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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Jul 02. 2022

어른보다 아이가 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육아를 하며 신기한 경험을 한다. 집에서 아이를 육아하며 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릴 때의 모습들이 하나의 장면처럼 불쑥불쑥 떠오른다. 무려 20년 넘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나의 어릴 때 모습들, 평범한 어느 날 중의 하루, 집안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0년 만에 떠오른다고 해도 될 정도로 수면 아래에서 잊고 있던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조르는 모습에서, 내가 아이스크림 달라고 조르는 수십 년 전의 어느 날이 오버랩되는 셈이다.


그러면서 깨닫는 게 있다. 그저 아이였던 나의 평범한 하루 중의 하나에 불과한 그런 사소한 일들이 잔잔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날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 지금과 같은 어른이 되어 우연히 다시 떠올리게 되니 '그런 게 바로 행복이었나?' 싶다. 당시에는 '내가 행복하다'는 개념조차 모르게 지나간 일들인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아이는 매일의 일상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한다. 사탕 하나에 크게 기뻐하는 식이다. 우리는 커갈수록 작은 것에 더 이상 기뻐하기 힘들다. 자신도 모르게 물욕이 늘어가고,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높은 위치, 더 좋은 직장, 더 큰 것들을 가져야지만 만족한다. 그런데 아이는 다르다. 기쁨을 느끼는 요소들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작은 일부터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아주 빈번하게 기쁨과 행복이 찾아온다.


배부르게 양껏 블루베리를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한다. 2,000원짜리 스티커나 조그만 가방을 사줄 때도 뛸 듯이 기뻐한다. 동요를 들으며 노래를 부를 때는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집 앞 산책만 가도 '룰루랄라' 신이 난다. 새우 반찬 하나에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한다. 이런 기쁨들이 하루 24시간을 차지한다. 그러니 만족과 기쁨이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온다.


그러나 성인의 하루는 다르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찾아온다면 다행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감사할 일이다. 어쩌면 주말 쉬는 시간에만 겨우 찰나의 기쁨과 안도를 느낄지도 모른다. 부릉부릉 버스가 온다고 '우와~ 버스가 온다' 소리치며 웃는 아이와 다르게 버스를 보는 것은 어른에겐 전혀 기쁠 일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조금이라도 일찍 타서 자리가 있길 바라는 생각이나 들뿐이다.

 

어릴 때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주로 나도 내 아이처럼 아주 작은 것에 팔짝 뛰며 기뻐한 순간들이다. 나 역시 먹을 것 하나에 크게 기뻐하고 행복감을 느꼈다. 다만, 내가 그랬단 사실을 잊고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가족과 옹기종기 앉아 과일을 먹는 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더없이 큰 행복의 시간들로 다가온다. 어렸던 나를 기쁘게 한 에피소드들은 다음과 같다.



1. '엑설런트'라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작은 네모 조각의 아이스크림이 10개 내외로 들어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중 하나였다. 낱개의 아이스크림 조각을 냉동실 문에 넣어두고 하나씩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을 때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허락까지 했을 때, 나와 동생은 쪼르르 달려가 냉동실 문을 바라본다. 냉동실에 엑설런트 조각이 남아있을지 없을지 긴장된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누구도 남은 아이스크림 개수를 모른다. 그저 엑설런트가 여전히 한두 개가 남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렇게 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엑설런트가 아직 있네?' 하며 아이스크림을 주었을 때 우리는 환호성을 지른다. 야호!!!


