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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Sep 23. 2021

나는 어떻게 세계 25개국 여행자가 되었나

낮은 학점으로 호주 교환학생이 되기까지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를 세계 25개국 여행자로 만든 출발이 된 이야기. 나는 어쩌다 세계 25개국을 여행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나의 첫 해외여행은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LCC 저가항공도 많고 외여행의 문턱이 아주 많이 낮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제주여행 가듯이 동남아 여행도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도처에 국제선을 운영한다. 하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그 시기, 그때의 '해외여행'은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다. 이따금 도전 넘치는 대학생들의 유럽 여행기가 들려오곤 했지만 내겐 꿈같은 이야기였다. 게다가 엄격한 부모님께서는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인 해외여행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다. 한마디로 '국경 밖은 위험해~'를 주입받으며 그 흔하고 가깝다는 일본도 가보지 못한 채 대학교 3학년을 맞이한 어느 날이었다.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대학 본부를 찾았다. 나는 간단한 질문과 사소한 업무로 방문했는데, 내 앞에 먼저 온 여학생의 업무처리가 길어지는 바람에 뒤에서 계속 기다렸다. 지루한 기다림 속에 그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어떤 처리가 누락되었나 보다. 직원과 오류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교... 교환학생?' 내가 그녀를 다시 쳐다보게 만든 단어였다. 그녀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예쁘지도 않았고, 옷도 못 입었으며 얼굴 또한 범생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누구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꽤나 인기 있는 대학생이었다. 외모와 패션에 지대한 관심으로 늘 예쁘게 꾸미고 다녔으며, 성격도 밝았고, 적당한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리드할 줄 알았으며, 춤도 잘 췄고, 놀기도 잘했다.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내가 나보다 못나 보였던 그녀에게 '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비록 내 인기가 더 많을 수 있지만, 졸업하면 그녀의 인생이 훨씬 멋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가 들고 있는 '이력서' 종이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스캔했다. 미국 교환학생을 비롯해서 영문으로 씌여진 알 수 없는 여러 외국 경험들, 넘사벽 같은 이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학교에 미국까지도 보내주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동안 난 뭘 한 거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학점관리도 하지 않고 노는 것에 열중했다. 고등학교 시절, 오직 대학교를 가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 아래 방학이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며, 하루 종일 교실에 갇혀 있는 시간을 견딘 3년, 나 자신에게 스스로 보상을 해 주기 위해 마음껏 놀. 았. 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다. 동아리 활동, 술자리, 미팅 등에 빠짐없이 다녔으며 1년은 춤 동아리에 가입해서 혹독한 춤 연습을 하며 공연만 하고 다녔다. 월드컵 기간에는 응원단에 들어가 거리응원전을 준비하고, 운 좋게 사회도 보기도 했다. 호기심이 드는 것들은 다 두들기며 학교 밖에서 놀기 바빴다. 학과에서 상위권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입학과 동시에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자연스럽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간다는 '교환학생'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같은 대학교에서 같은 등록금을 내고 같은 4년을 보내는데, 그녀는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멀게 느껴졌던 '먼 나라 이웃나라' 해외 경험을 탄탄하게 쌓으며 견문을 넓히고 있었다. 반면, 나는? 내 마음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었지만 나를 든든하게 해 줄 소위 말하는 스펙이 딱히 없었다. 그 길로 종이를 펼쳐놓고 나의 이력서를 써보았다. 그런데... 몇 줄 못 가서 끝나고 말았다. 쓸 말이 없었다.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졸업 후(바꿔 말하면 취업)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그때부터 나의 프레임을 바꿨다.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것은 마음껏 도전하되, '이력서'에 쓸만한 경험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한 차원 높은 도전을 해보고 싶어졌다. 예를 들면, '나도 교환학생을 가는 것' 등이다. 그동안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쳐다보지 않았던 '꿈'을 꾸게 되었다.


호주 교환학생에 도전하기


ⓒCity of Melbourne


대학생활을 중 처음으로 원대한 목표가 생겼다. 학점도 낮고 이룬 것도 없는 내가 교환학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해봤던 '동아리 회장으로 선발되기'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었다. 보통 이상의 전략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내 마음자세였다. 훗날 나를 세계 25개국 여행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A에서 B로 바꾼 내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했다.


"A 에이... 내가 과연 교환학생에 선발될까? 말도 안 돼"
"B 비록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일단 도전해보자. 결과는 부딪혀 봐야 알 수 있지!!"


나처럼 학점이 낮은 경우는 한 번도 선발된 사례가 없다고 했다. 모두 학점 4점 이상인 우등생만 선발되었다고 한다. 3학년 내내 All A+ 최고점을 맞아도 내 학점은 4점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애초에 우등생이 되어 도전하는 길은 배제했다. 현재의 내 상황에서 뽑힐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불가능해 보였지만 나는 1%의 가능성으로 도전을 선택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기로 다짐했다.

도전할 기회



그리고 이 결심은 내 향후 10년을 세계 여행자로 바꿔놓았다.

나는 어떻게 교환학생에 선발될 수 있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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