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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Apr 09. 2019

너 몇 살이세요?

나이를 묻지 않는 사회.

나이 값이 중요한 나라

한국만큼 나이에 연연하는 나라도 없다. 아마도 유교 사상에 입각한 문화이기 때문이리라. 찬물에도 순서가 있고 삼강오륜에 나오는 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사회적 질서와 순서가 존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윗사람을 존경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나잇값을 해야 하고 등의 나이와 관련한 예의범절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다. 성균관 시대와 같이 관례를 치르고 성인이 되어 특정 나이가 되면 해야 하는 일들을 교육하지는 않지만 특정 나이가 되면 이뤄야 하는 것들은 현대 사회에도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면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하는 일련의 숙제 같은 것들. 물론 서양 사회에서도 어른이 되어가는 일반적인 과정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유난히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와 그 과정을 연결시킨다. 그래서 나이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특정 나이 때 제때 해치우지 않으면 뒤쳐지거나 낙오자로 취급받을 테니까.


 

계례와 관례라는 전통이 있는 나라


나이에 연연하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장점도 많다.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배우며 자라기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지 않는가. 내가 힘들어도 연세 많으신 노약자를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게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는 한국인들이다.


또한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나름 성숙된 사고를 갖춘다.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어른 답다고 해야 할까? 유년기를 찬양하며 젊음이 항상 최고라고 강조하는 미국 문화(철저하게 개인적인 견해)와 달리 한국인은 어덜팅(Adulting:어른이 되는 것.)에 있어서 대부분 진지하고 정말 어른 다운 고민들을 하며 살아간다. 미국에서 수년간 지내며 나이 먹고 나잇값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한국의 30대 40대 문화와 그들의 고민을 보고 있자면 어른답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이 많은 여자의 현실


나는 한국에서 나이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한국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나이 많은 여자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였다.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5년을 살다가 귀국을 했을 때 나는 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이었다. 미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살릴 수 있을 만한 경력이 되지 못해서 사실상 다시 신입으로 시작하거나 경력을 반으로 줄여야 할 판이었다. 한마디로 매우 애매한 경력. 게다가 나는 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이었다. 서른한 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 준비를 하던 당시에 여자 나이 서른한 살이 한국에서는 어떤 위치인지 뼛속 깊이 체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자 나이 서른한 살에 한국에서 뭔가를 다시 시작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면접 시 질문에 남자 친구의 유무나 향후 결혼 계획과 같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질문은 예사였고, 만에 하나 대답이 2년 안에 결혼할 생각이다 하면 그 면접은 낙방이라 보면 된다. 당시 나는 남자 친구도 결혼 계획도 없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을 다시 상기해 봐도 어이가 없다.


그렇게 일 년 반을 여기저기 면접만 보고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포자기할 무렵 외국계 패션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이지만 당시 면접 때도 나이 문제는 또 거론되었다.

"나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동료들보다 조금 많으신데, 같이 일하는 것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봤자 다섯 살 안팎이었음)
"제 강점은 오픈 마인드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도 배울 점이 있다면... 주절주절 주절...(이하 생략)"

우여곡절 끝에 입사하여 2년 남짓 재밌게 다니고 나는 다시 뉴욕행을 택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한국이 조금만 더 나이에 유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갖게 된 이유는 미국인이 가진 나이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접하고 난 후이다. 나이에 따른 정형화된 삶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사회.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사회란 이런 장점들을 갖고 있었다.


1. 언제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사회.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케빈 스페이시는 극 중 광고 회사 간부직을 때려치우고 동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된다.  또한 영화 '인턴'에서는 나이 일흔의 로버트 드니로가 스타트업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한다. 이 모든 게 한국 사회에서는 가히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 미국에서는 가능하기도 하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만 봐도 우리 아버지 뻘인 부하 직원도 있고 우리 고모 나이쯤 되는 동료도 있다.  관료주의에서 철저하게 벗어나서 수평적인 관계를 도모하는 사내 분위기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데 한 몫한다. 이렇다 보니 일하는 동료끼리 서로 나이를 모르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이년 넘게 같이 일한 동료의 나이를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국인들끼리 나이를 묻는 것은 약간 생소하다. 껄끄럽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마흔이 넘어서도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는 사회, 나이에 구애받지 않으면 가능하다.


