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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Feb 23. 2022

엄마, 이 블록으로 탑을 쌓아봐~ 그럼 무너질 거야^^

장난감 회사 직원들은 아마 날 싫어할 것이다. 1년 동안 구매하는 장난감 개수가 손에 꼽기 때문이다. 화려한 사운드와 시선을 사로잡는 장난감들은 보통 1주일, 길면 1달 정도 흥미를 보이다가 관심이 뚝 떨어진다. 미니멀 육아하는 나로서 잘된 일이다. 매번 새로운 장난감으로 채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리는 그림책과 블록 장난감이 채웠다. 아이가 3년간 가장 많이 가지고 논 장난감은 다음과 같다.


- 나무블록

- 종이 블록

- 플라스틱 블록

- 자석 블록

- 주방놀이


매일 가지고 놀아도 질리지 않아 하는 효자 아이템이다. 엄마가 매일 부엌에 붙어 사니 아이 역시 엄마처럼 주방놀이 장난감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이제는 마트에서 장을 봐오면 식재료 일부는 아이 몫으로 조금 넘겨줘야 한다. 장난감 값이라 생각하고 채소를 소량 건네주면, 아니 아이가 제 발로 장바구니를 뒤져 채소를 뜯어 부엌으로 가져가면,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혼자 재밌게 고 완성된 요리를 내게 건네주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요리가 나올까?
컵케이크 먹는 동물친구들


블록 장난감 역시 변신이 다채로워 지루할 틈이 없다. 30개월이 넘은 최근 들어 다시 종이 블록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는데 밋밋하기 짝이 없는 네모난 블록을 가지고 참 재밌게도 논다. 블록으로 넓은 집을 만들어 동물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높이 탑을 쌓기도 한다. 이젠 혼자서 본인 키보다 훨씬 높은 탑도 뚝딱 잘 쌓는다.


어느 날 아이가 블록놀이를 하자고 내게 블록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 이 블록으로 탑을 쌓아봐
.
.
.
그럼 무너질 거야^^



아주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무너질 테니 탑을 쌓으라고?? 이 아이러니한 대사에 순간 멍~ 해졌다. '무너질 탑을 왜 쌓아!!' 이런 생각도 순식간에 스쳐갔다. 그런데 아이는 마치 당연한 명제인 듯 얘기한다.


탑을 쌓아봐
그 탑은 무너질 거야^^


그렇다. 아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탑을 쌓을 때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걸 겪었다. 무너졌다고 울고 떼를 쓰다가 기분을 가다듬고 다시 쌓곤 했지만 또 무너지기 일쑤였다. 아이 탑을 쌓으면 무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걸까? 수많은 무너짐 뒤에공이 오는 걸 깨달은 걸까? 아이는 엄마에게 중요한 사실 알려준다. 탑을 쌓아도 곧 무너질 거란 사실이다. 그러니 천천히 쌓는 게 좋겠지만 무너질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이다.


엄마는 몰랐다. 탑을 쌓으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으려고만 한다.

엄마는 무너질 탑은 애초부터 쌓기 싫다.

엄마는 탑이 하늘 높이 쌓일 때까지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무너졌을 때는 공 들인 게 아까워 탄식한다.

엄마는 언제나 탑을 성공적으로 쌓기만을 바란다.




나는 왜 탑을 쌓으면 당연히 무너진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치열한 경쟁사회 속을 30년 넘게 보내면서 ‘무너지지 않게 탑 쌓기’만을 목표로 달렸던 것일까? 무너질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두려운 것일까? 실패 없는 성공만을 바라는 것일까? 공들여 탑을 잘 쌓아야지만 사회에서 인정해 줬던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걸까.


최근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창피한 경험이야말로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인간이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뭔가 시도를 할 때마다 창피를 당하는 숫자는 늘어나죠. 저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창피하다고 느낄 때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 그만큼 나아질 수 있습니다. 창피한 경험을 통해 배우다 보면 결국 자기완성을 위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됩니다.
- 부자의 운 中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말이 있다.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 탑은 원래 무너지는 것이다. 무너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탑을 쌓아 가다 보면 결국에는 멋진 조각품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무너져도 계속 쌓아 올리자. 낙담하거나 주저하거나 멈춰있지 말자. 내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블록을 들어 또 쌓아 올려보자. 언젠가는 나만의 멋진 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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