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산 채로 집어삼키는 도시, 뉴욕
영화나 미드에 나오는 뉴욕은 멋지고 낭만적이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데로 멋있고, 비가 오면 비 오는 데로 운치 있고, 단풍이 들고 꽃이 피어 낭만 지다. 화면으로만 보는 뉴욕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래서 뉴욕은 많은 이들의 선망의 도시이자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화려함에 가려진 뉴욕의 현실은 매우 불편하다. 아마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 대한 환상을 품고 여행 왔다가 (혹은 살러 왔다가) 뉴욕의 실체를 경험하고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줄행랑치듯 벗어났을 것이다. 뉴욕에서 살기 힘든 이유를 들자면 백가지도 더 넘게 말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 다섯 가지를 꼽아 보았다.
뉴욕을 다녀간 많은 이들이 입 모아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더러운 길거리이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씩 개똥인지 사람 똥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변'이 길거리 모퉁이에 놓아져 있다. 겨울에는 좀 덜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여름에는 길거리에 악취가 진동한다. 미국은 분리수거에 대한 규제가 한국보다 느슨해서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랑 같이 섞어버리고 쓰레기봉투를 보도 한편에 버젓이 쌓아 놓는다. 덕분에 길거리를 다니면 시큼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쓰레기 냄새는 뉴요커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냄새이다. 타지를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뉴욕으로 돌아오며 길거리 쓰레기 냄새가 그리웠다고 말하기도 하니까... 뉴요커들은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뉴욕을 그리워한다.
도시 곳곳의 쥐들과 날개 달린 쥐인 비둘기도 도시 공중 ‘비위생’에 열심히 기여한다. 이들은 인간과의 도시 공존이 오래돼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길거리 지나가다 비둘기 날갯짓에 머리를 처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에 우수수 떨어졌을 세균을 생각하며 괴성을 지른다.
여담으로 뉴욕시에서 뉴욕 쥐의 총숫자를 예상한 결과, 삼천삼백만 마리. 즉, 뉴욕시 인구 팔백만으로 가정했을 때 사람 한 명당 쥐 다섯 마리 꼴이라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매일 지하철이며 길거리에서 보는 쥐만 해도 열댓 마리가 넘으니 꽤나 설득력 있는 추정이다. 그것들은 이제 명예시민이나 다름없으니...
뉴욕시 지하철이 오래되었긴 하다. 백 년도 넘은 시설을 매번 거액을 들여가며 고치고 또 고치고 해서 사용하다 보니 지하철 역 곳곳 땜 자국으로 가득하다. 폭우가 왔다 하면 역 내부에 물이 세는 것은 기본이고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기도 한다. 한밤, 인적 드문 역에서 홀로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저 깜깜한 터널의 끝으로부터 괴물이 등장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시설이 낙후해서 그런지 승강장 내 환기도 엉망이다. 한여름 승강장으로 들어서면 기가 막히게 뜨거운 공기에 숨이 턱 하고 막힌다. 건식도 아닌 습식도 아닌 사우나에 들어온 것 마냥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여기에 쥐 배설물과 뭔가가 죽어 썩어가며 만들어 내는 쾌쾌한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으래야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불쾌지수 200% 정도로 온갖 인상을 쓰고 주변을 돌아보자니 왜 뉴요커들이 인상 쓰고 다니는지 이해가 간다.
시설이 낡은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평온한 아침 출근길에 때아닌 빡침을 부르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MTA 스케줄 때문이다. 잘 가다가 갑자기 노선을 변경하며 ‘이 열차 운행 노선이 바뀌었으니 내려서 다른 것 타고 가.’라고 방송하며 승객들을 내쫓는 덕에 아침 출근 시간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지하철에서 쫓겨난 시민들. MTA직원들에게 언성 높여 항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안다... 그래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뉴요커들은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체념에서 나오는 인내라고 할까? 어차피 강하게 민원을 넣어도 심하게 컴플레인을 해봐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지하철이 연착될 때마다 뉴요커들의 얼굴에는 부처님의 후광이 비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뉴욕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약 십오 년 전이다. 자유 여행이라는 명분 하에 뉴욕을 오긴 했지만 준비 없이 온 여행이라 여정의 반 이상이 그저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 가게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가는 곳곳 점원들이 너무 무례하고 뭣가지가 너무 없어서 어린 마음에 살짝 상처를 받았더랬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 하면 한국인들보다 친절하고 미소도 잘 띠고 유머도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 뉴욕 서비스 종사자들의 무표정하다 못해 오는 손님을 거슬려하는 태도는 문화 충격이었다.
