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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Apr 14. 2022

워킹맘이 아이에게 들었을 때 가장 기분 좋은 말

나는 워킹맘이다. 누구도 나의 노고를 인정해주거나 위로해주거나 공감해주거나 나의 일상에 매일매일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지 않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워킹맘이다.


10년 전, 쌍둥이를 포함해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 선배에게 퇴근 후 저녁시간에 전화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받은 적이 없었다. 부재중이었지만 콜백도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 통화가 된 적이 있었는데 무언가 쫓기는 듯한 말투로 아주 짧게 통화를 하고 끝냈다.

나 집에선 전화받을 시간이 없어


나는 이 말이 3대 미스터리였다. 내겐 너무 의아한 일이고 의문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다. 어떻게 집에 있는데 단 몇 분을 통화할 시간이 없을까? 전화를 왜 못 받는 걸까? 벨이 울리면 '통화'버튼을 누르고 받으면 그만인데? 전화를 받는 행위는 고난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전화를 어떻게 하면 못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내 상식선에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본부 업무 특성상 공식 출근시간보다 모두 1시간 일찍 출근할 때, 워킹맘인 그녀는 30분 일찍, 즉 남들보다 30분 늦게 출근했다. 이를 지나가던 과장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눈치를 준 기억도 또렷하다.


그때 20대인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도 워킹맘의 삶이 녹록지 않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최소한 긍정적이 않은 타이틀이었으며, 집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찰나의 내 전화도 못 받을 만큼 유가 없어 보이는 그 삶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모르긴 해도 고단해 보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엄청 힘든 직업이 '워킹+맘' 같았다.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겪어낼 자신도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인식했다.




저녁 7시,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다급하게 전화를 받는


- 응, 용건만 간단히 얘기해

- (동생) 언니, 통화 안돼?

- 나 요리해서 저녁 차려야 해.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야. 어서 얘기해. 뭔데?

- 그럼 언니 시간 될 때 전화할게. 언제 할까?

- 언제?? 음.. 나도 모르겠어. 계속 바빠. 지금 1분 통화 가능해

- 언니는 맨날 그놈의 1분 타령이야. 집에서 왜 전화받을 시간이 없어???


동생은 10년 전 나와 똑같은 의문을 품었다. 집에 있으면서 어떻게 잠깐 통화할 시간도 없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계속 바쁜 것도 사실이고, 계속할 일이 있고, 계속 육아하며 살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통화 가능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종종 육아를 뒷전으로 하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못다 한 설거지를 다음날 새벽으로 미뤄야 하거나, 걸레질을 하며 통화를 하거나, 아이 양육(밥 먹고 간식 먹고 집 치우고 양치시키고 씻기고 잘 준비 등등)이 미뤄지며 내 잠도 늦어지는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니 10분 통화의 가치는 내게 1시간 통화와 다름없었다. 이제야 지난날의 선배가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이유를 온몸으로 이해했다.


바쁘고 고단한 워킹맘의 하루는 늘 분주하다. 산더미 같은 할 일들을 해치우고 나면 그제야 불을 끄고 잘 준비를 하는데 이 때도 내겐 육아의 연장선이다. 아이를 위한 책 읽기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씩 가지기 때문이다. 보통 소등한 뒤 1시간 후에 잠드는데 요즘은 10시 소등, 11시 취침 패턴이다. 당겨보려 해도 시차 출퇴근을 통해 아이를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10시 출근하는 남편이 8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앞당기기가 매우 어렵다.


아이와 함께하는 책 육아 하루 일과가 밤 10시에 시작하니, 나로서는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과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늘 공존한다. 아이 양육과 피곤함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엄마 심정을 알았는지 아이는 한 번씩 내게 묻는다.


- 이제 이것만 읽고 잘~~~~ 까?

-(활짝 웃으며) 그래그래 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저 질문을 계속 책을 가져오며 10번을 반복한다. 어떤 날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지 못하게 첫 페이지로 되돌아간다.


- 엄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하루는 11시를 앞두고 '100층짜리 집' 책을 내밀며 읽어달라고 했을 땐 나도 모르게 '뜨아~~'를 외쳤다. 100층 건물에 사는 동물들을 하나씩 모두 소개해야 책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100번을 소개해야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나마 아이가 혼자 소리 내며 책을 읽는 동안은 쉬는 시간이 생긴다. 그동안의 책 육아 노력의 결실로 내게 쉬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 회색 구름이 둥실 몰려왔어요 후드득 빗줄기가 쏟아졌지요 푸른 유치원 친구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이의 책 읽는 속도가 빨랐고, 문장 사이에 '마침표'가 없었다. 마침표를 두고 한 텀 쉬는 구간 없이 아이는 래퍼 같은 느낌으로 문장들을 빠른 템포로 읽어 나갔다. 뭔가 이상한데 뭐지?? 저 모습은 바로 내가 아이에게 최근 책을 읽어준 템포였다. 피곤한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책을 1.2배속으로 읽고 있었던 것이다. 책장 넘기는 손동작이 빨라지고, 책을 읽는 호흡이 빨라지고, 1권이라도 빨리 읽어준 뒤 임무를 마치고 잠들고 싶은 마음 속도로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아이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 나는 아이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만큼은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만개한다.



- 엄마, 나 졸려. 잘래!!



가장 다정한 천사표 엄마가 되는 순간이다.



* 오늘도 일터로 향한 엄마 아빠에게 투정 부리지도 않고 씩씩하게 너의 일과를 보내고, 할머니와도 잘 놀고 건강한 하루를 보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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