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이 즐비하다는 것은 뭐 말할 필요도 없고.


뉴욕만큼 이민자에 있어서 호의적인 도시도 미국 내에 별로 없는 듯하다. 어느 나라 출신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열심히 뭔가를 일구어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도시. 그게 뉴욕이고 내가 뉴욕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남들이 모르는 뉴욕의 특별한 장점을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쓰고 나니 내가 뉴욕을 좋아하는 이유가 남들이 갖고 있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뭔가 식상하다고 느꼈다. 매번 주변인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역설했던 것 중에 하나가 뉴욕 관광만 해서는 뉴욕의 참맛을 모른다였다. 뉴욕은 살아봐야 그 참 맛을 아노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그 살아봐야 진국인 줄 아는 그 포인트를 살려내고 싶었는데 내 글쓰기 실력으로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어찌 되었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뉴욕이란 도시가 정말 하루에도 몇십 번씩 인간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며 혹독한 극기 훈련을 시키는 도시이지만 그 서바이벌 장에서 살아남는 희열을 선사하는 곳이라는 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뉴욕에서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뉴욕에서 떠날 준비가 되는 날까지 나는 열렬히 뉴욕과 연애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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