그런데 사람 인생사 참 재밌다. 십 년 뒤 내가 뉴욕에서 손님 상대하는 가게 직원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서비스직 종사하는 직원의 불친절한 서비스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바쁘다는 타임 스퀘어 한복판에서 일을 해본 입장으로 항변해 보자면 어지간히 들락날락 유동인구가 엄청난 뉴욕시의 큰 매장들의 직원들이 상대하는 사람의 수는 엄청나다. 그래서 매일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가볍게 볼 일이 못 된다. 기가 빨린다고 해야 하나... 살짝 과장해서 공황장애가 올 것도 같았다. 더불어 인류에 대한 깊은 실망감도 찾아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종교, 국적, 인종 불문하고 안일하고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왜 뉴욕 상점의 점원들이 무례한가에 대한 답을 알았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점원들이 불친절하면 저 사람도 그저 삶이 힘들어서 그러겠거니 한다.
상점 점원들만 무례한 것은 아니다. 일반 사람들도 무례하기 짝이 없다. 한국에 살 때, 출퇴근 시간 강남역을 오가며 여기저기 밀치고 발을 밟고 사과도 안 하는 사람들을 보며 서울 시민 수준 떨어지네 어쩌네 혼자 울그락 불그락 했었다. 그런데 뉴욕으로 이사 온 후 매일 마주치는 무례한 시민들 때문에 한 달간 제대로 힘들었다.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줘도 땡큐는커녕 미소 한번 받을 수 없었고 지나가다 밀치는 인간들은 쏘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낯선 도시의 무례한 사람들은 가뜩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했던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에 의해 감정이 상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그만큼 무뎌졌다는 의미겠지...
혹자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 하지만 내 생각에 뉴욕 날씨는 태초부터 거지 같았던 것 같다. 일단 일 년 중에 겨울이 육 개월이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 하지만 5월의 한 복판에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니는 뉴요커들을 봤을 때 그제야 일 년에 반 이상이 겨울인 뉴욕의 날씨를 실감했다. 겨울도 보통 겨울이 아니라 더럽게 추운 겨울이다. 바깥 기온을 보고 별로 안 춥네 하며 바깥에 나갔다가 강풍에 싸대기를 맞은 나날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도 겨울이 춥다고는 하지만 내륙 지방이라 바람이 좀 덜한 서울 출신인 나에게 뉴욕의 강풍은 좀체 익숙해지기 힘든 존재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제 닥쳐올 겨울의 바람이 생각나 잠시 몸서리가 쳐졌다.)
눈도 많이 온다. 매년 겨울이 되면 뉴욕시는 한 번쯤은 찾아올 폭설에 대해 만반 대비한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폭설이 내리면 학교, 직장이 전면 휴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에서 나서서 휴교령을 내리고 기업들도 그날만큼은 재택근무를 허가하도록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정시 출근을 강요당해 왔던 한국적 사고에 의하면 이런 미국인들의 대처가 살짝 엄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어쨌든 회사를 안 가는 것은 매우 좋으다.
뉴욕도 사계절이 있다고는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이제 봄 좀 즐긴다 싶으면 곧 여름이다. 여름은 한국의 여름같이 덥고 습하다. 하지만 장마철은 없다. 다만 주기적으로 비가 쏟아진 다는 것. 특히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온 듯싶다. 비가 자주 와서 공기는 그나마 좀 깨끗한 것 같다. 유난히 피곤했던 올해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곧 가을, 겨울이 올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겨울이 제발 순하기를 바랄 뿐이다.
뉴욕 생활이 힘든 가장 결정적 이유는 앞서 나열한 열악한 환경의 뉴욕에 살기 위해 너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때문에 생활비는 이렇게 많이 드는 것이며, 도대체 왜 때문에 월세는 비싸고, 왜 때문에 밥값은 비싼 것인지...