2.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성공해서 서른 이전에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고 하자. 이런 사람 밑에서 일하는 나이 많은 꼰대들은 '젊은 놈이 뭘 안다고.' 하며 뒤에서 욕할지도 모른다. 혹은, 나이가 많은데 신입으로 들어갔다고 치자. 과연 그 나이 많은 신입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상사 밑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브런치에 올라온 글 중에 나이가 어린 방송 작가분이 오래된 경력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연봉을 깎인 사연을 읽은 적이 있다.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돌아가는 미국 취업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나이가 다섯 살만 어리고 경력이 오 년만 늘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얼마나 많던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시장 구조다. 능력을 위주로 하는 사회에서 노력하는 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 (대부분...) 그렇기에 노력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기만 하는 자는 도태되고 만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실은 초큼 다르다. 나이 많고 직급 높다는 이유만으로 일 안 하고 월급 받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가.

 

나이가 어리면 다른 의견을 내기 힘들고 윗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수직적인 관계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모든 조직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한국 젊은 기업들의 수평적인 인사 구조는 긍정적이라 본다.


3. 개인의 페이스로 움직이는 사회

나같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찌감치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남들보다 출발이 늦을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대학 졸업하고 취업만 생각하다 보니 정작 서른 넘도록 뭘 하고 싶은지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방황도 많이 했다. 드디어 뭐가 하고 싶은지 조금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이미 서른 중반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친척 어른들은 서른 중반이면 돈 모아서 집 사고 결혼해서 애 낳고 애가 벌써 둘이고 하는 등의 아는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너는 여태껏 결혼도 안 하고 뭐하니'라고 잔소리를 해대셨다. 요즘도 가끔 귀국하면 '결혼해야지.'라는 따분한 소리를 듣긴 하지만 외국에 나와 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니 나만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어 좋다. 누가 옆에서 뭐 하라고 닦달하지 않는 철저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위주로 내 삶을 사는 것. 내가 뉴욕행을 택한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런 나의 가치관에 대해 미국인들은 긍정적이다. 'Who cares if you are in your thirties?' 최근 전공 혹은 하는 일과 절대 무관한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 내 미국인 친구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람이 살면서 일반적으로 다섯 번 이상의 다른 직업을 갖는데, 그럼 넌 여태껏 세 번 밖에 안 바꿨으니 두 번 더 남았어.' (그 와중에 세 번이나 직업을 바꿨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말이 통계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세를 사는 시대라고 하면 적어도 오십 년은 일을 하며 살아야  텐데 같은 일을 오십 년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갑해진다.  년도 대단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한국 사회가 나같이 인생의 속도가 현저히 느린 사람에 대해 관대한가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격려보다는 지적과 비판이 더 많았다고 할까. 사회적인 면만을 탓하고 싶지 않다. 나 스스로가 한국적인 것에 영향받지 않았더라면 한국에서도 내 페이스 유지하면서 남들이 뭐라 하든 잘 살았겠지만 나 자신이 견디지 못했다. 결국 나 조차도 매우 한국적인 정서를 가졌으니 그랬겠지 하고 좀 더 긍정적인 삶의 페이스를 찾으려 노력 중이다.


 



미국도 나이에 있어 백 프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잇값 못하면 욕하고 마련이고 서른, 마흔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도 존재한다. 언제까지나 Young and Wild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중년에 겪는 위기 이른바 Mid-Life Crisis는 물론 스무 살 중반에 겪는 위기를 일컫는 이른바 Quarter-life Crisis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낼모레 사십이 되는 내 친구들이 직장에서 설 곳이 없어질까를 걱정하고 아직 사십 밖에 안되었는데도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안타깝다. 이 모든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생각만 바꾼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나서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그러므로 내 맘대로 한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초초함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 여유롭게 인생을 바라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조언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삶에 있어 늦거나 이른 것은 없다고 믿는 일인으로써 조금 늦은 출발을 해도 그것이 실패라는 뜻은 아니니까.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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