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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Apr 04. 2022

잘못은 화분을 깬 아이가 아니라 엄마에게 있었다

우리 집에 코로나가 강타했다. 나는 이 단어 석자가 내 인생에서 영원히 격리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글로는 한 번도 적은 적이 없었고 보고서에도 COVID19로 표현하곤 했다. 이렇게라도 이 단어와 거리두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누구보다 철저히 방역한다고 착각했던 내 가족도 코로나 역풍을 맞았다. 2달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회사에서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고 혼자 밥 먹고, 맞벌이임에도 어린이집을 안 보내며 버텼고, 외식은 커녕 문턱 구경도 한 적이 없으며 친구들 얼굴은 잊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을 통해 옮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심했다.


나로부터 발현된 증상에서 제발 멈추기를 희망했으나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을 땐 불안, 초조, 걱정, 두려움, 원망, 미움, 분노, 짜증, 허탈, 답답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것들을 느낄 새도 없이 아이를 간호하며 한 가지 생각만을 간절하게 했다.


- 제발 빨리 낫게 해 주세요. 아이만 안 아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간사한 인간인 나란 사람은 아이가 조금 괜찮아지자마자 위에 언급한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며 깊은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겪었다. 지난 1년 이상 노력했던 나의 모든 수고로움이 허사로 돌아간 것 같아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후회로 얼룩졌다.


- 그날 만나지 말 걸

- 전 날 새벽까지 공부해서 피곤했는데 욕먹더라도 약속 깨고 다음에 볼 걸

- 뭔가 찜찜했는데 내 촉을 조금 존중할 걸

- 헛기침할 때 설마 하지 말고 더 철저히 격리할 걸

- 한 번 더 의심해 볼걸. 질문해 볼 걸

- 그날 만나지 말 걸


'걸'세상의 무한 반복 뫼비우스 띠에 갇혀 후회했고 죄 없는 아이가 나 때문에 걸린 것 같아 미안했고, 방심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나중에 걸린 걸 알고도 말해주지 않은 가족에게 따지고도 싶었다.


처음 4일간은 먹지도 못하는 아이와 경미한 증상이지만 격리시켜 보겠다고 방에 가둔 남편을 위해 밥을 차려가며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임했다. 내 건강 따위를 돌아볼 새도 없이 가족을 지켜내려 했다. 엄마에게 아픔이란 사치와도 같았다. 하지만 터져버린 감정은 이내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나는 마음의 병으로 몸져누웠다. 아이가 나를 돌봐야 할 지경이 될 만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마음이 병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 줄 실로 오랜만에 깨달았다. 식음을 전폐하고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멍한 상태로 잠시 앉아 밀린 집안일을 해 보겠다고 빨래를 개고 있는데 옆에서 놀던 아이가 화분을 깨트렸다. 와장창 쏟아진 흙더미를 보며 화가 치밀었지만 간단한 주의만 주고 조용히 화분을 치웠다. 화를 참아낸 나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흙을 봉투에 담고 있었는데 이번엔 아이가 와서 웃으며 그 봉투를 들어 올려 다시 한번 흙을 바닥으로 쏟아버렸다. 그 순간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 저리 안가?!!!! 화분을 깨트리고 장난치면 어떡해!!!!!! 지금 뭐하는 짓이야!!!!!!



천장이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만큼 악을 쓰는 내 모습에 나조차 흠칫 놀랄 지경이었다.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해 무기력했던 울분 덩어리를 아이 앞에서 토해내며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깨져버린 화분이 꼭 지금의 나, 내 상황 같았다. 내가 지켜내려 했던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엉망진창이 되어 조각나버린 것이다. 내가 그토록 지켜내려고 했던 아이는 지금 내 앞에서 빠른 회복을 거쳐 밝게 웃고 있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반성을 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아이가 같이 돕겠다며 깨진 화분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급한 마음과 성난 마음이 뒤섞여 이번에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 여기 위험해!!!! 오지 말고 저리 가라니까?? 너 왜 말을 안 들어!!!!!!!!



전혀 어른답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내 모습과 메아리친 고성만이 허공을 나뒹굴고 있었다. 훌훌 털고 씩씩하게 이겨낸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는 못할망정, 손을 잡고 따뜻한 말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악이나 쓰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어른인 척, 인내심 있는 척, 고상한 척했던 걸까. 내 민낯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는 내 고함을 감내해야 할 만큼 대역죄를 진 것도 아니었다. 고작 작은 화분 하나 깨졌을 뿐이었고 난 치워서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화가 났던 것일까. 이 분노는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일까. 내 마음 하나 어찌할 줄 모르는 나약한 나란 인간을 마주했다. 지나가는 어른이 들었어도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렸을 지경인데, 아이는 엄마의 고함에도 울거나 도망가지 않고 내 곁에서 맴돌았다.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덩치 큰 나약한 어른이었고 내 아이는 강했다.


사회생활 초년, 팀장에게 사소한 꾸중만 들어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던 나였다. 별것도 아닌 일로 대놓고 고함을 지르던 어느 과장에게 삿대질을 당한 날은 기분이 풀리지 않아 저녁 내내 청계천을 걸으며 동기의 따스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른인 나도 고함 한 번에 며칠씩 힘들어하는데 작고 어린 내 아이에게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소리를 지르다니. 내 죄가 명백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 엄마가 소리 질러서 너무너무 미안해. 엄마 용서해줘. 많이 놀랐지? 무서웠지? 정말 미안해


후회의 '걸' 목록이 추가되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별일 아니란 듯이 웃어 보였다. 어쩌면 용서란 단어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아 보였다. 아니, 괜찮기를 바랐다. 나는 아이를 졸졸 쫓아다니며 사과했고 용서해 달라고 말을 해댔다. 장난치듯 도망치던 아이는 어느 순간 뒤를 획 돌더니 내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또박또박 얘기한다.


- 엄마~ 내가 용서해줄게


휴우, 다행이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용서'란 말에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씻어보려 애쓴다. 반성으로 나를 다잡으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고사리 같은 아이의 토닥이는 손짓 하나에 다 큰 어른인 내 마음이 말랑해진다. 어쩌면 시어머니 말씀이 맞을지도 모른다.


- 엔도르핀 자식만 쳐다보면 우울할 일도 없겠구먼, 우울하다고 그러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틀린 것 하나 없이 맞는 말이었다. 우울할 틈도 없이 아이는 시종일관 내게 웃음을 건네주고 있었다. 내 마음은 아직 겨울이지만, 밖은 어느새 노란빛, 핑크빛으로 봄을 알리고 있다. 봄을 알아차리는 건 어디까지나 내게 남은 몫이고, 봄의 기운을 즐길지 여부도 내 손에 달렸다. 엔도르핀과 함께라면 어느 계절이든 내 마음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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