2. 김밥을 좋아하는 딸과 맛있는 김밥을 먹을 때면 엄마표 '김치김밥'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 김밥 요리는 잘 못해서 딸에게 사주고 있지만 엄마표 김밥은 언제나 맛있다. 그중에 아주 가끔 먹었던 '김치김밥'이 생각났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가    뭔가 미안한 마음으로 김밥을 내줬던 것 같다. 엄마도 밥을 하기 싫은 날이 있을 텐데 김치김밥이 나오는 날이 바로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맛없을 거라 생각하고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이게 웬걸? 그냥 밥에 김치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엄마표 김치김밥은 썰지 않는다. 그냥 기다란 김밥을 통째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잘 익은 김장김치가 깨소금 솔솔, 참기름 뿌린 밥과 김과 어우러지니 환상의 맛이 났다. 김치의 맛이 배가 되고 식욕이 돋아났다. 먹은 횟수도 몇 번 없다 보니 더욱 희소성이 느껴진다랄까? 김치김밥을 베어 무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3. 나와 동생이 가장 즐겨먹은 간식 중 하나가 '마른오징어'다. 그래서 우리 집 냉동실에는 대체로 마른오징어가 있었다. 그런데 가끔 떨어지고 없을 때도 있었다. 오징어가 먹고 싶은 날, 역시나 엄마가 냉동실에서 하나 남은 오징어를 발견했을 땐 뛸뜻이 기뻤다. 오징어 하나에 날 듯이 기뻐한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4. 비 오는 날, 또는 맑은 날, 엄마가 제안한다

'오늘은 부침개 부쳐먹을까?' 그러면 '네~!!'하고 합창하며 대답한다. 엄마표 부침개, 그중에서도 매운 고추와 오징어 송송 썰어 넣은 부추전은 정말 맛있다.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 엄마는 우리와 함께 앉아서 전을 먹진 않았다. 계속 전을 부쳐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속도보다 전이 나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 배가 불러 못 먹을 때까지 전은 계속 나왔다. 먹다가 새로 나온 전이 더 따뜻하니 어느 걸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하며 손놀림이 빨라진다. 부침개와 함께한 행복한 기억들이다.


5. 부모님이 새벽시장을 다녀오면 꼭 산 낙지를 사 오셨다. 그러면 아침부터 기분이 날아간다. 어릴 때부터 산 낙지를 잘 먹었기에 두근두근 설렘과 기쁜 마음으로 함께 산 낙지를 먹었다. 싱싱한 산 낙지를 기대하며 식탁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 집안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보니 주로 가족과 함께 엄마표 음식을 먹을 때인 것 같다. 그때는 엄마가 음식을 해 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을 차려주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어쩌면 최근까지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4년 차 엄마로 집밥을 차려보니 보통일이 아니다. 돌아서면 점심해야 하고, 돌아서면 저녁을 해야 한다. 20년 이상 밥을 차리셨던 엄마는 도대체 이 어려운 걸 어떻게 해내신 걸까.

 

그런데 사소한 행복의 기억들이 '엄마표 음식'과 다 연계되어 있다. 간식을 내어주거나, 음식을 함께 먹거나, 엄마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등이다. 이런 일들이 내 하루의 기쁨들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내 아이처럼 매일 작은 것에 기뻐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게 음식이든 아니든, 내 아이 역시 바람에 꽃이 살랑이기만 해도 '까르르까르르'하며 좋아하는 나이다. 목욕하며 물총을 뽕뽕 쏘아대며 깔깔거리고 좋아한다. 식물에 물을 주며 새싹에게 말을 건네고 기뻐한다. 퍼즐을 다 맞추고 뿌듯해하며 기뻐한다. 음악 하나에 춤을 덩실덩실 추고 노래를 부르며 집안을 행복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아이에겐 웃을 일이 훨씬 많다.

매일, 매 순간, 기쁠 일이 넘쳐난다.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어른이 되어가며 나도 모르게 그 기능이 쇠퇴해져 버린 것뿐이다.


이제 다시 아이와 지내며 조금씩 그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듬을 타고, 아이와 함께 작은 꽃 한 송이, 나비의 날갯짓을 보며 미소 짓는다. 아이와 함께 잠시 걷는 속도를 늦추고 계절의 변화를 느껴본다.



내 아이가 세상에는 매일 웃을 일이 많다고 내게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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