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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Apr 04. 2019

내 집착의 끝은 자존감의 밑바닥과 닿아있었다.

집착을 다스리는 방법

집착 어디까지 해봤니?


나는 집착의 여왕이다. 대상은 대부분 로맨스를 시작했거나 로맨스 진행 중인 상대. 한번 꽂히면 끝까지 판다. 집착이 병적인 수준에 도달하면 그야말로 영화 미저리에 나오는 캐씨 베이츠 같이 남자를 가둬놓고 괴롭힌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간 감옥행.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상대를 옭아맨다.


이런 집착증이 발병할 때는 주로 상대방과 연락이 잘 안 되거나 내가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몇 시간이고 안 올 때이다.


남자 친구가 전화를 안 받으면 30통 이상 연속으로 받을 때까지 해본 적은 꽤 되고, 전화 안 받아서 남자 집에 찾아가서 벨 누르고 있나 없나 확인해 본 적도 있고, 인터넷에서 만난 남자 GPS 거리 추적해서 찾으려고 했던 적도 있다. (사연이 길다...) 인스타 그램을 정말 파고 파고 다 뒤집어서 나 말고 연락하는 상대 여자와 대면한 적도 있었고, 우연을 가장해 그 남자 집에 서성이며 마주치려 한 적도 몇 번 있다.

매우 드물지만 가끔 나에게 집착하는 남자도 있었다.

이 정도면  중증인데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나 하겠지만 이성적 상대 이외의 것(?)에는 집착하지 않아 평범한 사회생활은 가능하다.


그러다 서른 중반 즈음 들어서면서 스무 살 때처럼 한번 집착하면 끝을 보는 짓은 그만두게 되었다. 집착은 하면 할수록 당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서 일까. 집착하며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깨닫고 나니 차라리 그 시간과 에너지를 나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문자 먼저 보내고 5분 안에 답장 안 받으면 환장할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집착은 왜 하는 걸까?


가끔 미친 듯이 집착하는 내가 너무 싫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과거에 누가 나를 크게 배신한 것도 아니고 남자 친구가 나를 두고 딴 여자랑 바람피운 걸 목격한 적도 없고 한데, 상대방이 조금만 연락이 뜸하고 뭐하는지 모르면 머릿속에 이상한 상상이 가득 찬다. ‘나를 두고 딴 여자랑 놀고 있나? 애정이 식은 걸까?’ 남자한테 데인적이 없는데 기본적으로 남자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바람을 피거나 집에 안 들어온 것도 아니다. 우리 아버진 30년 넘게 엄마랑 한집에서 잘 살고 있다.


나는 주변 영향으로 인해 집착증을 가질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 결국 내 안의 문제였다.


수년간 걸친 자아 성찰을 통해 내가 집착하는 두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첫째,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이른바, control issues. 살다 보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바로 사람 마음인 것을. 나는 내 맘대로 할 수 없는데에서 오는 불안감을 집착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내가 먼저 좀 더 연락하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바람기를 잡으려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해.'

'내가 안 볼 때 뭔 짓을 할지 몰라.'


이 모든 생각들이 집착의 근원이 된다. 그야말로 휘어잡으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낮은 자존감이 이유였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부족해서 왠지 나보다 더 괜찮은 여자를 만나면 나를 두고 떠날 것 같았다.


'나는 쉽게 버려질 상대였고, 세상에 여자는 많다.'

'내가 그러면 그렇지.'

'그래, 나 따위가 무슨 매력이 있다고.'


평상시 자존감은 높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내면 깊숙이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처음엔 조금 놀라웠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과 정면으로 마주할수록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집착을 애착으로 만드는 방법


사실 요즘도 잠잠하다 가끔씩 미친 집착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 특히, 이성과의 관계가 막 진전되기 시작할 무렵, 즉, 아직 내 것은 아닌데 잘 되길 바랄 때 내 집착은 시작된다. 연애 법칙상으로 보면 정말 안 좋을 타이밍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쿨해야 내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데 쿨하지 못하고 집착의 냄새를 풍기며 상대가 식겁하고 도망갈 여지를 준다.


