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 살인 물가 뉴욕시의 임금 수준
**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당부하고 싶은 말: 본문에 제시되는 뉴욕 직장인 연봉액은 온전히 개인의 주관적 관찰에 근거한 정보이기에 신뢰도가 다소 떨어진다.
1. 뉴욕 첫 직장, 쥐꼬리보다 더 짧은 내 월급
뉴욕에 온 지 사 년이 되었다. 그 사 년 동안 나는 직장을 세 번이나 바꿨다. 여러 번 직장을 거치며 다양한 형태의 연봉을 계약했다. 터무니없게 적게 받았던 뉴욕 첫 직장부터, 의외로 좋게 받은 현 직장까지... 연봉 협상은 언제나 민감하면서 매우 불편한 사안이다.
첫 직장은 당장 급한 마음에 어디라도 취직되면 좋겠다 해서 들어간 곳이었다. 한국에서 금융 업계 1위를 다투는 은행의 뉴욕 본사였다. 연봉 높기로 유명한 이 은행이 정작 미국 본사에서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준다는 사실은 계약서를 받고 나서야 알았다. 의료보험 하나는 끝내 주게 좋은 플랜을 줘서 돈 한 푼 안 내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일 년에 검진이나 제대로 할까 말까 한 나에게는 있으면 좋은 없어도 그만인 사항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퇴사하기 전에 건강검진이나 제대로 한번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은행에서 받던 연봉이 30,000이었다. 당시 뉴욕시 최저 임금이 시간당 9불이었다. 맥도널드에서 풀타임으로 일주일에 40시간씩 노동했을 때 받는 임금이 일 년에 약 20,000불이라면 30,000불이 내가 한국계 은행에서 받는 월급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맥도널드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다는 사실.
미국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했을 때, 당시에 어떻게 일 년에 삼만 불(것도 세전, 세후는 21,000불 정도이다.)로 생활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매달 카드로 생활하고 다음 달 월급은 카드값과 월세로 전부 나갔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정도가 아니라 한 달 벌어 빚을 얻으며 살아갔다. 취직 6개월 후에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주말에 알바를 했다. 레스토랑에서 호스트(고객 응대, 예약 관리) 알바를 하며 시간당 14불을 벌었다. 은행에서 버는 돈을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비슷한 셈이었다. 하지만 레스토랑은 훨씬 재밌고 스트레스도 적고 무엇보다 술과 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7일을 일했다. 하루 온전히 제대로 쉬는 날 없이 평일에는 은행에서 주말에는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7일을 일해서 그 해 세금 보고 40,000불을 했다. 세금 보고를 하며 그 금액을 봤을 때 뭔가 슬펐다. 일주일 하루도 안 쉬고 개같이 일해서 이것 벌자고 뉴욕 왔나 싶기도 하고 낼모레면 사십을 바라보는데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마음에 주눅이 들었다. 그 당시 뉴욕에서 40,000불은 associate degree, 우리나라로 치면 2년제 졸업자가 갓 취직했을 때 받는 금액 정도 되었다. 그런데 Bachelor degree와 5년 이상의 경력이 있었던 나는 일주일을 꼬박 일하며 그 돈을 벌고 있었다. 그때 뭔가 잘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이직 활동을 했다. 막상 취업 시장을 살펴보니 내 경력은 애매했다. 그래서 신입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직을 준비하던 당시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60,000 불만 벌었으면 했다.
2. 연봉 인상, 두 번째 직장
약 육 개월 간 다니던 은행을 탈출하고자 시도하였으나 딱히 좋은 소식이 없었다. 포기할 무렵, 아주 우연하고 신기한 기회에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하게 된다. 이직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는 여기에 담지 않겠지만 일단 그때 당시 이직과 동시에 연봉 인상은 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숫자 60,000불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이제 앞으로 펼쳐질 날에 대해 희망적이었다. 나도 이제 저축도 하고 생활이 풍요롭겠구나 싶었다. 오 년 뒤에는 집도 사야지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당시 순진한 나의 터무니없는 바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2018년 연말을 기점으로 뉴욕시 최저 임금이 시간당 15불로 올랐다. 이는 이제 앞서 말한 맥도널드 직원이 일 년에 30,000불을 번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이가 최소 30,000불에서 시작하는 고용 시장에서 60,000불은 이제 그다지 많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일 년 후에도 연봉이 오르지 않고 동결이었다. 그때부터 남들 얼마 받는지에 대한 현타가 온 듯했다.
한 번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뉴욕에 놀러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연봉 이야기가 나왔다. 어지간히 민감한 문제라 그다지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자기 연봉을 공개한 내 친구가 살짝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가 자기는 현재 103,000 불 정도를 버는데 그것마저 모자라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서른 초반에 연봉 103,000불(한화 1억 1천 정도?)은 큰돈인 것 만 같았다. 그 친구는 뉴욕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뉴욕보다 물가가 훠얼씬 싼 애틀랜타에 살고 있었다. 그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실 더 가관이었다.
"넌 뉴욕 사니까 그것보다 더 많이 받지?"
"응?!!"
자존심이 상했다. six figure income(여섯 자리 연봉, 한국말로 치면 억대 연봉)도 못 버는 루저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억대 연봉이고 백만장자 같은데 나만 쥐꼬리 월급을 받는 것 같았다.
뉴욕 첫 직장 월급이 너무 작아 60,000불이 엄청 큰돈 같았지만 사실 60,000은 뉴욕에서 높은 연봉이 아니다. 한국에서 연봉 육천 만원이면 대리 과장 급이지만 미국 4년제 학과를 나온 신입(Entry-Junior Level)들이 보통 괜찮은 직장 들어갈 때 받는 연봉이 60,000이다. 물론, 회사마다 분야마다 차이는 있다. 돈 많이 주는 IT나 월스트릿 금융 쪽은 보통 시작이 70,000에서 95,000 정도이다.
