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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Apr 18. 2019

화초 기르기, 그 대단한 책임과 헌신

스스로를 돌보기도 벅찬 나의 화초 돌보기

작년, 햇빛이 잘 들어오는 아파트로 이사한 후 급 몇 달간 화초를 엄청 사들였다. 선인장부터 시작해서 열대 지방 화분, 꽃 화분, 나무 화분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사들인 화분만 집에 30개가 넘는다. 화초 키우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라든지 경험 없이 단지 집이 초록 초록하면 좋을 것 같아서 무작정 화분만 사들였는데, 일 년이 지나니 어지간히 손이 많이 간다.


거실의 절반이 화분으로 채워져 있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 해진다.

손은 많이 가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심신의 안정을 얻는다. 푸른 잎 무성한 화초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집안 곳곳 활기가 가득 찬다. 이 맛에 집에 30개가 넘는 화초가 있음에 불구하고 어쩌다 꽃집이라도 지나갈 때면 뭐 또 살만한 화초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날 보고 친구들은 병적인 수준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작년 초 여름의 거실 풍경


반려견을 키울 때 들이는 수고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수고가 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화초 키우기가 그다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식물은 햇빛, 습도, 통풍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도 쉽게 병들거나 죽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화원에서 보고 이쁘면 닥치는 대로 집에 들였던 덕분에 초반 화초 몇 개는 한 달도 안돼서 서서히 혹은 갑자기 죽었다. 아무리 풀떼기, 말 못 하는 화초여도 일단 시들시들 죽어가기 시작하면 그걸 지켜보는 사람 마음은 안 좋다. 가장 먼저 얼마를 주고 저 화초를 샀는지 생각한다. 그럼 마음이 매우 쓰리다. 보통 싸게는 3천 원부터 3만 원 까지, 혹은 그 이상을 주고 사 왔는데 한 달도 안돼서 잎이 시들하고 누렇게 변하면서 죽어가면 정말 내가 돈지 X 했구나 싶으니까. 실제로 내 룸메이트는 40만 원이 넘는 피들리 피그 나무를 샀는데 여름 내내 그냥저냥 잘 살다가 갑자기 가을로 접어들며 나무가 잎을 하나, 둘씩 떨구기 시작했다. 지금은 손가락 잎사귀 네다섯 개 달고 앙상한 가지만 뻗친 채 겨울을 보냈다.



작년 봄에 산 화초 중에 차이나 돌(China Doll)이라는 아주 예쁜 화초가 있는데, 여름 내내 햇볕 강한 창문 턱에 놓아두었더니 엄청 잘 자랐다. 잎사귀가 아기자기한 것이 초록색의 무성한 가지를 뽐내는 게 매력 포인트다.


차이나 돌 (China Doll)


그런데 이 화초가 얼마나 민감한가 하니 여름내 강한 햇볕 받으면서 물도 자주 줘야 되고 습도도 어느 정도 높아야 하고 이 모든 것 중에서 하나라도 갑자기 변하면 잎사귀를 하나둘씩 떨어뜨리다가 결국 가지만 앙상하게 남긴다. 찬란한 여름을 보내고 가을도 그럭저럭 잘 지내더니 어느 날 12월 어느 날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면서 1월 즈음해서는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그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상태에 들어섰다.


그 많던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음.


이 아이를 살리려고 아마존에서 LED 라이트도 사서 쏘여보고 실내용 온실도 설치해서 온도도 적정하게 유지하려 해 봤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한 줄기 희망으로 조만간 파랗게 잎사귀가 나오겠지 하고 따뜻한 볕이 드는 창가에 놓아두고 매일 아침 새 잎이 나오려나 하고 확인한다.


올해 6월, 현재 있는 아파트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려 계획 중인데, 이 많은 화초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아파트를 찾으려니 여간 골치가 아니다. 커다란 남향 창문이 있었으면 좋겠고 높은 건물이 막지 않아서 햇볕이 하루 종일 잘 들어오는 집을 찾고자 하는데 그런 집들은 대부분 월세가 비싸다. 워낙 월세가 비싼 뉴욕이다 보니 돈에 맞추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들어오는 창가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에 더불어 다른 짐은 용역을 써서 옮기더라도 화초만은 우리가 직접 옮기고자 자동차 렌트도 계획하고 있다. 소중하고 연약한 화초들이 행여 거친 손에 옮겨지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손이 많이 가는 화초 기르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작은 선인장을 키워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 주기를 깜빡하더라도 시들어 죽을 걱정은 거의 없으니까. 산지 6개월 넘도록 자라지도 않고 별로 변화도 없던 작은 선인장 하나가 꽃을 피웠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꽃 봉오리가 살짝 삐져나온 것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태어나서 선인장 꽃 처음 본 일인. 감탄을 금치 못함.


어렸을 적에 강아지도 키웠고 금붕어, 잉어, 자라도 키워봤지만 각별하게 아끼는 마음보다는 그냥 집에 있으니까 같이 사는 생명체즈음으로 여겼었다. 어른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돈, 수고, 공을 들여 무언가를 키워보니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를 돌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일인지 배운다. (이쯤에서 육아는 정말 존경스럽다.) 말도 못 하는 식물, 물만 주면 알아서 자라는데 그게 뭐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화초를 돌보며 새로운 잎사귀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삐죽 내밀면 마치 키우던 개가 강아지를 낳은 것 같이 기뻐한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낀다고 할까. 아마도 내가 화초 기르기의 매력에 빠져든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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