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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Jul 23. 2019

용쓰지 말자.

인생 순리에 맞기는 배짱

인생 흘러가는 데로 그냥 놔두면 어찌 될까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나는 무언가를 계획하고 앞날을 내다보며 사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운에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마냥 대범한 성격은 또 아니라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전전긍긍하며 혼자 스트레스를 자처한다. 그런데 최근에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졌다 해도 과하지 않을 우주의 특별한 선물 같은 일.


그 경이로운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한 달 전에 충동적으로 퇴사를 했다. (브런치에 충동적인 퇴사 후기를 올렸더랬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야 진작에 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당장 살기 위해 벌어야 했다. 그렇게 참고 견디기를 이년. 그렇게 쌓이고 쌓인 내 감정을 순식간에 터뜨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원치 않은 보스와의 면담. 말이야 면담이지 사실상 너 일 제대로 안 하면 자를 거야라는 으름장이었다. 그래서 그냥 관두기로 했다. 그야말로 때려치웠다. 한방에.


퇴직서를 날리고 이주의 마무리 시간을 가지며 홀가분 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당장 뭘 먹고살지 고민이었다. 돈이 조금 있다고 하지만 한 달 지나면 바닥날 수준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한 달 안에 무조건 어디든 취직해야 하는 압박감이 있었다.


당시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다가올 압박감을 생각할 여력 조차 없었다. 당장 그 지옥 같은 직장을 떠날 생각에 마냥 신나기만 했고 그 한 달 나에게 투자하며 몸과 정신을 정화하는데 쓰리라 마음먹었다. 퇴직서를 내놓은 상태에서 마지막 이주를 보내는 시간은 꿀 같았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 책임감 따위는 없었다. 어른들은 항상 뭘 하든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했지만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곳이었고 그간 쌓인 알 수 없는 원인 모를 화가 아직 있었다. 그럴 때마다 '뭐 어쩔 거야 자를 거야?'라고 되뇌었고 이 한마디는 정말 마법처럼 요동치는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뱀꼬리 같은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무렵, 하루는 커피숖에 앉아 이력서나 끄적거리며 여기저기 웹사이트 서핑을 하며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느닺없이 띠릭~하는 소리와 함께 이력서를 올려놓은 웹사이트의 메시지 알림이 초기 화면에 떴다. 열심히 구직을 하고 있었다면 열심히 하고 있었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이력서만 주야장천 보냈기에 어느 회사에 무슨 포지션에 지원했는지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던 나였다. 그냥 당장 취직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받은 메시지도 그저 지나가다 누가 한번 찔러보는 거거나 아니면 광고 메시지겠지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메시지를 열었다.


"한국어 가능한 은행 간부 비서 구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거나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으면 알려주세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한 스테핑 회사의 헤드헌터였고 한 번도 만난 적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여자였다. 비서직이라... 예전에 대학 졸업하고 한 일 년 정도 다니던 회사 사장님 비서 업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력이 쓸모가 있으려나 싶어 답장을 보냈다.


"비서 근무 경력 약 일 년 정도 있고,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포지션 관심 있으니 연락 주세요."


전송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오는 답장.

"이메일 보내주세요."


그래서 나는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던 쾌쾌 묵은 이력서를 찾아 이메일을 보냈다.


어차피 이제 일 그만두면 당장 알바라도 해야 할 지경인데 뭐 한 달에 백만 원이라도 번다면 좋겠다 싶었다. 이력서를 보내고 3분쯤 지났을 까 답장이 왔다.


"전화 주세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간단명료한 것이 사람 구하려고 하는 게 맞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야 뭐 어차피 안돼도 그만인 마당에 뭐라고 하는지 이야기나 들어보자 싶어 전화를 걸었다. (모든 대화 내용은 한글화 하였다.)


나: "ㅇㅇ입니다."

헤드헌터: "ㅇㅇ씨. 지금 그쪽에서 사람을 급하게 구한다고 해서 일이 이렇게 급하게 진행되는 점 양해 부탁해요. 일단 보내주신 이력서 잘 받았고 아마 그쪽에서 인터뷰를 보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연봉은 얼마 정도 생각하세요?"

나: "기본 $X에서 $Y 정도?"

헤드헌터: "여긴 그거보다 훨씬 많이 줘요. 지금 그쪽에서 부르는 숫자가 두배 정도 되려나. 아직 섣불리 말하면 안 되지만 지금 사람 찾고 있는 곳이 뱅크 오브 ㅇㅇㅇㅇ에요."

나: "??????!!!!!"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푼돈이나 벌어보자 했던 심정으로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의 마음이 이제는 무조건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로 바뀌었다.


인생을 살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될 일은 되더라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예를 들어 여행으로 놀러 갔던 곳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 '이런 도시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했었는데 몇 년 뒤에 보니 이사 와서 살고 있고, 6개월이라는 백수 기간 동안 백만 군데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도 없더니 어느 날 아침 문득 헤드 헌터에게서 온 제안으로 일주일 만에 직업이 생긴다던지 하는 등의 일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기적 같은 기회의 근무지는 공교롭게도 전 직장 옆 건물이었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에 위치했던 전 직장은 그야말로 전 세계 별의별 인간을 상대해야 했던 전쟁터였다. 일하는 날이면 매번 오늘은 또 어떤 정신 나간 인간들이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할까 하며 거무튀튀하게 옷을 입고 (당시 드레스 코드가 올블랙이었음)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할 때마다 지나던 그 옆 건물.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그야말로 비즈니스맨, 커리어우먼의 모습으로 출근하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던 사람들. 부러워했었다. 답답한 큐비클 라이프가 싫다며 다니던 회사 박차고 나와서 선택한 게 패션 리테일이었는데 이 세계가 그렇게 막장일 줄 알았더라면... 하며 후회를 하던 나였다.

대충 지리적으로 이러함

당시 그런 심정이었던 나에게 그렇게 열망하던 옆 건물 라이프가 내 무릎 위로 떨어졌으니 놀라지 않을 소냐. 정말 놀랐다. 눈감고 볼링공 굴렸더니 스트라이크 맞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기뻤다.


여차저차 헤드헌터와의 많은 이메일과 전화와 스케줄 조정과 총 다섯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일주일 만에 나에게 떨어진 기회를 잡았다. 마지막 사직서를 던질 때만 해도 앞으로 펼쳐질 백수 라이프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는데 이제 그 압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더 좋은 조건으로 당당하게 보란 듯이 '안녕히 계세요 저는 이만 그만 물러갑니다'를 외치며 승천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급작스럽게 일어난 만큼 정신을 바짝 차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극도의 초조함을 느꼈다. 그때마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 한마디는 '될 일은 된다.'였다. 당겨야 열리는 문을 있는 힘껏 민다고 해서 문이 열리진 않는다. 살다 보면 정말 이를 악 물고 노력해도 안될 때가 있는가 하면 포기하고 비로소 내려놓았을 때 모든 일이 거짓말 같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한다. 딱히 종교가 있거나 뭔가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무언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게 모두 우주의 힘이 아닐는지...


지금 뭔가 잘 안돼서 이리저리 스트레스받으며 우울해하고 있다면 그냥 잠시 내려놓아보길... 진부하긴 하지만 순간을 즐기며 소소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반듯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정말 좋은 일이 곧 일어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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