3. 분야별 천차만별 임금
한국도 그렇겠지만 뉴욕 또한 분야별 임금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내가 체감하는 뉴욕 노동 시장의 연봉은 대부분 지인들을 통해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분야별 연봉 수준을 살펴보면 패션, 예술과 같이 지원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 아웃렛이 제한적인 분야 같은 경우에는 무급 인턴쉽이 허다하고 신입 1년 차 연봉이 최저 임금인 경우도 꽤 많다. 아는 이가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였는데 일 년에 40,000불에 주말 근무도 포함이고 야근 수당이나 주말 수당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예술, 패션 분야 같은 경우 경력이 십 년 차를 넘어 디렉터 레벨까지 살아남는다면 억대 연봉은 기본으로 넘을 수 있다. 역시나 다른 지인 한 명은 예술 작품 경매를 하고 커미션을 받는 일을 하였는데 스무 살 중반 정도 된 그는 일 년 연봉이 300,000불 한화로 3억 정도 되었다.
본인은 나름 이름 좀 있다 하는 패션 회사에 살짝 몸 담은 경험이 있는데, 플래그 쉽 점장은 연봉이 약 100,000 정도 되고 (보너스 별도) 우리나라 말로 흔히 지역 본부장 정도라 할 수 있는 District Manager레벨은 150,000-200,000 정도급이다. 그렇다면 미국 전체를 총괄하는 지사장 연봉은? 년 백만 불은 쉽게 번다고 들었다. 거기에 주택 제공, 차량 제공, 자녀 학비 무상 지원은 덤.
우리나라 지하철 공사와 같은 개념의 정부 관련 공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대표적인 예로 MTA)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호봉에 따라 연봉이 오르는데 기본 40,000 불 정도로 시작하여 매년 일정 퍼센트로 연봉이 오른다. 공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고용 안정성에 있는 듯하다. 일단 한번 들어가면 정년 보장은 물론 퇴직 후에 연금이 보장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 한 예로는 미국 4년제를 졸업하고 대학 병원 제무팀 신입으로 들어갔던 지인은 연봉 40,000불로 시작해 10년 후 디렉터로 승진하여 연봉 150,000불을 받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연봉 인상률을 잘은 모르지만 경력 10년 차에 연봉 1억 이상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듯하다. 대기업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으로 꼽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ata Scientist)는 뉴욕에서도 핫한 직업 중에 하나인데 컴퓨터 코딩 좀 하고 빅데이터 분석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기본 150,000불을 받고 시작할 수 있다. 본인이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보는 직업 중에 하나로 한국에는 아직 그 수요가 많지 않아 보이지만 미국은 그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4. 고액 연봉자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
2018년 기준 뉴욕시의 일인당 평균 소득은 $74,834이다. 통계치의 중간값은 $50,825이다. 뉴욕 평균 임금이 약 75,000불 정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엘에이 보다도 약 $5,000 정도 높은 수치로 생활비가 다소 높은 뉴욕시의 실정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현실은 정부에서 내놓는 수치와 조금 다르다. 평균 연봉이 75,000불 정도라고는 하지만 구직 사이트를 보면 50,000불에서 60,000불 사이의 직업들이 대다수이다. 그나마 60,000불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것은 뉴욕 고용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미국에서 일하고자 들어오는 외국인들의 역할도 한몫한다. 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생활한 지 거진 십 년이 다되어가는 경험으로 말해보자면 외국에서 영주권을 목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박복하게 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취업 비자인 H1-b 신분으로 회사를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땐 그저 직장이라도 있어서 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천만다행인 시기였기 때문에 연봉이 정말 쥐꼬리 절반 만해도 그만둘 수 없었다. 퇴사와 함께 한국으로 무조건 출국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이런 외국 신분이라는 약점을 악용하여 임금을 정말 박하게 주는 회사들이 많았다. (신분이 해결된 지금은 그런 설움 없이 내 능력으로 당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 외, 박봉을 암암리에 장려하는 경우는 경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무급 인턴과 같은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직업군이다. 뉴욕에서 두 번째 직장으로 옮기고 난 후 다시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이 바로 페이 컷이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 연봉을 반으로 깎고 가야 한다는 업계 통상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서바이벌인 이 살인적인 도시에서 페이 컷이란 영혼을 팔아서까지 하고 싶은 직업이 아닌 이상 선뜻 선택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세 번의 이직을 하고 나니 물결이 세찬 시내에서 징검돌을 세 번이나 건너뛴 것 같은 심정이다. 다행히 물에 풍덩 빠지지 않고 무사히 징검돌 사이를 건넜지만 그 과정이 여간 불안했던 게 아니다. 발을 잘 못 헛디뎠다간 고대로 시냇물에 머리를 처박을 테니까. 뉴욕 직장인들의 연봉을 이야기한다면서 뜬금없이 시냇물에 코박는 삼천포로 빠지긴 했다. 잘 나가면 한없이 잘 나가고 못 나가면 한없이 못 나가는 그런 도시, 뉴욕. 물가 비싸다고 징징대면서 그렇게 4년을 버티고 나니 힘에 부칠 때도 많지만 뿌듯할 때도 많다. 이렇게 살기 힘든 도시에서 한 발씩 전진하고 있구나, 적어도 후진은 하지 않았구나 하는 심정으로 세 번째 이직 후에는 나 자신에게 등을 토닥여 주고 싶었다.
연봉이란 다소 민감한 주제이지만, 결론은 뉴욕이던 서울이던 어디든 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듯.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남의 돈 버느라 고생하는 전 세계 모든 직장인들이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