지난 수년간의 삽질(?)로 인한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통해 쌓은 내공으로 집착병을 고쳐나가고 있다. 관련 서적도 읽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지인들에게도 여러 차례 고민 상담을 해본 결과 내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이 방법들은 진부하고 들으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1. 내가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아래 사항 중 3가지 이상의 행동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집착하고 있는 중이다.

핸드폰을 3분에 한번 꼴로 체크하며 답장이 왔는지 안 왔는지를 계속 신경 쓴다.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인스타 그램, 스냅챗 등등)에 접속하여 상대방의 마지막 접속 시간이 언제인지 확인한다.

카톡 메시지 읽었나 안 읽었나를 계속 확인한다.

카톡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을 안 하면 전화를 하거나 전화를 하고 싶어 진다.

신경이 온통 상대방의 행적에 쏠려있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슬슬 집착병이 도지면서 내 집착이 최고도에 달할 때, 나는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온갖 짜증과 분노와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동반되어 찾아온다. 가끔은 왜 사서 고생이냐 싶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항상 생각한다. '왜 나는 나를 가만히 놔두지 못할까?'


하루는 위의 질문을 반복해서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럼 나를 그냥 놔두면 되잖아.'

그리고는 조용히 심호흡을 두세 번 한 다음 일체 모든 행동과 감정을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잘 되지 않았는데 반복적으로 연습하니 점점 제정신으로 복귀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집착이 도질 때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너 집착하고 있어. 집착 그만해.'

(물론 혼자 큰소리로 말하면 좀 오글거리니까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집착 중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집착을 덜 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집착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2. 자존감을 끌어올린다.


자존감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평생을 연습해도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많다. 나는 자존감이 그다지 낮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대에 따라 유난히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집착을 하게 된다.


내 자존감을 낮추는 상대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을 때 너무 괜찮고 능력 있고 잘생긴 사람이다. 내 기준에서 봤을 때 최고 훈남 능력자 그래서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향해 나는 집착한다.


전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데 그렇다고 미친 듯이 좋지도 않은 그냥 만나면 좋고 아님 말고 하는 사람. 그러다가 사귀게 되고 사귀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집착한 적이 없다. 난 내 병이 치유된 줄 알았다.


이후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과 썸을 타기 시작했는데 너무 괜찮았다. 나는 똥차 가고 벤츠 온다더니... 하면서 덩실덩실 얼굴에 웃음꽃  만발하며 그렇게 썸을 타다가 한 달 즈음 지났을 때 갑자기 돌변한 썸남의 태도에 화들짝 놀라 또 집착을 하고야 말았다.


그때 또 자존감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감히 저런 남자가 가당치도 않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비참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 따위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거냐.

그러고 나서 낮은 자존감을 박차고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니 까짓게. 나 싫으면 관둬. 나 좋다는 남자 많다.'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3. 나에게 집중하라.


집착이 쓸모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집착에 쏟는 에너지와 스트레스가 너무 큰 나머지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 에너지와 정열을 나한테 투자했으면 지금 쯤 내 인생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을 텐데...


그래서 나는 나에게 좀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그 남자를 생각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는 등으로 나를 바쁘게 움직였다. 혼자 있는 시간은 엄연히 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충실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나에게 아는 친한 언니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간에 충실해야 해. 그 남자랑 같이 있을 때는 그 남자랑 같이 있는 순간에 충실하고, 너 혼자 있을 때는 너 혼자만의 순간에 집중 해.'


그때 그 말이 얼마나 뼈를 때리며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순간을 사는 노력을 했다. 정서적 안정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집착이 모두 나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자기 계발이라던지 돈 모으기라던지에 집착하면 긍정적인 집착이 되겠다. 지금껏 살면서 집착으로 인한 삽질로 인해 재미있는 시트콤 에피소드 몇 편 찍고 안주거리로 쓸만한 스토리 몇 개 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집착이 연루된 관계는 모두 좋지 않게 끝났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집착은 하지 않는 게 내 신상에 이득인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자아 성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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