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꿨던 성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펼쳐져 있었다. 20년 전에 마음껏 꿈꿔보길 잘했네! 그 덕분에 진짜 이곳에 오게 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도 그 당시에 이게 현실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린 나에게 유럽은 멀고 어렵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막연하기만 한 그런 미지의 곳이었다. 그래서이곳에 오길 꿈꿨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실현 가능성'을 고려했다면 나는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마음껏 꿈꿔본 덕분에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꿈도 무시당하거나 부정당하거나 평가받지 않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꿈을 꾸는 당시에는 현실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고 '네게 가당치나 않은' 비웃음이 될 수도 내용일지언정, 결국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것을 꿈꿔야 한다.이 명제는 당연하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꾸는 것'부터 두려워하고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힘이 드는 일도 아니다. 그저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손해 볼 일도 전혀 없다. 남들에게 밝히기 어려우면 속으로 생각하고 일기장에 기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루고 싶은 것, 목표하는 것, 바라는 점을 마음껏 상상하고 소망해 보자. 그중에 하나가 정말 짠~ 하고 이뤄질지는 일단 먼저 꿈꿔 본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결과니까 말이다.
이곳으로 나를 이끈 건 잠재의식에서 꿈의 원리가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갈 수 있을지 그만한 큰돈을 벌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곳으로 이끈 건 어릴 때 '이곳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이 확실했다.지금, 이 순간, 20대에 이루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한, 언젠가 은퇴 후라도 나는 반드시 이 앞에 서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동화 속 마법 같은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성 앞에 서서 꿈만 같은 현실을 마음껏 즐겼다. 성은 설경 속 배경과 어우러져 더욱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었다. 성 뒤로 마리엔다리(Marienbrucke)에 오르자 참고서에 봤던 바로 그 컷이 보였다.
"우와! 진짜 신기해! 참고서 사진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이잖아!"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성을 마음속에 담았다.
가이드투어로 성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정작 성의 주인은 6개월 밖에 살지 못했고, 그 후로 100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성이라고 했다. 따뜻한 동화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슬픈 이야기였지만 전 세계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성을 둘러보며 감탄하고 돌아갔다.해가 지기 전 뮌헨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도 다시 이동했다.
성이 높은 곳에 위치해서 돌아갈 때는 버스정류장까지 한참 동안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했다. 반대로 그 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잘 포장된 길 위로 세계 각양각색의 관광객들이 힘차게 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고 걷기가 어려워 휠체어를 타고 오는 노인도 있었다. 아이를 태운채 유모차를 밀고 올라오는 아빠도 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부터 태어난 지 70년 넘은 어르신들까지 모두 같은 길 위에 있었다.
나는 혼자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걷기도 숨이 차 힘들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들과 그 휠체어를 밀고 기나 긴 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만일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유럽여행'도 저들처럼 휠체어를 탄 시점에 가능했을까? 회사에 있는 동안 짧은 여름휴가만 가능했기에 장거리 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만일 회사원이라는 이유로 30년 동안 좋아하는 여행을 못 다닌다면, 모든 것을 은퇴 후로 미뤄야 한다면, 그래서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만족지연능력'을 평생에 걸쳐 써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 시점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불만족한 상태로 30년을 견디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나는 만족지연을 은퇴 후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평생에 걸쳐해야 하는 일에서 만족과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 한 번쯤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그 일을 쟁취하기 위해 후회 없이 정진하고 싶었다. 만일 끝내 그런 직업을 찾거나 얻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다.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된다.
망설이다가 끝내 하지 못했던 선택과 가지 못한 길을 후회하며 새장 안에 갇힌 새로 살기보다는, 새장 밖으로 탈출해 하늘을 한 번이라도 날아보는 게 나에게는 맞았다. 안전하지만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새장을 나와 하늘을 향해 날 때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리스크를 감당한 자만이 하늘을 나는 영광과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기회는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한다. 나는 그 리스크와 불안감을 극복하고안갯속을 기꺼이 걸어갈 것이다.비록 외롭고 힘든 길일지언정 언젠가 따뜻한 햇살을 맞이할 것을 믿으며 말이다.
설경으로 뒤덮인 퓌센은 아름답고도 쓸쓸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선 아늑함과 동시에 고독함을 느꼈다. 아마 지금의 내 삶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정적인 모습에서 평안함보단 추위와 외로움을 더 느꼈으리라. 하얀 눈으로 덮인 마을은 '번잡함'과 정반대의 표현이 딱 어울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공간에서 떠도는 나그네처럼 하룻밤 묵으며 벽난로 앞에서 쓸쓸한 고독을 온전히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