일단 주거 비용이 기가 막히게 비싸다. 코딱지 만한 아파트에 그 코딱지 보다 더 작은 '방 한 칸'에서 셋방 살이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기본 백만 원이다. 사진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뉴욕시에서 방 한 칸짜리 아파트 월세의 중간값을 지역별로 나눴다. 최소 2,100불(한화 약 이백 오십만 원)에서 최대 4,100불(한화 사백 오십만 원)까지이다. 여기서 놀랄 만한 점은 최소가 2,100불이라는 것이겠다. 그것도 4년 전 기준으로 말이다. 월세 오백만 원짜리 집은 궁궐이겠다 싶지만 현실은 코딱지만 한 평수의 아파트일 뿐이다. 딱히 좋지도 않다. 다만 동네가 이유 없이 비쌀 뿐. 뉴욕시의 살인적인 월세를 보며 드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는 저 정도 월세를 내려면 대체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하며, 둘째는 그 정도 벌면 왜 매매를 안 하고 월세로 살까이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한 달 버는 돈에서 월세 비용이 뭉텅 빠지고 나면 이제 남는 돈으로 의, 식 비용을 해결해야 하는데, 입는 것을 아낀다고 치더라도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에 큰 지출이 생긴다.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 돈이 절약되겠지만 그럴만한 요리실력과 부지런함이 없는 관계로 점심은 주로 사 먹는다. 하루 평균 점심값에 쓰는 돈이 15불에서 많게는 30불까지 되는 것 같다. 거기에 커피, 간식까지 하면 하루 50불씩 쓸 때도 있다. 이참에 커피도 끊고 간식도 끊어 볼까 하지만 음주가무도 잘 안 하는데 그것마저 끊으면 삶이 너무 메마르니까 하는 마음에 그만 두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맘먹고 밖에서 제대로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한 끼 100불 쓰는 것은 우습다. 그렇다고 뉴욕 소문난 맛집들이 제값을 하는 것도 아니다. 철저하게 개인적 입맛에 기반한 소견으로 말하자면 뉴욕 레스토랑 씬은 과대평가된 것 같다. 차라리 다른 도시에 맛있는 곳이 더 많은 듯하다.
그 밖의 모든 문화생활이 다 돈이다. 영화관 입장료는 평균 18불 정도 하고 각종 발레 공연, 브로드 웨이 뮤지컬은 50불에서 비싸게는 1000불까지도 한다. 칵테일 한잔은 15불에서 35불이고 소주는 한 병에 12불이다. 커피값이 그나마 좀 싼 편인데 것도 커피가게 나름이다. 결론은 나가면 다 돈이고,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엄마 말은 진리다.
옛말에 서울에서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라고 했지만 서울은 이미 눈뜨고도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 되었고 뉴욕은 코는 물론이고 눈알까지 빼어갈 세상이다. 물가는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비싸긴 하니까. 고도로 발달된 복잡한 도시에 살수록 우리는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도시에게 산 채로 잡혀 먹으니까. 쉽지 않은 뉴욕 생활을 못 견디고 몇 개월 만에 과감히 청산하고 다른 도시로 이사 간 사람들도 많고 도시가 휘두르는 온갖 행패에 정신줄을 놓고 약 혹은 술에 취한 이들도 많다. 은퇴하면 저 멀리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 같은 넓고 덜 복잡한 곳으로 이사 갈 것이라고 뉴요커들은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이유는 훗 날 뉴욕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다.
이렇게 저렇게 불평을 해도 사실 이 모든 것은 내 뜻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런 고생을 사서 하라고 한 적은 없다. 온전히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들이니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뿐이다. 아마 뉴욕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까. 하루하루 사는 게 만만하지 않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해서 살고 있는 곳이니까. 싫었다면 진작에 떠났을 것이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뉴욕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마치 나를 힘드게 하는 사람인 걸 알면서도 떠날 수 없는 연인을 만나는 심정과도 같은 그 마음. 도시가 나를 더 힘들게 하면 할수록 나는 더 악착같이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니 하는 둥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나와 뉴욕의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뉴요커들은 마치 백조와 같다. 겉은 화려해 보이고 모든 이가 동경하는 도시에서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 물길질을 해야 한다는 것. 오늘도 나는 그들과 같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발길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